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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이름뭘로하지
거의 일기장으로 사용하는 블로그이지만 가끔 방문객이 폭등하는 게시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3학년 1학기 시 수업을 기록한 이 일기가 있는데 https://slowglow01.tistory.com/81 3학년 1학기 국어 1단원 시에 나타난 감각적 표현 알기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정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신이 아니라 몸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가 정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많은 일이 실은 몸의 일이다. 사랑 slowglow01.tistory.com 다들 시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던 방문자 수였다. 시 수업일기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사실 시와 나는 좀 데면데면한 사이인데 뭔가... 너무 밀도가 높고 아름답고 내밀한 글이라서 더 어렵고 부담스럽..
팔레스타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이상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살아 있나. 거기서는 아기들이 죽고, 엄마들과 아빠들이 죽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함께 춤을 추고 놀이를 하던 선생님들이 죽고, 의료진들이 죽고 기자들이 죽고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죽고 있는데 나는 왜 아무런 불편함도 없이 살아 있나. 그들과 나를 구별할 만한 차이점을 찾아보았다. 무엇이 그들과 나를 갈라놓는지. 어떤 이유로 그들은 죽어야 하고 나는 살아도 되는지. 그러나 그런 건 없었다. 그들도 나도 특별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죽는 이가 하딜 아부 사다(Hadeel Abu Sa'da, 25세)가 아니라 나라고 해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하딜이 죽었다. 나는 ..
2023년에는 일단 일을 열심히 했다. 3년차. 처음으로 크게 미안한 마음 없이 스스로 괜찮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일에 있어서 정성을 쏟는 것과 나를 지키는 것 사이의 균형을 찾아나갔고, 교사로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도 실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정말정말 사랑했다. 나는 항상 아이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진짜 사랑은 역시 사명감이나 윤리의식보다는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언가 실수하고 잘못할까봐 불안한 마음, 아직 부족하고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대는 조급함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호기심과 애정이 생겼다. 교육은 한 차시의 멋진 수업으로, 그럴듯한 활동이나 자료나 교구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착실하게 쌓아나가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교육의..
출처도 내용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이런 대화가 있다. 제자가 스승에게 "메시아가 나타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라고 묻자 스승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다."라고 대답했더라는. 누가 했던 말인지 궁금해서 이런저런 키워드를 넣어 열심히 검색해봤는데 나오는 게 없는 걸 보면 내가 지어낸 말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내게도 바로 그 재림예수 같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항우울제다. 약을 복용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약을 먹기 전과 후에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쉬고 똑같이 말한다. 그런데 마음이 둥글어지고 뭉툭해졌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처음엔 마음이 더 이상 뾰족하지 않고 아프지 않다는 것에 놀라고 기뻤다. 그런데 며칠..
얼마 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과에 갔다. 병원에 갈 정도로 정신이 괴롭고 힘들었나? 사실 살면서 지금보다 불행했던 순간은 많았다. 밤마다 펑펑 울던 날도 있었고 혼자 술을 마시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직은 괜찮다고. 더 아프면, 더 슬프면 병원에 가자고.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버티다 보면 괜찮아졌다. 그렇게 스물다섯 해를 살았다. 요즘은 그렇게 힘들 일이 없다. 나는 젊고 건강하다. 이른 나이에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고, 심지어 그 일이 적성에 맞아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내겐 (더 이상 고성과 욕설이 오가지 않는)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동료들이 있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일상을..
1. 자기인식과 자기결정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봅시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나요. 저는 갤럭시 버즈 이어폰과 카라멜 사탕 한 개와 (당연하지만) 페터 비에리의 한 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린 거니까 엄밀히 말하면 제 것은 아니에요. 아무튼 이런 질문은 대답하기 무척 쉽지요. 쌤들도 대답해 보세요. 하지만 어떤 것들은 내가 가지고 있다고 자각하는 것부터 좀 더 까다롭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지금 입석 표를 끊고 기차 칸 사이 통로에 앉아 있는데요, 가끔 이 통로를 지나가려는 승객이 있으면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타인(지나가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도덕법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또 그렇게 바닥에 앉고 일어날 때마다 ..
지난 9월 16일에는 국회 앞에서 교사들의 9차 공교육정상화 촉구집회가 있었다. 나는 그 집회 스탭이었고, 동시에 자유발언자로 무대에 올라가서 발언도 했다. 모인 사람이 3만 명이었는지 4만 명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마이크를 들고 말하는 내 모습이 담긴 영상이 뉴스에 짧게 나오기도 했고 우리학교 교사 단톡방 같은 곳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들 참 잘했다고, 내 발언이 감동적이었다고 칭찬해 주었는데 나는 어쩐지 별로 기쁘지가 않고 그저 피곤하기만 했다. 동의하지 않는 집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진심으로 쓰지 않은 발언문을 읽고 응원받는다는 것이 몹시 이상했다.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집회가 끝나고는 완전히 지친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때마침 환절기라 컨디션이 최악이었..
2023년 9월 4일은 대한민국 '공교육 멈춤의 날'이었다. 7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악성민원과 아동학대 고소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교사의 권리 보장을 위한 7주간의 대규모 토요집회가 있었다. 탈정치와 탈-단체를 표방하는 개인주의적 집회(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였다. 30만 명에 달하는 교사들이 추모를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고 집회에 참석했다. 5개 교원단체는 합동으로 입법요구안을 내놓았으며 대통령은 뜬금없이 학생인권조례를 문제 삼았다. 집회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3명의 교사들이 자살로 더 세상을 떠났고, 결국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9월 4일 월요일에 연·병가를 활용한 우회파업을 결정한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우회파업에 참여한 교사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