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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이상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살아 있나. 거기서는 아기들이 죽고, 엄마들과 아빠들이 죽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함께 춤을 추고 놀이를 하던 선생님들이 죽고, 의료진들이 죽고 기자들이 죽고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죽고 있는데 나는 왜 아무런 불편함도 없이 살아 있나. 그들과 나를 구별할 만한 차이점을 찾아보았다. 무엇이 그들과 나를 갈라놓는지. 어떤 이유로 그들은 죽어야 하고 나는 살아도 되는지. 그러나 그런 건 없었다. 그들도 나도 특별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죽는 이가 하딜 아부 사다(Hadeel Abu Sa'da, 25세)가 아니라 나라고 해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하딜이 죽었다. 나는 ..
출처도 내용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이런 대화가 있다. 제자가 스승에게 "메시아가 나타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라고 묻자 스승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다."라고 대답했더라는. 누가 했던 말인지 궁금해서 이런저런 키워드를 넣어 열심히 검색해봤는데 나오는 게 없는 걸 보면 내가 지어낸 말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내게도 바로 그 재림예수 같은 존재가 있으니 바로 항우울제다. 약을 복용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약을 먹기 전과 후에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쉬고 똑같이 말한다. 그런데 마음이 둥글어지고 뭉툭해졌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처음엔 마음이 더 이상 뾰족하지 않고 아프지 않다는 것에 놀라고 기뻤다. 그런데 며칠..
지난 9월 16일에는 국회 앞에서 교사들의 9차 공교육정상화 촉구집회가 있었다. 나는 그 집회 스탭이었고, 동시에 자유발언자로 무대에 올라가서 발언도 했다. 모인 사람이 3만 명이었는지 4만 명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마이크를 들고 말하는 내 모습이 담긴 영상이 뉴스에 짧게 나오기도 했고 우리학교 교사 단톡방 같은 곳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들 참 잘했다고, 내 발언이 감동적이었다고 칭찬해 주었는데 나는 어쩐지 별로 기쁘지가 않고 그저 피곤하기만 했다. 동의하지 않는 집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진심으로 쓰지 않은 발언문을 읽고 응원받는다는 것이 몹시 이상했다.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집회가 끝나고는 완전히 지친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때마침 환절기라 컨디션이 최악이었..
템플스테이를 다녀왔습니다 조수석에 동생을 태우고 한시간 동안 운전해서 영어로 읽으면 문라이즈 마운틴...이 되는 멋진 산에 있는 오래된 절에서 하룻밤을 자고왔어요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절에 도착해 방을 안내받고,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 짐을 풀고 서늘한 바닥에 드러눕자 마음이 말랑,하고 가벼워졌습니다 우째 이런일이??? 아무것도 안 하고 눕기만 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안팎에서 나를 몹시 괴롭히고 두들겨대던 소음들이 거짓말처럼 뚝 하고 그친 것입니다... 머릿속의 스위치는 당연히 꺼지지 않고 여전히 수만 가지 생각들이 쉬지 않고 점멸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뇌수를 찌르고 심장을 조이고 호흡을 막는 대신 그냥 두둥실, 떠올랐다가 흘러갔어요 고통 없는 사고 두렵지 않은 적막 정말로 낯선 느낌이었습니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수십 번 했던 얘기를 또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항상 똑같은 얘기를 별의별 방식으로 말하고 또 말해서 이젠 더 돌려 말할 방법도 없다. 너무 절망스럽다!!! 사람들이, 사회가, 지구가 너무 많이 아파서 도저히 나 혼자 웃을 수가 없다. 내 깜냥 안에서 열심히 듣고 말하고 읽고 쓰면서, 사람들에게서, 또는 언어와 이론에게서, 또는 그저 도도히 흐르는 시간의 법칙 안에서라도 어떻게든 희망을 찾으려는 그 모든 시도들... 다 수포로 돌아갔다. 오늘은 또 마음이 힘들어서 대학생 때 쓰던 노트를 들춰보았다. 2020년 7월 12일. (...) 너무 많은 것이 나를 아프게 한다. 세상이 너무 폭력적이고 수치를 모른다고 느낀다. 나로 사는 것마저도 자주 힘겹고 고단하여 두..
비... 비... 비... 비가 내 활력과 에너지를 전부 가져가고 나는 껍데기만 남았다. 어쩌자고 일년 강수량의 절반이 여름에 쏟아지는 나라에 태어나서 매년 장마철마다 이 괴로움을 겪고 있을까 힘이 안 난다 괴롭다... 파란 하늘이 너무 보고싶다. 언제나 엉망진창인 ㅇㅇ이의 책상을 보고 짜증이 치솟을 때마다 4학년? 5학년? 담임선생님이 종업식 날 내게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이 "책상 좀 정리해라"였던 것을 떠올린다. 붓다가 옳았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담임선생님이 나이고 내가 그 담임선생님이고 나는 지금 그저 업보를 청산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내 책상에 비하면 ㅇㅇ이의 책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계속 생각해보니, 그렇다. 지금까지 (비록 길지 않은 경력이지만) 별의별 어린..
뭘 안 쓴 지 오래되었군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요즘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고 또 아이들끼리의 관계도 좋고 수업도 잘 되고 학급운영도 원활해서 교사효능감이 꽤 높은 상태다 약 2년 3개월의 경력 중에서 지금이 가장 좋은 선생님인 것 같다 근데 구체적으로 자랑할 기운은 없음... 그리고 날씨가 좋아서 기분도 좋다 1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5월 초록의 계절 장미의 계절 그리고 내가 세상에 나온 계절이다 생일에 별 의미를 두지는 않는데 그래도 5월에 태어났다는 건 참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 맞다 최근에 종합심리검사(풀배터리 검사)를 받았다 50만원 눈 딱 감고 긁었다 온갖 재미있는 퍼즐을 풀고 그림도 그리고 임상심리사 선생님이랑 이야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이었...긴 한데 난 뭘 기대했던 걸까? 나는 열쇠가..
어제는 조금 괴로웠다. 날씨가 좋아 자전거를 좀 탔는데 무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덥고 목말라서 얼음물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녁메뉴가 잘못되었거나... 이유가 어찌됐든 어제는 저녁 내내 심장이 바쁘게 뛰고 속이 더부룩하고 숨쉬는 것도 편치 않았다. 심장과 폐와 위장이 합심해서 내게 뭔가 항의를 하고 있었다. 알았어 미안해 미안하다고 자려고 누워서 유튜브를 켰다. 나쁜 습관인 건 아는데 요즘 안 그러는 사람도 있나... 고요한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잡생각들보다 유튜브 화면의 빛과 소리가 훨씬 덜 시끄럽기 때문에 영상을 틀어놓고 보다가 잠든 지 벌써 몇 년 되었다. 틀어놓는 영상은 매번 달라지는데 슬라임이나 폴리머클레이를 주물럭거리는 영상이나 철학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