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노래로 세상을 아름답게(2차시)
성취기준: [6음01-01] 악곡의 특징을 이해하며 노래 부르거나 악기로 연주한다.
학습목표: 노래에 어울리는 셈여림을 표현하며 ‘노래로 세상을 아름답게’를 부분 2부 합창으로 불러 봅시다.
내 음악수업이 어떻게 망했는지 설명하기 전에 미리 변명을 좀 하자면, 나는 분명 반주 연습을 했다. 한밤중에, 춥고 어두운 피아노 연습실에서 혼자. 이번 수업의 제재 곡인 '노래로 세상을 아름답게'는 사장조 곡이고, 나는 검은건반을 눌러야 하는 곡을 칠 때면 늘 손가락에 고장이 난다.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따로 움직이라니 그거 천재들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몇 시간 연습하자 대충 그럴듯한 반주를 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자꾸 틀린 건반을 누르곤 했지만 그건 영원히 고칠 수 없을 것 같았고,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해 연습하는 것이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께서 '아이스크림(동요 반주를 틀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로그인해주시겠다고 하셨으니까. 나는 컴퓨터 반주를 굳게 믿었고, 내가 정말로 직접 반주를 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계획한 음악수업은 야심도 열정도 없는 정말 평범한 가창 수업이었다. 먼저 곡의 리듬을 익히고, 그 다음 윗 성부와 아래 성부의 가락을 익히고, 마지막으로 부분 2부 합창을 하려고 했다. 나는 같은 날 수학 수업을 정말 처참하게 망했고, 엉망으로 무너진 멘탈을 수리할 뭔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이들과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서 오전의 실패를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그런데 6교시 음악시간을 앞두고 교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꽤 심각한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쉬는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여자아이들 몇 명에게 뭐라고 화를 내시더니, 그중 한 명을 데리고 교무실로 가셨다. 고학년은 이런 점이 참 피곤하구나, 선생님도 고생이 많으시겠다...라고 생각하다가, 잠깐, 선생님, 제 아이스크림은요? 저 반주 틀어야 하는데요? 선생님?? 선생님은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셨고, 나는 컴퓨터 반주 없이 수업을 했다. 물론, 잘 됐을 리 없다.
수업 흐름
1) 제재 곡의 구성 요소 살피기. 제목, 박자, 빠르기, 도돌이표 등.
2) 발성 연습. 우리 반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길래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크게 내라고) 일부러 준비한 단계. 스트레칭>바른 자세>복식 호흡(배에 손을 올리고 들숨-날숨 쉬기)>음정 없이 "아~" 소리 내기>도미솔미도 음정에 맞추어 소리 내기의 순서로 진행했다.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아이들이 의외로 이 단계를 좋아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마지막 날 편지에 "음악 시간에 아~소리를 내는 게 특히 재미있었습니다."라고 써서 좀 웃었다. 내가 수업을 스물세 시간이나 했는데 고작 "아~"가 제일 재미있으면 어떡해!
3) 제재 곡 듣기. 여기서부터 패닉에 빠졌다. 음악이 없는데 음악을 어떻게 들려주지? 사실 유튜브에 곡 제목을 검색하면 간단하게 해결되었을 일이지만, 그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반장이 가져온 키보드를 치면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 같았다. 하지만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 앞에서, 당황해서 새하얘진 머리로, 도저히 실수 없이 반주할 자신이 없었다. 반주자가 실수를 하면 거기에 맞춰서 노래를 어떻게 불러? 결국 나는 전날 밤 몇 시간 동안 연습한 왼손 반주를 통째로 포기한다. 반주를 하면서 버벅거리느니 차라리 오른손으로 멜로디라도 제대로 짚어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아이들에게 '반주도 못하는 준비성 없는 교사'로 보였을 생각을 하면 아직도 억울하지만(열심히 연습했는데!!)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내가 연습을 조금만 더 했더라면. 아니면 그때 조금만 덜 당황해서, 연습한 만큼이라도 반주할 수 있었더라면. 내 역량 부족이 뼈저리게 느껴져서 속상했다.
"잘 들어 얘들아. 지금 피치 못할 사정으로 컴퓨터 반주가 없어. 그래서 선생님이 키보드를 칠 건데... 미리 말해 둘게. 실수를 엄청나게 많이 할 거야. 지금부터 선생님이 어떤 실수를 해도 다 모른척해야 돼. 알았지?"
미리 잔뜩 주의(?)를 주고 시작했지만, 곧 반주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진짜 문제는 내가 노래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노래는 높은 도까지 올라가는데 나는 높은 도 소리를 못 낸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목소리가 안 나왔다. 결국 후렴구는 이 따위로밖에 부를 수 없었다.
"자, (다 함께) 모두 (신나게) 노래를 (불러봐요~) 우리의 (사랑이) 따스한 (사랑이) 세상에 (퍼지도록~)"
신나게 노래를 부르자는 내용의 노래를 신나게 부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아이들이 "쌤 노래 왜 이렇게 못 불러요~" 하고 웃었으면 나도 함께 웃었을 텐데, 의젓한 우리 반 아이들은 그저 고음과 씨름하는 나를 안쓰럽게 쳐다볼 뿐이었다. 심지어 노래가 끝나자 박수까지 쳐 주었다. 비참했다.
4) 리듬 익히기. <♩♪♪> 리듬꼴과 당김음을 익히는 단계로, 박수나 무릎 장단으로 리듬을 치면서 익히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냥 교사의 원맨쇼가 되고 말았다. 대학에서 만난 교수님과 학자들은 하나같이 리듬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지만, 실제 6학년 아이들은 별도의 연습 없이도 리듬을 무척 잘 익혔고, 리듬 연습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못갖춘마디나 변박 등이 있지 않은 이상 리듬 연습을 굳이 길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활동이었다.
5) 윗 성부의 가락 익히기. 여기서부터는 아이들이 직접 노래를 불러야 한다. 하지만 20대 여자 교사도 못 내는 음을, 변성기가 한창인 10대 아이들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좀 더 낮은 음으로 조바꿈을 하기로 했지만, 내가 피아노로 칠 수 있는 음계는 딱 두 가지, 사장조와 다장조뿐... 결국 나는 무려 5도나 음을 내려 다장조로 연주했고, 아이들은 후렴 부분을 편안하게 부를 수 있게 된 대신 도입 부분을 엄청난 저음으로 부르게 되었다. 내 수업만 아니었다면 참 볼 만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기어들어가는 동굴 저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희망찬 노래를 부르는 6학년들... 가사가 하필 "즐거운 일도 많지만/힘든 일 걱정도 많아요"라서 더 웃겼다. "너희 지금 정말로 힘든 일이 많은 얼굴이야!"라고 농담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교사의 얼굴도 딱히 더 낫지는 않았으리라. 게다가 아까 쉬는 시간에 싸운 아이들은 여전히 입도 뻥끗하지 않고 부루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얼어붙은 마음을/따스한 노래로 녹여요"는 노래 가사일 뿐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아래 성부까지 가락을 익히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일단 윗 성부만으로 제창을 하기로 했다. 한 분단에게 '코러스' 역할을 맡겨서 탬버린을 나눠주고, 노래 중간중간의 2분쉼표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탬버린을 연주하도록 했다. 이것 역시 아이들이 노래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부르도록 고안한 방법이었는데, 내 추측일 뿐이지만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교사는 반주를 못하고 학생들은 노래를 못하는 엉망진창 제창이었지만 탬버린 소리가 들어가니 조금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렇게 코러스 역할을 바꿔 가며 여러 번 노래를 부르다가... 수업이 끝났다. 마무리하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것 같다.
첫 차시가 워낙 난장판이라서, 다음 주에 수업한 둘째 차시는 비교적 평탄하게 느껴졌다. 1) 발성 연습 2) 셈여림 노래 부르기(원래 피아니시모(낮은 음)에서 시작해서 포르티시모를 가장 높은 음으로 부르는 곡인데, 나도 아이들도 그렇게 부르는 데 실패하는 바람에 거꾸로 부르기로 했다. 담임 선생님이 웃었다) 3) 아래 성부 가락 익히기(아래 성부 가락은 아이들이 어려워해서, 결국 또 아이스크림을 끄고 내가 직접 불러 주어야 했다) 4) 부분 2부 합창하기(역시 탬버린을 사용해서) 5)셈여림을 살려 부분 2부 합창하기(내가 손가락으로 셈여림을 지정해 주었다)의 순서였고, 역시 시간이 모자라서 '직접 셈여림 기호를 넣어서 노래하기' 단계는 아예 못 했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보다 덜 망해서 행복했다. 담임선생님께서 "그래도 우리 반 치고는 노래를 크게 불렀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날 수업에서 담임선생님이 영상을 찍어 주셨는데, 영상 속의 우리는 (마치 그전의 고군분투는 전혀 없었던 것처럼) 그저 즐겁게 노래하는 교사와 학생들 같다. 분명 가장 힘들었던 수업, 가장 망한 수업 중 하나인데, 그래도 그 영상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음치 선생님과 변성기 6학년들이 탬버린을 치면서 '노래로 세상을 아름답게'를 부르고 있다. 음정도 박자도 마구 틀리면서. 성취기준을 하나도 성취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웃으면서, 그래도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