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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6 오늘의 일기

slowglow01 2021. 11. 26. 19:59

학기말이 다가오면서
내가 이상해지는지 아이들이 이상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겠지만
그동안은 일이 힘들어도 그 안에서 뭔가를, 의미든 교훈이든 작은 행복이든 아니면 무거운 고민이든, 찾아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오직 피로 말고는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다.
수요일에는, 4교시쯤에, 실험 시간에 끝도 없이 떠들고 장난치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다가,
아 제발 사라져
내 눈 앞에서 사라져 얘들아 그냥 집에 가
라고 생각했다.

나는 1년 동안 무엇을 한 걸까
3월 초, 아무런 준비 없이 기피학년(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교실에 덜렁 버려져
아이들이 왜 이래? 원래 이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야? 생각하며
아이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쓰던 때
그때 다른 건 몰라도 이 녀석들의 듣기 태도만큼은 좀 고쳐주고 가겠다고 다짐했는데
1년 동안 그거 하나 해내지 못한 걸까
그 많은 삽질
그 많은 삽질을 하면서도....

목요일에는 아이들을 집에 보내자마자
다음날 준비고 교실 정리고 뭐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조퇴를 썼다.
조퇴를 쓰고 동네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았다.
요즘 몸이 안 좋아서요, 대답했지만 사실 안 좋은 게 몸인지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것도 아마 둘 다겠지만

오늘은 방과후에
어제 싸운 여학생 다섯 명과 집단 상담을 했다.
누구는 서운하고 누구는 억울하고
한 시간이나 걸린 긴 상담이었지만
내게는 묘하게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일단 얘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1번 학생 2번 학생 3번 학생과 지지고 볶는 동안
바른 자세로 규칙을 지키며 언제까지나 기다리는 절반(이상)의 아이들
끝없이 미안한 마음뿐이다.

3학년은 이제 한 달여가 남았다.
진도는 늘 그렇듯 촉박하고
나는 어쨌거나 학급문집을 만들 생각이고
함박눈이 오면 운동장으로 뛰어나갈 것이다.
마지막까지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 다정한 말
좋은 배움과 즐거운 시간만을 주고 싶다.
오늘도 점심시간 내내
담임이 도망치면 뉴스에 나오려나 라고 생각했지만
마치면서는 금요일의 루틴대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했다.
어린 강아지들처럼 손바닥을 내밀고 달려오는 아이들
3학년의 마지막까지 힘껏 손바닥을 부딪쳐 줄
내게 그럴 힘이 남아 있을까

그나저나 수액 왤케 비싸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