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얘기

올해 본 영화들(1월~5월)

slowglow01 2025. 5. 23. 17:12

 

평범한 날들 (이난, 2010)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에게 나타내는 폭력성에 관한 영화'라는 감독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포스터에 쓰인 문구 "잘 가요 그리고... 고마워요" 같은 아름다운 이별은 영화에 없다. 아내와 딸을 잃은 송새벽은 자살에 실패하고 성노동자 여성들에게 분풀이를 한다. 뱃속의 아기를 잃은 한예리는 지나가는 여고생을 가방으로 두들겨패고, 이주승은 할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장에게 복수를 강행하는데 번지수를 잘못 찾는 바람에 엄한 사람에게 둔기를 휘두르고 만다. 그 엄한 사람은 그때까지 자살을 못하고 있던 송새벽이었고... 폭력은 언제나 엉뚱한 곳을 향하는데 그런 빗나감을 거듭하다가 우연히 제 자리를 찾아들어가기도 한다. 상실을 겪은 이들이, 무고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그러고 난 뒤에야 마치 자기가 맞은 것처럼 엉엉 울 수 있게 되는 이야기들이 나는 좋았다. 

더 폴: 디렉터스 컷 (타셈 싱, 2008)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스턴트맨 로이는 자살하고 싶다. 그런데 움직일 수가 없으니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외국인 꼬마 알렉산드리아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꼬드긴다. 꼬마에게 약장에 있는 모르핀을 훔쳐오라고 시켜서 깔끔하게 자살할 계획이다. 그러나 꼬마에게는 힘이 있다. 이야기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힘, 이야기의 힘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스스로 그 힘을 증명하려는 듯 무시무시할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의 연속이다.

이야기에 힘이 있을까? 동화 <피터 팬>에는 팅커벨이 피터를 대신해 독약을 마시고 쓰러지는 장면이 있다. 팅커벨의 숨이 꺼져가자 피터는 울면서 "요정을 믿는 아이들은 박수를 쳐줘!"라고 부탁한다. 이야기 안에서의 부탁인 동시에 제4의 벽을 넘어 독자들에게 보내는 부탁이기도 하다. 나는 그 장면에서 박수를 친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모든 독자들이 나처럼 냉소적인 어린이는 아니었을 것이기에, 팅커벨은 박수 소리를 듣고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자살에 실패하고 절망에 빠진 로이는 대신 이야기 속 영웅들을 차례차례 죽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죽음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였으니 그게 더 이치에 맞는 결말일 것이다. 더 폴The Fall이라는 제목처럼, 스턴트맨이 촬영 중에 다리에서 추락하고 오렌지 따던 아이가 사다리에서 추락하는 현실과도 잘 어울린다. 그러나 다섯 살 알렉산드리아는 이런 결말을 용납할 생각이 없다. 울면서 얼른 해피엔딩을 내놓으라고, 주인공이 얼른 악당을 무찌르고 딸(그렇다, 아이는 이미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었다. 로이의 허락 없이)을 안아주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이건 내 이야기야.It's my story."
"내 이야기기도 해요.Mine too."

박수를 치면, 팅커벨은 살아난다. 박수를 치면 로이의 다리가 나을까? 박수를 치면 다섯 살 아이가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는 현실이 달라질까? 이야기에 그런 힘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야기에는 아무 힘이 없다고, 잔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위안을 찾을 수 있는 피안의 세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피터 팬은 영원한 소년이지만 웬디는 언젠가 네버랜드를 떠나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의 힘을 모르는 소리다. 이야기의 힘은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믿고 박수를 치는 독자/관객에게 있다. 박수 소리를 듣고 되살아나는 팅커벨이 아니라 박수 소리 그 자체가 이야기의 기적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경험한 적 있듯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서 박수를 치고 있다면 이야기는 결코 끝났다고 할 수 없다.

결국 로이는 죽음을 위한 최악의 방법을 선택한 셈이다. 아프고 심심한 다섯 살 아이에게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 순간 그의 죽음은 취소된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는 본질적으로 생의 편, 이야기도 본질적으로 생의 편이니. 아이는 망설임 없이 이야기로 뛰어들고, 손이 아플 만큼 열렬히 박수를 치며 요구한다. 나는 요정을 믿으니, 살아나라고, 살아가라고, 당신과 나를 위한 이야기를 그렇게 간단히 저버리지 말라고. 그리하여 주인공은 악당을 물리치고 딸의 뺨에 입을 맞춘다. 영화 속 스턴트맨들은 쓰러지고 얻어맞고 차에 치이고 추락하기를 반복하지만 영화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브라보, 브라보!"

사랑은 낙엽을 타고(아키 카우리스마키, 2023)
핀란드 영화. 포스터에서는 달달하고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인 척 홍보하고 있지만... 음... 여기까지 쓰고 잠시 생각을 해봤는데 정말 달달하고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가 맞는 것 같다. 케이크만 달달한가? 잘 씹으면 쌀밥도 달달하다. 그리고 꼭 설레고 두근거려야만 로맨스인 것도 아니다. 비록 설레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대신 영화 전체에 삶에 대한, 일상의 노동에 대한, 동료 인간들에 대한 애정이 뭉근하게 녹아 있으니 이것도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코미디?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전부 극도로 무뚝뚝하고 절대 웃지 않으며 스몰토크도 할 줄 모른다(이 영화로 인해 북유럽인들에 대한 내 편견이 한층 강화되었다). 그렇지만 왠지 썰렁하면서도 절묘한 유머 감각이 있어서 영화를 보는 나는 자꾸 피식피식 웃었다. 그러니 코미디도 합격이다. 강아지가 나오니 귀여움은 말할 것도 없다.

흠. 달달하고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 맞네. 


인사이드 르윈(코엔 형제, 2013)에 대한 리뷰는 여기.

맨하탄 미스터리(우디 앨런, 1993)
마이클 슈어의 책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그중 '비윤리적인 창작자의 창작물을 좋아하는 일의 윤리성' 부분에 등장하는 창작자가 바로 우디 앨런이다. 마이클 슈어는 우디 앨런의 코미디를 평생 사랑해 왔다. 우디 앨런의 비윤리적 행동을 알게 된 슈어는 고민에 빠진다. 내 인생에서 우디 앨런의 작품을 도려낼 수 있는가? 창작자가 비윤리적이라고 해서 훌륭한 창작물을 전부 폐기해야 하는 것이 옳은가? 그렇다면 그의 작품을 아무 문제 없이 소비해도 되나?

주제가 우디 앨런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마이클 슈어에게 더욱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영리하고 재치 있고 유쾌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대사도 내 취향이었다... 사실 나는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와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도 좋아한다... 다른 작품들도 보면 아마 좋아할 것이다... 젠장 마이클 슈어 감독님 이런 기분이셨군요.

마이클 슈어의 말로 리뷰를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그의 말로 하려고 한다.

John Oliver, whose show I greatly admire, has this thing where, when people say, “Where do you draw the line?” his answer is “Somewhere!”
You draw it somewhere. The fact that the line is blurry is not an excuse to not draw it. You gain more information as you get older, you erase the line, you draw it somewhere else, and as soon as you draw it, you are guaranteeing that one of your smartass friends is gonna come up and say, “Oh, this is okay. But this isn’t? How is the line here?” and you go, “All right. I agree with you,” and you erase it, and you redraw it.
That’s sort of the best we can do. It’s not a great solution. I don’t know of a better one. I think that the only thing you can do that’s truly a mistake is to pretend that it doesn’t matter, or that there’s nowhere to draw the line.

콘클라베(에드워드 버거, 2024)
어쩌다 보니 작금의 대한민국 시국에 딱 맞아떨어지는데다, 얼마 안 되어 영화가 현실로 이루어져 버리는 바람에;; 너무 유명해진 영화. 너무 유명해져서 오히려 할 말이 없구만유... 그냥 너무 재밌었고 나는 극장에서 두 번 봤다. 아녜스 수녀님이 너무 미인이셔서 불경하게도 가슴이 뛰었다.

플로우(긴츠 질발로디스, 2024)
이런 말 해도 되나? 생각보다 안 귀엽다. 아니, 물론 귀엽긴 하지... 주인공이 고양이인데. 당연히 귀여울 수밖에 없지. 그런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동물 캐릭터, 또는 유튜브 '애니멀봐' 같은 채널 속의 의인화되고 대상화된 그런 귀여움은 이 영화에 없다. 이 영화 속 '등장 동물'들은 정말 그 동물들처럼 행동한다. 대사도 없고 자막도 없고, 심지어 영화 속 동물들의 목소리도 진짜 그 동물들의 소리를 녹음한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시선이 최대한 배제된 세계에서 동물들은 시시각각 생존의 위험을 겪지만, 동시에 자연스럽고 자유로워 보인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그러다가 장난감에 한눈이 팔리기도 하고, 우정이나 동료애 같은 것을 쌓아가기도 하는 동물들. 생각보다 조금 덜 귀엽고, 낯설고 이상하고 감동적인 모험 이야기.

특히 뱀잡이수리를 캐스팅(?)한 것에 추가 점수를 주고 싶다. 기품 있고 용맹한 대장 역에 뱀잡이수리보다 더 어울리는 동물은 없다.

곤돌라(바이트 헬머, 2025)
감독이 독일인인데다(편견 죄송...) 대사 없는 무성영화라길래, 진지한 예술영화일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는데 웬걸 개웃긴 영화였다. 진짜 웃기고 설레고 아름답고 무엇보다 너무 골때리는 영화.ㅋㅋㅋㅋㅋ 다 큰 여자들이 이렇게까지 천방지축 우당탕탕 말썽꾸러기이자 사랑 앞에 이성 따위 갖다버린 로맨티스트로 나오는 영화는 처음 봤다. 대사가 없는 건 예술적인 장치가 아니라 그저 웃김을 증폭시킬 뿐이다. (멀쩡한 사람들이 뭔 핑구처럼 음? 으흠? 이렇게 대화한다고요ㅋㅋㅋㅋㅠㅠㅠ) 낭만이 너무너무 과해서 이성적인 사람들은 보면서 좀 괴로울 수도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위해 체면도 직장도 교통안전까지도 다 내던지는 낭만적인 여자들의 이야기. 너무 재밌었는데 그래도 교통안전은 좀 지켜줬으면 했다...

4월 이야기(이와이 슌지, 1998)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극장에 두 시간쯤 앉아있고 싶어서 본 영화인데, 보는 내내 행복했다. 말갛고 야무진 얼굴의 스무 살 여자애가 차분하고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조나스 트루에바, 2024)
진짜 씨네필 같은(positive) 작품...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 메타적인 작품이나 극중극 같은 장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나는 다 해당돼서 너무 재밌게 봤다.
이건 여담인데 주인공 커플이 여자 감독+남자 배우의 조합이거든... 근데 아무리 봐도 여자 쪽이 배우 비주얼이라서 좀 웃겼다. 언니!! 그냥 언니가 데뷔해요!!

(영화는 아니지만) 와이 우먼 킬(마크 웹, 2019)
지난 몇 주 동안 내 도파민을 책임진 드라마. 너무 유명해서 안 본 사람 없지만 혹시나 해서. 진짜 재밌으니까 꼭 보세요. 다 좋지만 난 커비 하웰-밥티스트가 제일 좋다ㅜㅠㅠ 굿플레이스에서도 크루엘라에서도 당신이 최애였어요..

(이거 쓰려고 검색해보다가 내가 여태 양자경과 루시 리우를 헷갈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거 되게 인종차별 같네... 죄송합니다...)

암튼 올해는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살았다. 많이 본 건 아닌데 재밌는 걸로만 알차게 잘 봤네... 하반기에는 드라마 <우리 영화>를 기대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드라마라니 재밌겠죠. 6월에 방송한다니까 여러분 나랑 같이 기다리기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