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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쓰는 연습

일기예보 마음

slowglow01 2024. 9. 17. 21:57

괜찮다는 징후들
그리고 괜찮지 않다는 징후들이 있다.
그것들이 내 최대의 관심사다.

이를테면, 소설과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괜찮다는 징후다.
또 책상을 조금 치웠다는 것.
여전히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지금처럼,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이고, 노트북을 펴고 뭔가 쓸 수 있다는 것도
일기예보 속 햇님 얼굴처럼 좋은 신호들이다.

반면 출근길에 유튜브에 불경을 검색한다든지 (금강경 천수경 반야심경 같은 것들)
자기 전에 안대를 써야 한다든지
갑자기 십 년 전에 좋아하던 청승맞은 인디음악 같은 것이 듣고 싶어질 때
나는 이것을 괜찮지 않다는 징후로 해석한다.

나는 이런 신호들을 들여다보고, 괜찮은지 아닌지 더하기 빼기 점수를 매기고,
내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괜찮니? 커피를 마셔도 될까?(이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나가서 조금 걸을까? 책을 읽을까? 내일은 퇴근하고 절에 들를까? 웃을 수 있겠니? 잠들 수 있겠니?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면 아주 작은 하얀 알약을 혀밑에 넣고
찬물 한 잔을 따라 마신다.

가끔은 오엑스 퀴즈 대신 주관식으로 묻기도 한다.
지금 마음이 어때?
그러면 대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우리 반 아이들은 매일매일 마음공책에 잘만 적어 오는 것들인데 말이다.
스물네 가지 마음스티커를 아무리 읽어봐도
거기에 내 마음은 없다.

... 여기까지 쓰고 문득 깨달은 게 있다.
잠깐, 오늘 날짜가 17일이잖아??

아놔...



생체리듬이 참 정확하기도 하지
알면서 매달 속는 나도 참 대단하다.
갑자기 모든 게 너무 하찮고 창피해져서 지우려고 했는데
웃기니까 그냥 올려야겠다.

아... 마무리를 어떻게 하지...
호르몬의 작용으로 잠시 센치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쓴 내용이 거짓말인 건 아니다.
일기예보를 보듯 매일 마음을 들여다보며
지금의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
어제보다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또 묻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묻는 것이 아니라 다그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의 대화~
- (왓챠를 켜며) 새로운 영화를 보는 건 좀 힘들지?
- 응..
- <남아있는 나날>은 볼 수 있겠니? 네가 좋아하는 영화잖아
- 그건 너무 아름다운 영화라서 힘들어..
- 그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그건 로코인데
- 미안... 어려울 것 같아...
- 그래... <미란다> 정주행이나 할까?
- 아니... 다 못하겠어...
- 너... 너...! PMS였구나!! 그런 거였어!! (맞긴 함)

그러니까 나는 자꾸 마음을 일으켜 세워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두 번 생각해 보니, 내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도 이런 것이다.
"선생님은 있는 그대로의 네가 참 소중해~^^" (하지만 얼른 더 많은 걸 할 수 있게 되렴)

좀 너무한다.
나한테도 학생들한테도.

연휴가 끝나면 약을 타러 병원에 가야지
그리고 내일은 더울까, 비가 올까 (왜냐면 이제 대한민국에는 이 두 가지 날씨밖에는 남지 않았으므로)
묻는 대신
걍... 걍 걸어야겠다.
마음이 일으켜지지 않으면 그냥 앉아서... 누워서...
구름 모양이 어떤지나 구경해야지.
하트 모양이려나~

되면 하구 안되면 안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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