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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국어수업. 이야기를 읽고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수업이다. 교과서에는 그림책 <엉뚱한 수리점(차재혁 글 최은영 그림)>이 실려 있다. 당연히 조각조각 잘려 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왔다.
그림책을 읽자고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림책 자리'로 모여 앉는다. 먼저 표지와 제목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왜 엉뚱한 수리점일까요?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여러분은 무엇을 고치고 싶나요? 시우가 "빨리 읽고 싶다"라고 중얼거린다. 책읽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아이들이 얼른 읽고 싶어서 애를 태울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엉뚱한 수리점>의 줄거리는 이렇다. 무엇이든 고치는 수리점 문앞에 어른들이 줄을 선다. 그런데 주인공 소이의 눈에는 고쳐야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삐그덕거리는 의자는 소리가 재미있고, 화분에서 자라는 강아지풀은 간지럽히기 놀이하기 좋은걸. 소이는 수리점에 빗자루를 가져가서 '하늘을 날 수 있게 고쳐 달라'고 하는데, 수리점 아저씨는 '그건 불가능하고, 대신 청소를 더 잘할 수 있게 고쳐 주겠다'고 대답한다. 그냥 수리점을 나오며 소이는 생각한다. '왜 재미있는 것을 재미없게 고치려는 거지?'
책을 다 읽고 교과서에 있는 문제를 푼 뒤, 전날 만든 활동지를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이 주인공 소이가 되어 망가진 물건의 쓰임을 떠올려 보는 활동이다. 조율 안 된 피아노, 구멍 난 화분, 중요한 부분이 찢어진 책 같은 물건을 재미있게 사용하는 방법은 뭘까? 아이들의 대답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기도 하고 완전히 새롭기도 하다. '고장난 시계가 있으면 엄마 아빠한테 아직 잘 시간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어요!'
두 번째 활동은 내가 소이라면 어떤 물건을 고쳐달라고 할 지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인기 물품(?)은 동생이다. 말도 잘 듣고 장난도 안 치는 동생으로 바꾸고 싶다고 한다. 슥삭슥삭 열심히 적는 아이들을 보며 문득 이 활동을 연극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활동하는 동안 포스트잇에 각각 의자, 피아노, 책, 화분, 시계, 자전거, 그리고 엉뚱한 수리점이라고 적어 놓았다.
원래 세 번째 활동은 마음에 드는 부분을 필사하는 것인데, 내일 하기로 하고 일단 아이들한테 책상을 전부 뒤로 밀라고 했다.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그림책 연극을 만드는 데 익숙해서 벌써 눈이 반짝거린다. 교실 중앙은 그대로 무대가 되고, 포스트잇이 붙은 의자 일곱 개가 나란히 놓였다.
"여기 엉뚱한 수리점이 있어요. 문앞에 어른들이 줄을 서 있네요."
수리점 의자에 앉은 아이가 수리점 주인이 되고, 물건 의자에 앉은 아이가 그 물건을 고치러 온 어른이 된다. 일곱 명의 아이들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줄줄이 앉는다. 주인공 소이 역할을 맡은 아이는 여섯 개의 의자를 차례차례 지나가며 어른들에게 질문을 한다.
"아주머니, 무엇을 고치러 오셨어요?"
"내가 아끼는 화분인데 구멍이 나서 고치러 왔지."
"왜 고쳐요? 화분에 물을 넣고 분수 놀이를 하면 재미있잖아요."
대사는 이런 식으로 그 자리에서 만들어낸다. 자기가 아까 쓴 활동지 내용이 그대로 대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이 역할 학생은 자기 활동지를 들고 나와야 한다.) 여섯 명의 어른들과 대화하고 나면 소이는 수리점에 도착한다.
"무엇을 고치러 왔니?"
"샤워기를 고치러 왔어요. 자동으로 머리를 감겨주게 고쳐 주세요."
이 대사도 아까 자기가 활동지에 쓴 내용으로 만드는 것이다. 수리점 주인 역할의 아이가 소이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거절하는 장면으로 연극은 끝난다. 재미를 위해 결말은 수리점 주인의 마음에 맡기기로 했다. 그런 다음 자리를 한 칸씩 옮겨 앉으면 자연스럽게 역할이 바뀐다. 소이는 첫 번째 어른이 되고, 수리점 어른은 관객으로 돌아가고, 관객 중 한 명이 소이가 된다. 바뀐 역할로 다시 연극 시작. 한 번 더. 또 한 번 더. 모든 아이들이 모든 역할을 해볼 때까지.
20명의 학급이었으면 아마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반은 11명이고 여차저차해서 그때는 교실에 9명밖에 없었다. 똑같은 연극을 9번 하면 지루할까? 아이들은 전혀 아니라고 한다. 어떻게 모든 회차에서 목소리가 똑같이 짜랑짜랑 활기찬지.
소이가 아홉 번 수리점 앞을 지나간다. 어른들은 아홉 번 물건을 고치러 온다. (어쩐지 회차를 거듭할수록 어른들은 화가 났다. "아니!! 자전거 바퀴가 떨어져 버렸어!!" 대체 왜 화내는 거냐고ㅋㅋㅋ) 수리점 주인은 소이의 물건을 정중하게 돌려보내기도 하고 "수리수리 마수리" 주문으로 고쳐 주기도 한다. 고쳤으면 하는 물건(?)이 동생일 때는 관객이 즉석에서 동생 역할이 되었다. 수리를 받은 뒤 동생이 더 말썽꾸러기가 되는 결말도 일어났다.
연극은 30분 정도 걸렸다. 4교시 끝. 우리는 다 너무 많이 웃어서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로 책상을 정리하고 급식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과 있으면 가끔 내가 마법사가 된 것만 같다. 그림책과 의자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아이들의 능력일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되어 보는 능력, 그것이 문학 수업과 연극 수업의 공통된 목표일 것이고, 내가 우리 아홉 살 아이들에게 길러 주고 싶은 가장 중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가장 정의롭고 자유롭다.
자, 그래도 내일은 오늘 완성 못한 활동지를 다 풀어야 한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필사하고, 낱말 주머니를 활용해 간단한 소감을 쓸 것이다. 상상력만큼 읽기 쓰기 능력도 중요하니까...ㅋㅋㅋ 욕심 많은 선생님을 만나서 아이들이 고생이 많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붙은 동그란 이마,
혀 짧은 목소리,
연극이 한 번 끝날 때마다 까르르 까르르 웃는 목소리,
그 무엇도 고치고 싶지 않다.
재미있는 것을 재미없는 것으로 고치기만 하는 세상에서
너희가 최대한 오래 엉뚱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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