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5 오늘의 일기
우리 반의 집중구호는 "사랑하는!" "우리 반!"이다. 임용시험 2차 수업 시연을 준비할 때부터 이 구호를 사용했다. 억지로라도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사랑에 소질이 없다. 사랑해야 마땅한 이들도 잘 사랑하지 못했다. 그런데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을, 단지 내 학생들이란 이유만으로 어떻게 당장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이들을 마음으로 사랑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입으로라도 사랑하기로 했다. 매일매일 외치면서. 사랑하는! 우리 반!
사랑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3월 중순까지는 아이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랑하기에는 책임감과 고민이 너무 무거웠다. 그저 아이들을 원망하지 않는 데 마음의 힘을 다 쏟았다. 너희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내일이 두려워지지만, 절대 너희를 탓하지는 않을게... 그것마저도 가끔은 쉽지 않았다.
4월 5일. 오늘은 처음으로 보결을 들어갔다. 4학년 2반 선생님께서 갑자기 아프시다고 하셨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두 가지 이유로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첫 번째. 자료들을 usb에 담아 갔는데, 컴퓨터가 안 열렸다. 포스트잇에 뭔가 적혀 있긴 했는데 아무래도 비밀번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큰일났다. 두 시간 동안 뭐 하지? 하지만 이 당황은 두 번째 이유로 당황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두 번째.
4학년 어린이들은 너무너무 의젓했다.
아이들이...... 내가 교실에 들어왔는데 의자에 앉아 있다! 내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입 맞추어 인사했다!! 컴퓨터를 켜려고 끙끙대는 동안에도 전혀 떠들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만화였다면 나는 띠용! 하고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갔을 것이다. '컴퓨터를 쓸 수가 없으니 직접 나무와 풀을 보자'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바르게 줄을 서서 나를 따라왔다. 띠용! 내가 소나무를 가리키며 설명하자 아이들은 모여서 내 설명을 들었다. 띠용! 학교를 한 바퀴 돌다가 놀이터와 마주쳤다. 누군가 물었다. 선생님, 놀이터에서 놀아도 돼요? 당연히 안 되지. 네. 아이들은 더 말하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띠용!!!
하도 띠용 띠용 튕겨져 나가느라 나는 두 발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의문들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원래 어린이들은 열 살을 분기점으로 저렇게 드라마틱하게 바뀌는가? 우리 반 열 살들도 1년 뒤에는 저런 열한 살이 되는가? 아니면 사실 열 살도 충분히 '저럴' 수 있는데, 나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인가? 내가 무능력해서, 내가 뛰어난 교사가 아니라서? 우리 반 아이들이 4학년이 되어서도 그대로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저렇게 멋진 열한 살이 되지 못하고...
충격에 빠진 채로 보결을 마치고 우리 반으로 돌아왔다. 여러분이 체육 수업 듣는 동안 선생님이 어디 있었을지 맞춰 보세요. 교실! 땡. 보건실! 땡. 도서관! 땡. 4학년 2반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언니 오빠들 교실에 있다 왔어요. 거기서 선생님 진짜 깜짝 놀랐어. 왤까? 선생님 말을 잘 들어서요? 맞아요. 4학년은 정말 의젓하더라. 선생님이 말하면 경청도 잘 하고. 아~ 선생님! 형아들은 우리보다 한 살 많잖아요. 그러니까 그렇죠. 저 당당함이라니... 방금 헤어진 4학년이 벌써 그립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5교시 수업을 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 반은 4학년보다, 어쩌면 다른 학교의 3학년들보다, 더 시끄럽고 말도 안 듣고 아기 같고 어쩌면 공부도 더 못한다. 그리고 더 귀엽다.
헐. 세상에 내가 무슨 생각을. 그런데 진심이었다. 멋지고 의젓한 다른 반 어린이들 열 트럭을 갖다 줘도 우리 반이 더 예쁘다. 예쁜 짓을 해서 예쁜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반이라서 예쁘다. 이런 마음은 나의 의식적인 노력이나, '교오~사는 학생들을 사랑해야지~!'하는 눈물겨운 참교사 정신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다. 한 달 동안 함께하면서 자연히 생긴 것이다. 다른 사랑들과 마찬가지로.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물었다. 혀가 좀 짧아서 선생님을 턴탱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다. 턴탱님! 4학년 2반에서도 '사랑하는 우리 반' 해써요? 뭐라구? 당연히 안 했지. 사랑하는 우리 반은 우리 반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