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교단일기

2024년 1월 1일.

slowglow01 2024. 1. 1. 13:15

2023년에는 일단 일을 열심히 했다. 3년차. 처음으로 크게 미안한 마음 없이 스스로 괜찮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일에 있어서 정성을 쏟는 것과 나를 지키는 것 사이의 균형을 찾아나갔고, 교사로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도 실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정말정말 사랑했다. 나는 항상 아이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진짜 사랑은 역시 사명감이나 윤리의식보다는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언가 실수하고 잘못할까봐 불안한 마음, 아직 부족하고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대는 조급함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호기심과 애정이 생겼다.

교육은 한 차시의 멋진 수업으로, 그럴듯한 활동이나 자료나 교구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착실하게 쌓아나가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교육의 모든 것이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지루한 수업을 하거나 연습문제를 많이 풀게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며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교사란 교육 전문가라고 생각했고, 나의 전문성을 발휘한 교육을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싶었다. 확실히 나는 수업을 잘하고 교육자료도 잘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아이들은 그냥 '선생님을 좋아한다'. 내가 누군지 몰라도 일단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교실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은 나를 좋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교사의 모든 것을, 표정과 말투와 성격과 믿음을, 때로는 교사의 존재 자체를, 놀랍도록 기민하게 포착한다.

누군가 자신의 직업 자아와 사적인 자아를 잘 분리할 때, 내면이 어떤 상태이든 자기 일을 흔들림 없이 잘 해낼 때 우리는 그를 전문가라고 부른다. 물론 교사에게도 전문성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모든 것을. 내가 아무리 공들인 교육활동을 가지고 왔어도 때론 그걸 그냥 내려놓고 아이의 옆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할 때가 있다. 아이의 숨과 나의 숨이 공기 중에서 섞이고 우리는 함께 반짝이며 떠다니는 먼지를 구경한다. 아이가 맨발이니 나도 신발을 벗어야 한다.

그것을 알게 되자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교사란 내가 작년, 재작년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아니고, 대신에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요구한다.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둘 중 하나라면 어찌어찌 시도해보겠는데 어떻게 둘 다 되란 말이냐? 하지만 아이들의 빤한 눈빛에는 자비가 없다. 그리고 ㅇㅇ초 5학년 아이들과 함께한 1년 동안 나는 좋은 선생님, 행복한 선생님이었다. 누구에게랄진 몰라도 감사한 일이다.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고맙다.

2024년, 스물일곱 살, 4년차,
맑고 가벼운 마음, 허공에 쏜 화살처럼 곧고 간결한 마음, 그러나 언제든 기꺼이 샛길로 빠져 재미있는 돌멩이를 주울 준비가 될 마음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