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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slowglow01 2022. 7. 4. 17:20

할머니가 죽은 지 딱 일주일이 되었다 보통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던데 다른 사람의 죽음을 겪은 입장에서도 해당되는 얘기일까 나는 지금 부정과 분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일주일째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래도 되나 아니 근데 하고 중얼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있었는데
바로 여기 있었는데
밥도 먹고 티비도 보고 심부름도 시키고 부르면 대답도 해주었는데
어제까지 있던 사람이 오늘부터 갑자기 없을 수가 있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니 어떻게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질 수가 있나 분명 있었는데 내가 똑똑히 봤는데
근데 이제는 없는 거라고
이럴 수가 있나... 이게 맞나 이게 가능한 일이냐
하면서 일주일째 줄줄 울고 있다 도무지 납득이 안 되어가지고


엄마가 죽었을 때는 어려서 몰랐는데 누군가 죽는다는 건 온 세상이 그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없는 세상으로 바뀐다는 뜻이었구나
하다못해 멀리 아르헨티나에 있는 한 그루 나무조차도 할머니가 있던 세상의 나무에서 할머니가 없는 세상의 나무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다 모든 것이
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알던 온 세상이 영영 떠나가는 것이었구나

이어폰에서 선우정아의 도망가자가 흘러나오는데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니고 할머니가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근데 그곳은 이제 어디에도 없어서 또 버스에서 줄줄 울었음 어제 얘기임


명복도 모르겠고 좋은 곳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좋은 곳 안 가고 나랑 있고 싶어했다
내가 우리 지연이는 여우고 죽어야 쓸것인디 라고 하도 노래를 부르길래
더 나이를 먹어도 신랑감이 없으면 어디서 대역배우라도 구해다가 결혼식 퍼포먼스라도 보여드려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남자친구 생겼다고 얘기했을 때 그렇게 꼬치꼬치 물으면서 좋아해놓고
(심지어 병원에서 경황 없을 때도 고모한테 자랑했다고 한다)
낯짝이나 한번 보고 가시지...

아니 이거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아서 억울해 죽겠음
손녀가 25살밖에 안 먹었는데 성질도 급하게 죽어버린 건 할머닌데
왜 이걸로 평생 한 처먹는 건 내가 되어야 함
네? 할머니 대답 좀 해보씨요


핸드폰 사진첩에서 할머니 사진을 찾는데
내가 그동안 즐거운 시간을 너무너무 많이 보낸 거임
맛있는 것도 먹고 친구도 만나고 멀리 여행도 가고 술도 마시고
그리고 내가 그러는 동안 할머니는 집에 있었음
아들과 손녀들을 기다리면서 불 꺼진 빈 집에서 혼자서
하루종일 큰 볼륨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종편 채널을 틀어놓고
약을 먹고 파스를 붙이고 반찬을 하고 아픔과 싸우면서 하루종일 하루종일

원래 할머니도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니면서 재미나게 살았다는 것을
그 생활을 그만둔 이유는 갑자기 엄마를 잃은 고물고물한 손녀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내가 아니면 할머니의 말년이 이토록 외롭고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을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고... 하지만


이게 다 존나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할머니 생각을 하든 말든
우리가 할머니 영정 앞에 얼마나 많은 꽃을 갖다놓든(꽃을 좋아하던 양반이었으니까)
장례식에 손님이 몇 명 왔든 이제 다 무슨 소용이냐
내가 살면서 앞으로 얼마나 멋진 곳을 가게 되든
돌아와서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했을때 왔냐 밥묵었냐 라고 물어봐줄 할머니가 이제 없는데
그게 다 존나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단 하나도 하고 싶지 않다


할머니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고 오직 그것만이 내게 유의미한 위로가 된다
아니 근데 (무한반복)


이걸 왜 써놓냐... 그러게
왠지 써놔야 할 것 같았음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할머니한테 전화하고 싶다
할머니
뭣하요
아니 아직 밥 안 먹었지
아니 그냥 보고싶어서 전화했어요
네 이번 주말에 내려가요
네 잘 챙겨 먹어요
진짜라니까
네 알았어요
들어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