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2 교단일기 (12)
블로그이름뭘로하지
요즘 활동량은 많아진 반면 밥은 잘 챙겨먹지 못하고 있어 혹시 살이 빠지진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집에 있는 체중계는 고장이고, 시간 날 때 보건실에 가서 몸무게를 좀 재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도무지 시간이 안 난다. 사실 마음속의 솔직한 반쪽은 몸무게가 좀 줄었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내가 고생하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는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숫자로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상도 벌도 언제나 남에게 받고 싶어한다는 것이 내 여러 괴로움의 근원이다. 내 좀더 이성적인 반쪽은 당연히 몸무게가 줄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다. 내 몸무게는 이미 몇 년째 저체중이고 특히 근육량이 몹시 부족하여 건강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 '예쁘게' 보이는 정도를 넘어선 마른 몸의 유일한 장점은 ..
10월 12일 오늘의 일기 1. 아이들 전담 수업 보낼 때 3학년 담임일 때의 나: 영어책이랑 필통 챙겨서 줄 서세요. 1학년 담임인 나: (리듬에 맞춰 우렁차게) 가을책~(짝) 필통~(짝) 챙겨서~(짝) 줄~(짝) 서세요~(짝) 가을책~(짝) 준비하세요~(짝) 연필~(짝) 지우개~(짝) 챙기세요~(짝) 줄을~(짝) 서세요~(짝) ...... (모두가 줄을 설 때까지 무한반복) 가끔 내가 선생님인지 에버랜드 아마존의 소울리스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1학년이란 명령어가 끊임없이 입력되지 않으면 절대 실행되지 않는 로봇과도 같다. 오늘은 수업을 시작하면서 "수학책~ 사십이쪽~(역시 박자에 맞춰서)"을 세 번 정도 말했는데, 내가 말하기를 멈추자 자기들끼리 "사십이쪽~ 사십이쪽~" 하고 떼창(?)을 하는 것..
어떤 날은 이 직업이 천직 같다가도 다음 날에는 머릿속에 욕만 가득해지니 도저히 일관된 무언가를 쓸 수가 없다. 마스크 위로만 힘껏 웃고 뽀미언니 같은 말투로 말하면서 속으로는 시발.... 시발.....만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 욕은 100% 나를 향한 것이고(나의 체력 나의 업무 나의 수업에 대한 불만족) 어린이들을 향한 마음은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하다. 내가 왜 변명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시간과 체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나면 퇴근까지 두시간 반 정도가 남는데 사실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하기에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런데 무슨 회의(엄청나게 많음)에 불려갔다가 급한 업무 좀 처리하고 나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십오 분 정도다. 교실 청소 좀 하고 나면 퇴..
창체 1학기 때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창체 시간마다 '그림 뮤직비디오'를 하나씩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 초등학생들이면 다 한 번씩은 해본다는, 각자 가사를 한 줄씩 맡아 그림을 그린 뒤 이어붙인 그런 영상 맞다. 의미 있는 활동이지만 1학기 내내 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2학기에는 좀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남으면 일단 온책읽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림책은 많이 읽었으니 이제 아이들을 동화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 전 학교에서 3학년과 읽었던 는 1학년도 아주 좋아할 것이다. 아니면 서점에서 다른 동화책을 찾아도 좋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낭독극이나 다른 독후활동을 꾸며볼 수도 있다. 다만 내 것까지 23권의 동화책을 어디서 누구 돈으로 사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새로운 학교에서 1학년 1반 친구들과 함께한 지도 벌써 3일이 되었다. 원래 오늘이 4일째여야 했는데 태풍 때문에 원격등교로 전환되어 간만에 집에서 조금 쉬고 있다. 교과서와 만들기 준비물을 가방에 바리바리 싸줘서 보냈는데 집에서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1학년은 처음인데다 학생 수도 전에 가르치던 것보다 많아서, 아이들에게 깔려죽는 건 아닌지 교실이 아수라장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컸는데 예상 외로 아이들이 꽤 순하고 의젓했다. 말도 잘 듣고 쉬는 시간에도 자기들끼리 잘 논다. 다만 좀더 작고 목소리가 쨍쨍거리고(?), 가끔 소매를 올려 달라든가 우유팩을 뜯어 달라든가 하는 부탁을 할 뿐이다. 부탁을 들어주면 쌩 하고 가서 다시 논다. 귀엽다. 둘째날 아침에는 날씨가 좋길래 아이들과 학교 산책을 나갔..
ㄱ이는 내가 떠난다고 했을 때도 조금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아마 드디어 내 나이를 알게 되어 기뻤을 것이다. 난 ㄱ이의 그런 눈치없음과 해맑음을 내심 걱정하곤 했다. ㄷ이는 말투가 무심한데 종알종알 말이 많았다. 항상 위아래 옷 색깔을 맞춰 입었고 귀여운 머리띠를 썼다. 마지막 날에 내가 당근 같다고 하자 ㄷ이는 마스크 위로 헤헤 웃었다. ㅈ이는 내가 선물로 준 페이퍼아트 세트에서 강아지를 접어서 내게 다시 선물로 주었다. 뼈다귀와 밥그릇도 세트라고 했다. ㅈ이는 심부름을 아주 좋아했고 칭찬을 받으면 의젓한 척 넵. 넵. 하고 대답을 했다. ㅈ이는 수업태도가 나쁘고 생활지도가 많이 필요했지만 난 ㅈ이의 웃는 얼굴을 정말정말 좋아했다. ㅅ이는 의젓하고 성실하고 나를 별로 귀찮게 하지 않는 학생이었는데 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번 주 수요일까지는 ㅇㅇ교육청 소속의 3학년 담임이고 목요일부터는 ㅁㅁ교육청 소속의 1학년 담임이 된다. 관사를 비우고 교실을 넘겨주고 또 교실을 넘겨받아야 한다. 떠날 준비와 만날 준비를 한꺼번에 하고 있는데, 둘 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인수인계 자료를 정말 열심히 만들었고(다들 감탄할 정도로) 사비를 털어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샀고 방금까지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쓰다 왔다. 그런데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눈에 밟히고 전부 미안하기만 하다. 내가 재임용에 합격하자마자 바로 일을 그만뒀으면, 아이들은 처음부터 나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담임선생님이 중간에 바뀌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운동장에 나가서 놀려고 했는데 비가 온다고 한다. 아쉬운 대..
때는 지난 3월의 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교실 환경용품을 사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는데 도무지 사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원래 교실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성격은 못 되는 데다가 한 해 쓰고 버릴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굳이 늘리고 싶지 않았다. 꽃씨와 화분과 흙을 묶어 파는 세트를 주문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래 이것들은 적어도 산소는 만들어주겠지 4월 5일 식목일에 맞추어 꽃씨를 심었다. 싹은 언제 나냐는 아이들의 물음에 일주일 정도 기다리면 된다고 답하면서 나는 속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나도 식물 키우는 데는 재능이 없는데 싹이 안 나면 어떡하지 상처 입은 동심을 뭘로 수습하지 그냥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모종을 살 것을 그랬나(하지만 돈이 없었다) 아니 차라리 플라스틱 쓰레기를 살 걸... 아이들은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