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출근 전날의 아무말

slowglow01 2025. 2. 16. 22:21

용기는 언제나 저녁에 필요하다.
잠드는 데에
아침에는 용기가 필요 없다, 일어나서 씻고 일하러 나가면 된다.
나머지는 습관이 알아서 해 준다.
싸우러 나서는 데에도 용기는 필요하지 않다.
귀를 찢어 놓는 앰프의 울림
심장들의 울림을 따라서 가면 된다.
다만 싸우고 돌아오는 길에는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다.

수험생 시절에
하루에 다섯 시간 공부한 날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삼십 분 공부한 날은 죽을 만큼 괴로웠지
그런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용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고통
그런 마음들은 진짜로 존재하고
심지어 꽤나 중대한 문제다.
그에 비하면 실제로 뭔가 하는 데 필요한 용기와 고통은 오히려 사소한 수준이다.

그래? 그렇다면 뭔가를 해!
이런 말은 심각한 폭력이다.
(심지어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해도)
(아니 그런 경우에는 특히나 더)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이냐...
뭐 딱히 어떻게 하라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정신아픔이 여러분
신경다양인 여러분
노동자 시민 어린이 청소년 프레카리아트 피투자자 어쩌구 저쩌구 여러분
오늘 하루 교환가치로 셈해지는 건 아무것도 만들지 못했어도
우리의 고통은 여기에 있어요
우리는 오늘도 용기를 냈어요
(너무 주목받으면 부끄러우니까 아무도 모르게 몰래 냈어요)
그러니까... 뭐 어떻게 하라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둡시다.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