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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지 않으면

slowglow01 2023. 9. 6. 16:50

2023년 9월 4일은 대한민국 '공교육 멈춤의 날'이었다. 7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악성민원과 아동학대 고소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교사의 권리 보장을 위한 7주간의 대규모 토요집회가 있었다. 탈정치와 탈-단체를 표방하는 개인주의적 집회(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였다. 30만 명에 달하는 교사들이 추모를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고 집회에 참석했다. 5개 교원단체는 합동으로 입법요구안을 내놓았으며 대통령은 뜬금없이 학생인권조례를 문제 삼았다. 집회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3명의 교사들이 자살로 더 세상을 떠났고, 결국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9월 4일 월요일에 연·병가를 활용한 우회파업을 결정한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우회파업에 참여한 교사들에게 파면이나 해임 등 강경 대응할 것을 예고하였고, 9월 4일에 국회에서 예정되었던 교사 집회는 한 번 철회되었다가 다시 추진되었다.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5만여 명, 전국에서 7만여 명이 결집한 9월 4일 집회가 끝난 뒤 이 장관은 교사들을 징계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여기까지가 내가 감정 없이 건조하게 나열할 수 있는 사실들이다.

이것보다 자세한 내막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감정을 소모해야 한다. 가장 강렬한 감정은 뿌연 피로와 절망감이다. 많은 선생님들은 이번 사건에 울고, 분노하고, 더러는 집회에 참여하면서 치유나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 모양이지만 난 사실 그 모든 것에 회의와 답답함만이 가득했다. 마음을 대고 의지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교사고 당연히 교사의 처우 개선을 원했지만 소위 '우리 편'이라는 교사들의 말에는 차마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너무나 많았다. 도저히 의문 없이 선선히 동참할 수 없었다. 그래서 7주 동안 나는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남 일인듯 그래, 너네도 틀렸고 쟤네도 틀렸다, 둘이 싸우다 둘 다 망해라...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괜찮은 척을 했다. 하지만 당연히 남 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당연히 괜찮지 않았다. 죄책감이 들었고 외로웠다. 가장 큰 문제는, 온갖 공론장과 커뮤니티에서 (교사 편에서든 반대편에서든) 틀린 말, 싫은 말, (심지어) 역한 말들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래서 정작 '안 틀린 말', 올바른 방안이 뭔지는 나도 모른다는 데 있었다. 내 신념에는 구체성과 현실성이 떨어졌다. 어떤 교사/노동자도 부당하게 죽음에 몰려서는 안 된다, 우리의 희망은 단결과 연대에 있다, 교사와 학생/학부모/타 직종은 서로 적대하고 반목하기보다 공존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숨 나올 정도로 순진한 말들뿐이었다.


9월 4일 집회가 취소되었다가 다시 추진된 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이는 아직도 논란 속에 있는 문제이기에, 그리고 내가 이 논쟁에 있어 그다지 중립적인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나는 9.4.집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음에도 집회 취소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 이럴 바엔 9.4.집회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취소 후 새롭게 구성된 집회 운영진에 합류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별로 분노하지도 않았고 (징계 위험이 있었는데도) 비장한 각오에 차 있지도 않았다. 그저 희뿌연 피로와 절망감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래, 둘이 싸우고 둘 다 망해라. 나도 같이 싸우고 같이 망할게.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9.4 집회 운영진들은 나와 어떤 입장도 공유하고 있지 않다. 그분들은 이런 대화를 나눌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애초에 모든 준비과정이 익명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분들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주변의 잡음이 요란했던 것치고 9.4.집회는 별 탈 없이 매끄럽게 흘러갔다. 정치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기자들도 북적거렸다. 원래 2만 명을 예상했지만 5만 명이 몰려들어 준비했던 피켓이 순식간에 바닥나 애를 먹었다. 추모집회를 두고 이런 말을 해도 된다면 감히 성공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본부에서 바쁘게 돌아다니고 말하고 틈틈이 김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집회 후반부에 접어들자 교사라기엔 좀 앳된 얼굴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무대 뒤에 자리를 잡았다. 집회에서 노래 '꿈꾸지 않으면'을 부르러 모인 간디학교 학생들이었다.

간디학교는 중고등 과정의 대안학교이고, '꿈꾸지 않으면'은 간디학교의 교가이자 교사들에게는 애국가 같은 노래다. 다른 세대나 학교급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90년대생 초등교사라면 대학교 때 한번쯤은 이 노래를 불러보았을 것이다. 돌아가신 서이초 선생님 또한 90년대생이었고(98년생, 26세, 나와 동갑이다) 이 노래를 참 좋아하여 가사를 교실 벽에 붙여두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그동안 집회에서 교사들은 매번 '꿈꾸지 않으면'을 불러왔고, 49재인 이날은 이 노래의 작사가인 간디학교 양희찬 선생님과 학생들이 연대를 위해 찾아온 것이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손을 꼭 잡고 나란히 서서 노래하는 학생들과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입은 자동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지만 머릿속은 착잡했다. 집회에 참석해주신 건 감사했지만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건 맞지 않다. 우리는 이제 '꿈꾸지 않으면'을 불러서는 안 된다.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 노래, 노래를 마음에 품고 살던 선생님이 죽은 순간 노래는 선생님과 함께 죽은 것이다. 선생님은 죽었는데 노래만 멀쩡하게 남아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건 잘못된 것 같았다. 하지만 노래는 계속되었고 나는 속절없이 눈물이 났다. 죽은 선생님의 죽은 노래를 부르는 맑은 얼굴들과 아름다운 목소리에.

어쩌면 노래 '꿈꾸지 않으면'은 서이초 선생님보다 더 먼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잘못(수사적인 의미로)은 죽은 노래를, 그것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마음에 품고 살았다는 것이 된다. 경력교사가 신규교사에게 "괜히 애들한테 뭐 해줬다가 잘못 걸리면 큰일 나니까 아무것도 해주면 안 돼"라고 조언하는 세상에서 '감히' 희망을 노래하고자 했다는 것. 그 잘못으로 선생님은 죽었다.

'꿈꾸지 않으면'은 언제 죽었을까. 왜 죽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조금 생뚱맞은 다른 질문을 꺼내본다. 교육은 어떤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가? 2022 개정 국가교육과정에서는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함"이 목적이라고 한다. 아무도(어쩌면 그 문장을 쓴 본인도) 진지하게 믿지 않는 헛소리니까 무시해도 된다. 사회학의 눈으로 보면, 기능론에서는 교육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어린이들을 적절하게 사회화시켜 훌륭한 산업역군으로 성장시킨다고 한다. 갈등론에서는 교육이 노동계층 어린이들에게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를 학습시켜 권력에 순응하는 수동적 대중으로 성장시킨다고 한다. 어쨌든 두 입장 모두에서 교육은 커다란 컨베이어벨트,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균일한 인간으로 찍어내는 빵틀이다. 내가 학생으로, 그리고 교사로 학교에 다니면서 겪은 경험을 떠올려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꿈꾸지 않으면'은 그 모든 입장과 조금 다른 길을 간다. 이 노래는 '꿈', '사랑', '희망'이라는 세 단어를 유난히 많이 되풀이하고 있다. 셋 다 흔해빠진 보통명사지만 이 노래에서 이들의 의미는 현재 우리들이 주로 사용하는, 자본주의에 포섭된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꿈'은 대개 진로
·진학을 예쁘게 부르는 말이고 사랑과 희망도 그와 별다를 것 없는 빈곤한 깊이만을 갖고 있다. 그나마 학교라서 이 정도인 것이고 학교 밖에서 언어의 오염은 더욱 심하다. 꿈, 사랑, 희망 모두 신자유주의적 자기경영 신화에 충실히 복무하며 공동체의 파편화를 증언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너무 잘난 척한 것 같아서 쉬운 말로 다시 쓰자면, 열심히 공부해서 돈 많이 버는 사무직 직장을 얻고 좋은 이성 배우자를 만나 잘살고 싶다는 것이다. 빵틀 같은 단어들.

그러나 '꿈꾸지 않으면'은 '없는 길', '낯선 길', '아무도 가지 않는 길',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같은 말로 끊임없이 그런 의미와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꿈꾸지 않으면'이 노래하는 '꿈'은 좋은 빵틀에 구워지는 것이 아니라 빵틀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꿈꾸지 않으면'이 노래하는 교육은 기능론도 갈등론도 아닌 '낯선 길', 제3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 혼자 잘먹고 잘살겠다는 출세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는 정치혐오적 패배주의도 아닌 길. 타라 웨스트오버의 회고록 '배움의 발견'에서 저자는 군림하고 지배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벗어날 길을 학교에서 찾는다. 교육은 그에게 처음으로 아버지와는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고, 그는 그것을 무기 삼아 아버지의 세상을 전복한다. '꿈꾸지 않으면'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즉 '다른 목소리'로서의 교육을 추구하는 노래다. 가사도 멜로디도 부드럽고 아름답지만 실은 투쟁가인 것이다.

그 '다른 목소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회원수가 14만 명이라고 한다)과 각종 sns의 교사 계정들을 보며 나는 희망을 조금씩 버렸다. 첫 문단에서 말했다시피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의 투쟁은 가히 결벽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탈정치'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교사들에게 가해지는 무시무시한 법적·사회적 압박을 생각하면 사실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정치기본권이 없으니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직업의 안위가 왔다갔다할 수 있는 현실에, "그래도 선생님이 어떻게..."로 시작하는 세간의 편견과 간섭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정치와 무관한 완전히 순수한 개인이다. 그러니까 제발 좀 뭐라고 하지 마"라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나는 탈정치라는 말은 현실의 권력관계를 은폐하는 허구이며('페미니즘 대신 이퀄리즘'이 헛소리이듯이) 진정한 투쟁의 힘은 조직과 연대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뭐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나보지... 좀 투덜거리긴 했지만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진보교육감과 전교조 때문이라는 사람들(전교조가 뭘 잘못했냐고 물으니 "학교비정규직과 연대한 것"이라고 한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사람들, 학생과 학부모를 향해 혐오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들, 공무직, 행정직, 방과후강사 등을 적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자꾸 깎여 나갔다. 무엇보다 억울했다. 아니 님들이 지금 하는 말은 정치가 아니야? 내가 하는 건 정치고 당신들이 하는 건 정치가 아니냐고... 그러다 7월 24일 서울시교육청 기자회견장에 서울교사노조 박근병 위원장이 옷깃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왔다는 이유로 인디스쿨이 발칵 뒤집어지는 일이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저런 '정치적 표현'을 하다니! 교사노조는 전교조와는 다를 거라고 믿었는데! 우리의 순수한 요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의견이라고 불러주고 싶지도 않은 쓰레기 같은 말들이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었다. 그때 다짐했던 것 같다. 내 권리가 아무리 귀해도 이런 말을 하는 집단에 동조할 수는 없다고. 당신들이 노란 리본을 반대한다면 나는 당신들을 반대하겠다고.

그 뒤로는 쭉 마음이 괴로운 나날이었다. 괴로워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서명도 하고 교사인권 수업자료도 만들고 세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집회도 갔다. 여기저기에 내 생각을 적었다가 내부총질한다,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전교조가 분명하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교사들은 (탈)정치적인 발언을 계속하고, 전교조를 공격하고(그러나 집회 현장에는 언제나 전교조 교사들이 익명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아동학대 '면책'권을 달라고 주장했다. 내내 '이건 아닌데... 이건 진짜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남자친구랑 통화할 때 빼고는 말할 곳이 없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교사집단 비판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냥 내가 정말 많이 상처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바깥에서 날아오는 화살보다 동료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아팠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꿈꾸지 않으면'은 언제 죽었을까. 왜 죽었을까. 나는 '꿈꾸지 않으면'이 너무 낯간지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그 노래를 좋아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육 안에서 '꿈과 사랑과 희망'을 다시 찾아 잘 닦아서 제 빛을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여름 내가 발견한 것은 질문하지 말고 오직 한 가지 길만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교사들과, 어딜 감히 우리 아이에게 어떤 길로 걸으라는 명령을 하냐고, 뒤로든 옆으로든 아이가 가고 싶은 대로 그저 내버려 두라는 학부모들, 문제 해결보다는 교사들을 협박해 상황을 무마시키려는 교육부, 이 기회(!)를 틈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학교를 과거의 야만으로 끌어내리려는 정치권,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공들여 꾸민 교실 창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한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이 죽을 때 내 안의 어떤 것도 같이 죽었다. 이제 '꿈꾸지 않으면'에서 노래하는 가치는 전부 부서져 단 하나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니 그게 죽은 노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공교육 멈춤의 날'은 너무 온건한 명칭이다. 난 공교육 장례식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절망적인 마음으로 서 있는 내 앞에서, 간디학교 학생들이 '꿈꾸지 않으면'을 불렀다.


내가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우니까 옆에 서 있던 다른 선생님이 힐끗 쳐다봤다. 슬퍼서 운다고 생각했으려나. 실은 어이가 없어서 울었다. 저렇게 뻔뻔하게 죽은 노래를 부르다니. 학생들까지 데리고 올라와서. 손도 꼭 잡고 저렇게 정답게. 저렇게 아름답게... 그러다 문득 어떤 깨달음이 찾아왔고 그래서 눈물이 났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그건 희망이 죽은 다음에도 검은 옷을 입고 계속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죽은 희망을 소중하게 감싸 안고 울면서 계속 가는 것이다. 진 싸움, 망한 운동, 부서진 가치, 소진된 마음, 그러나 교육자라면 멈출 수가 없다. 아이들이 말 그대로 등을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도 어디선가 아기들은 계속 태어나고 자라서 눈을 또록또록 빛내며 학교로 쏟아져 들어온다. 걔들을 어찌어찌 가르쳐서 졸업시키면 또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떤댕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계속 계속 계속... 1989년 전교조 출범선언문에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저들의 협박과 탄압이 아니라 우리를 따르는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한 눈빛, 바로 그것"이라는 문장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그 문장을 교사의 양심과 투쟁의지에 대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그건 진짜 두려움에 대한 문장이다. 학생들은 정말로 두려운 존재다. 수구 정치인들에게 대들었다가 잘리는 건 무섭지만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동그란 얼굴에 대고 "얘들아 우리가 졌어. 이제 포기하자."라고 말하는 건 그냥 불가능하다. 게다가 정치인 할아범들은 조금만 기다리면 언젠가 죽겠지만 아이들은 끊임없이 계속 태어나서 교실을 채운다. 1989년 전교조 선생님들은 어떤 비장한 각오보다도 정말 그 반짝이는 눈빛들이 너무 두려워서 거리로 나와 노조를 세웠을 것이다. 간디학교 양희찬 선생님도 실은 학생들이 두려워서 손을 잡고 노래하러 나왔을지 모른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아이들에게 절망을 금지당해서 희망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9월 4일 월요일, 그 하루 동안 출근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은 것은 아이들에게 전혀 미안할 일이 아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무단결근을 하고 집회를 연다고 해도 미안하지 않다. 정말 미안한 것은 내가 이대로 입을 다무는 일이다. 이대로 내 권리를 포기하는 일, 또는 내 권리가 소중하다며 남의 권리를 짓밟는 일이다. 아이들은 마치 움직이는 정언명령과도 같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에게 무시무시한 의무를 부과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꿈꾸지 않으면'의 첫 부분을 다시 들으면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지난 한 달 반 동안 나는 많이 외로웠고 슬펐고 답답했고 절망했다. 실은 모든 선생님들이 그랬을 것이다. 검은 옷, 검은 리본, 줄을 잇는 부고... 학교가 죽음으로 가득했다. 죽음의 학교에 생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서는 교사를 보호하는 법적
·제도적 시스템 마련, 관리자와 교육청·교육부의 책임 강화, 학부모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한 '다른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결사 반대한다. 연대와 확장의 가능성을 거부하는 탈정치적 집회에 반대한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아동학대 '면책'이라는 용어에 반대한다. 교육공무직과 각종 강사, 학교비정규직을 교사의 적으로 돌리는 행위에 반대한다. 그리고 오직 한 가지 길만을 정답으로 강요하는, 대한민국 교육과 입시제도 전반에 반대한다. 인정한다, 그렇게 다 반대하고 나면 내가 처음에 '한숨 나올 정도로 순진한 말들'이라고 했던 것들만 남을지도 모른다. 구체성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상론만 남을 수도 있다. 그럼 거기서부터 길을 다시 찾아가면 된다. 그 길은 분명 서이초 선생님이 마음에 품고 부른 노래 속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일 것이다.

이런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 욕을 많이 먹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욕 먹는 건 두렵다. 그러나 ㅇㅇ초등학교 5학년 1반 학생들의 개구진 얼굴들이, 그 고집스러운 희망이 그보다 열 배 더 두렵기 때문에 그냥 썼다. 그동안 그 녀석들에게 떠벌려놓은 게 많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폭력은 옳지 않다, 혼자 잘살기보다는 서로 돕고 연대해야 한다, 권리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다 등등...) 그걸 다 거짓말로 만들지 않으려고 썼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어서 나처럼 외로운 선생님을 위해 썼다.

고 서이초 선생님, 그리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다른 모든 선생님들의 명복을 빈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안전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공교육의 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변화를 이끌어내도 그걸 그분들께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보다 그것이 가장 비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