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약봉투
출처도 내용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이런 대화가 있다. 제자가 스승에게 "메시아가 나타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라고 묻자 스승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다."라고 대답했더라는. 누가 했던 말인지 궁금해서 이런저런 키워드를 넣어 열심히 검색해봤는데 나오는 게 없는 걸 보면 내가 지어낸 말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내게도 바로 그 재림예수 같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항우울제다. 약을 복용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약을 먹기 전과 후에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쉬고 똑같이 말한다. 그런데 마음이 둥글어지고 뭉툭해졌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처음엔 마음이 더 이상 뾰족하지 않고 아프지 않다는 것에 놀라고 기뻤다. 그런데 며칠 전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을 때 할 말이 전혀 없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냥... 그냥 지냈어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긴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나요. 별 생각 안 했어요... 내가 이렇게 말한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내 머릿속은 항상 폭발하는 태양만큼 시끄러웠고 언제나 할 말이 지나치게 많았다. 보글보글 끓는 생각들이 너무 괴로워서, 잠시만이라도 머릿속의 스위치를 완전히 끄고 죽어 있고 싶었던 적도 많다. 그런데 죽지 않았는데도 할 말이 없다니. 더 놀라운 게 뭔지 아는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은 받았지만 그게 그렇게 슬프거나 두렵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충격이라는 말도 좀 과장된 면이 있다. 머리로는 충격을 받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둥글고 평온하다.
원래는 연말을 맞아 올해 읽었던 책을 정리하려고 블로그를 켰다. https://slowglow01.tistory.com/125 이 글의 2편을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쓰고 싶은 말이 없었다. 올해도 많은 책을 읽었다. 완독한 것은 정확히 33권이다. 전부 좋은 책이었고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책도 나를 밀어 넘어뜨리거나 밟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내가 책을 읽을 때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경험이다. 책이 나를 괴롭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내 영혼에 상처를 내기를. 카프카가 말했듯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이제 내 영혼은 위대한 현대 정신의학의 가호를 받기에 책으로는 상처 입힐 수 없는가. 아니면 반대로, 내가 이미 밀려 넘어져 있고 밟혀 누워 있는 상태라서 책이 더 건드릴 구석이 없는가. 아니면 그냥 내가 나이를 먹은 것이고 이제 다시는 전처럼 강렬한 독서를 할 수 없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더 이상 문학을 굳이 찾아 읽지 않기 때문일까.
스무 살 스물한 살 때의 나는 정말 간절하게 '똑똑해지고' 싶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세상에 나와보니 세상에 똑똑하고 멋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나는 그냥 무식쟁이 같았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날카로운 말, 유익한 말,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말을 쓰고 싶었다. 그러려면 다양한 분야의 논픽션을 많이 읽어야 할텐데 왜 난 아직도 소설책이 제일 재밌는 거지 하는 자책도 했다.
며칠 뒤면 나는 스물일곱 살이 된다. 이제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 소설을 읽지 않으려고 일부러 노력한 건 아닌데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올해 읽은 33권 중 소설은 6권인데 한 권 빼면 전부 독서모임 때문에 읽은 것들이다. 대신 철학, 사회학, 이런 분야의 제법 어려운 책을 찾아 읽는다. 얼마 전에는 무슨 모임의 회장이라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마침 옆자리에 앉아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분이 내 이름을 듣더니 "아! 그 엄청 똑똑하시다는 분?" 하고 무척 반가워했다. 사실 요즘 여기저기서 칭찬과 인정을 많이 받는다. 내가 원하던 게 이루어졌구나
그러나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수치심에 가까웠다. 그토록 애를 써서 똑똑해지고 나서 내가 깨달은 것은 지식이란 건 그저 반짝이는 유리 장난감 같다는 것이었다. 섬세하고, 아름답고, 그저 그 영롱함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일평생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것. 그러나 진정으로 생을 살고자 한다면 낫이든 망치든 진짜 삶의 도구를 들어야 한다. 내 말이나 글에 대해, "진짜 똑똑하다"라는 감상평을 들었을 때 나는 내 말과 글이 실패했음을 알았다. 얼마 전 친한 언니와 함께 어떤 철학 교수의 교양 강연을 들었다. 난 약간의 배경지식이 있었으므로 그의 강연이 쇼펜하우어, 라캉, 라투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언니는 교수가 하는 농담에 깔깔 웃으며 강연을 듣고는 "너무 좋았다"라고 했다. 그때 든 생각은 '졌다...' 였다. 다 무슨 소용이야. 저쪽이 진짜잖아.
똑똑해지고자 했던 노력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난 여전히 '어려운 말'들이 내뿜는 오색빛을 좋아한다. 아마 평생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이젠 갔던 길을 돌아올 차례다. 이번에는 조급하게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옛날에는 무식쟁이 같다고 여겼던 길, 둥글어지고 뭉툭해지는 길로. 지난 주에 어땠냐는 의사 선생님의 물음에 바보 같은 얼굴로 "어..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는 내가 싫지 않다. 내년에는 소설을 더 많이 읽을 것이다. 날카롭게 분석하는 대신 울고 웃으며 기꺼이 책의 도끼날에 영혼의 여린 부분을(아직 그런 부분이 남아 있다면) 내어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영롱한 유리 장난감이라 여겼던 것이 진짜 크리스탈 검이나 국자였다는 것을 깨닫고 사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둥근 것, 큰 호를 그리며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길. 그러나 돌아왔을 때 나는 출발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산다는 건 참 재미있다.
원래 계획했던 2023년 읽은 책 정리글은 그래도 쓰긴 쓸 것이다. 아마 내년에도 책을 많이 읽을 것이고 공부도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나 내년의 목표는 좀 다르다. 20대 후반으로서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지 않는 것. 흔들리는 것. 헛걸음하는 것. 빙빙 도는 것. 걸려 넘어지는 것. 얼어붙은 바다를 깨고 호를 그리며 나아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