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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이름뭘로하지
보고 싶은 우리 할머니는 내가 뭔가 한심한 행동을 할 때면(무척 자주 있는 일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너는 지금쯤 시집 가서 남편과 시가족들에게 매맞고 있었을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요즘 이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비록 12~13살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적절한 말은 아닐지언정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나는 게으르고 잡생각을 많이 하며 손끝이 야무지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특성은 21세기의 초등학교 교사에게도 별로 장점은 아니지만 20세기의 아내/며느리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단점이었을 것이다. 반면 책을 많이 읽었고 시험을 대체로 잘 본다는 나의 장점들은 21세기에는 꽤나 괜찮은 능력으로 간주되는 것들이지만, 전근대의 평민들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넘어 아예 발견조차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에는 퇴근하고 나서 광주극장에서 열리는 gv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환승하려고 유스퀘어 터미널에서 내렸다가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버스를 거꾸로 타고 집에 돌아왔다 직장인 주제에 감히 평일 저녁 외출을 하고 싶어하다니 내가 어리석었다 하지만 그대로 돌아가기는 왠지 아쉬워 유스퀘어 안에 있는 영풍문고에 들러서 자료검색 컴퓨터에 이것저것 넣어보았다 라캉 알튀세르 바르트 레비나스 검색 결과는 많이 나오는데 재고는 한 권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우치다 타츠루의 책이 딱 한 권 있었는데 그건 이미 내 방에 꽂혀있다 안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더욱 꽁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유동인구 많은 커다란 터미널에 축구를 해도 될 만큼 넓은 서점 안에 프랑스 철학을 위한 공간은 바늘 하나만큼도 없구나 하긴 ..
얼마 전 친구가 싸이 '흠뻑쇼'에 다녀온다고 말했을 때 나는 곧바로 이 기사를 떠올렸다. https://www.hani.co.kr/arti/area/gangwon/1053044.html 싸이 ‘흠뻑쇼’ 철거노동자 추락사…“급하지 않은 작업, 비 오는데 강행했나”강릉시민행동 “노동자 부주의로 결론짓지 말아야…“시·싸이 소속사 진상규명·재발방지 대책 마련해야”경찰 “관련자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입건 예정”피네이션 “애도…대책 마련에 www.hani.co.kr 지난 7월 30일 강릉에서의 공연이 끝난 후, 조명탑을 철거하던 몽골 이주노동자 ㄱ씨가 작업 도중 미끄러져 15m 아래로 떨어졌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공연이 열린 종합운동장은 이듬해 4월까지 출입을 제한할 예정이었으므로 철거는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
방학식은 목요일이었다.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정확히 일주일이 되었구나 그동안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 학기를 마무리하고 관사를 정리하고 짐을 택배로 보내고... 학기의 마지막 2주일쯤은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는 데 온 정신을 다 쏟아야 했다. 웃어주자, 만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사랑과 관심을 바닥까지 닥닥 긁어서 다 주고 오자. 힘들어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방학식 날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고 있으려니 한없이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미안한 거지? 첫 해였던 작년과 비교해 보면 올해는 (당연하지만) 수업도 학급운영도 훨씬 잘했고 내 삶의 질도 훨씬 높았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생활지도도 일관성 있게 할 수 있었고 아이들도 더 안정을 느꼈을 거라고 생..
마지막으로 내적 완결성을 갖춘 글 한 편을 쓴 지 꽤 오래되었다. 금요일에 조퇴도 안 쓰고 모니터 앞에 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완결된 글을 당연히 못 쓰지, 아무것도 완결되지 않았으니까... 요즘은(최근 몇 년간은) 어떤 생각이든 도통 5분 이상 지속되는 법이 없이 곧바로 뒤섞이고 방해받고 사라진다. 이유는 많다. 우선은 와글와글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분 단위로 적응해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됐고, 당연하지만 인터넷과 sns가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 생각을 잘 붙잡고 이어나가봤자 괜찮은 결론을 얻으리라는 기대가 이제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든 임박한 재앙(기후변화와 식량위기), 참담한 현실(아무 뉴스나 켜봐라...), 불확실한 미래(자, 교사가 됐어, 이제 ..
일요일 저녁에 한 줄이 나와서 출근했는데 컨디션이 심상치 않았다 목과 머리가 아팠고 으슬으슬 추웠다 그래도 코로나라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하고 비가 오는데 너무 얇게 입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바보 불행 중 다행으로 월요일에는 수업이 한 시간밖에 없다 1교시에 반장을 뽑고 나머지 시간 동안은 아 추워, 아 춥다, 중얼거리며 교무실에 앉아있거나 휴게실에 누워있었다 그때 검사를 해볼걸... 하는 후회를 아직까지 하고 있는데 또 생각해보면 그때 검사했어도 한 줄이 나왔을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을 집에 보낸 후 다시 검사를 해보았는데 처음에는 선명한 한 줄이었다가 점점 아주 희미한 두 번째 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홀리... 5분 후에 교무회의가 있었는데 일단 병원으로 뛰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도 무..
오늘은 아주 멀리까지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으면서 나의 결혼식을 상상했다. 딱히 결혼에 로망이 있다기보다는 원래 걸으면서 별의별 상상을 다 하는 편이다. 아무튼 나의 결혼상대가 결혼식에서 나의 최애 드라마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의 수록곡 Settle for me에 맞춰 춤을 춰주는 장면까지 꽤 구체적으로 상상했는데 정작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아서 접었다. 야... 이건 아닌 것 같아. 응... 아닌가 봐... 아무튼 그렇게 오래오래 걸어서 당근마켓에서 우쿨렐레를 사 왔다. 몇 달 전 음악학원을 그만두면서, 학원에서 빌렸던 우쿨렐레도 함께 반납하고 적적한 일상을 보내던 참이었다. 이제 내 악기가 있으니 아무때나 연습할 수 있어! 더 멋진 방..
여행 둘째 날은 전날과 날씨가 딴판이었다. 바다는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고 나는 롱패딩을 벗어 한 손에 들고 돌아다녔다. 전날에 오동도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파제만 다녀온 것이 아쉬워서, 다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오동도로 향했다. 푸른 바다 위의 오동도는 전날과는 다른 섬 같았다. 아직 동백철이 아니었음에도 오동도는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그래서 오히려 할 말이 별로 없다. 사이 좋은 가족 친구 커플 여행객들 사이에서 혼자, 생각보다 가파른 오르막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면서, '우와 짱이다 진짜 예쁘고 기분 좋다 역시 사람이 나무와 흙을 봐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나 할 뿐이었다. 행복했다. (역시 사람은 생각을 안 하고 글을 안 쓸수록 행복한 법이다...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두워? 혹시 블로그 같은 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