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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얘기

<이사> 불태우고 태어나기

slowglow01 2025. 8. 11. 16:02

여자아이가 한 커플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과 결혼하고 아기를 낳기를 바란다. 여자는 내키지 않는다. "여기서 태어나서 살면 행복할까?" "너도 그렇게 살잖아."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었어." 여자는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남자를 뿌리치며 말한다. "태어나고 싶은지 아기한테 물어보고 결정할게."

여자아이의 이름은 렌코(렌). 초등학교 6학년. 부모의 이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빠는 이미 집을 나갔다. 렌은 어떻게든 가족의 붕괴를 막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이사(1993)'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정하고 투쟁하다가 끝내 받아들이는 소녀의 여름을 그린다. 그러니까 한 단어로 말하면 '성장담'이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하지만 렌의 투쟁은 다른 성장담들과는 빛깔이 조금 다르다. 푸른 여름이 배경이지만 영화는 어둡고 뜨겁고 고통스럽고, 뒤로 갈수록 논리적인 전개에서 이탈한다. 이렇게 부르면 어떨까, '탄생기'라고.



애써 명랑한 척하지만 렌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견디기 힘들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싸워도 참았는데) 못 참고 떠나버린 아빠가 밉고, 나의 동의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둘만의 생활을 이어가려고 하는 엄마도 밉다. 이혼 가정을 이상하게 여기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불편해진다. 내 마음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엄마 아빠에게 항의하기 위해 렌은 화장실 문을 잠그고 틀어박히는데, 엄마 아빠는 화장실 문 앞에서 또 싸운다. 내 잘못이니 네 잘못이니, 급기야 몸싸움으로 번지는 악다구니를 듣고 있다가 렌은 큰 소리로 묻는다. "왜 낳았어?"

왜 낳았어? 렌은 앞서 들었던 커플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함께 살지 않을 거라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면, 서로에게 고통만 줄 거라면 나를 왜 낳았어? 이런 삶인줄 알았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거야. 나한테 미리 물어봤다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미 내 의사에 반해서 태어나버렸고, 이젠 무를 수도 없으니 살아가고 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만약 내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나는 태어나기를 선택했을까?

화장실 점거 농성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렌은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 시도로 셋이 함께하는 가족여행을 계획한다.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셋이 같이 '비와 하루' 여관에서 묵고, 기차도 타고, 축제와 불꽃놀이도 보자! 엄마 아빠 몰래 기차와 호텔까지 예약해서 결국 여행을 떠나지만, 재결합의 꿈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엄마는 너무 상처받았고 아빠는 너무 지쳤다. 화가 난 렌은 엄마 아빠를 버려두고 축제가 벌어지는 마을로 혼자 달려나간다. 그러다 흰 수염이 성성한 한 할아버지네 집에서 잠시 머물게 되는데, 할아버지는 살면서 자기가 한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잊어버리는 게 슬프지 않아요?"
"슬프지 않아. 기억은 한 손으로 세어볼 정도면 충분하단다."
렌은 자신의 추억을 헤아려 보고, "손이 부족해요"라고 기쁘게 말한다. 할아버지의 딸인 아주머니는 렌에게 간식을 가져다 주는데, 남동생이 어릴 때 무척 좋아하던 간식이라고 한다.
"지금은 어디에 있어요?"
"위에."
"2층에요?"
"아니, 훨씬 훨씬 위에..."
렌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미소짓는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게 '이상해진다'. 지금까지 렌은 야무지고 사랑스러운 소녀였는데, 갑자기 '얘가 왜 이래' 싶은 행동들을 시작한다. 영화를 첫 번째로 볼 때는 렌이 걱정돼서 안절부절못했다. 아가, 밤이 됐잖아! 엄마가 찾고 있잖아! 얼른 돌아가야지! 두 번째로 보면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렌은 죽은 아이의 음식을 먹으면서 일종의 임사체험을, 그러니까 '태어나고 싶은지 물어보는' 모험을 시작했다고.

태어나고 싶니? 이미 태어났는데 태어나고 싶은지 결정하려면 시간을 뒤로 돌려야 한다. 전통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축제는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펑펑 터지는 화려한 불꽃놀이 아래서 렌은 엄마와 잠깐 마주친다. 엄마는 렌에게 사과하지만, 렌은 "그런 건 이제 상관없어" 라고 대답하고 다시 도망친다. 과거로, 과거로. 이제 렌은 들판에서 이루어지는 장대한 쥐불놀이를 본다. 어마어마하게 큰 짚더미가 활활 타고 있다. 타오르는 불길은 영화의 앞부분에서, 집을 나가면서 짐을 정리하던 아빠가 가족사진을 태우는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렌은 깜짝 놀라 가족사진을 꺼내 불을 끄려고 애썼다. 활짝 웃고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을 지키려고. 그런데 지금은 거대한 불이 모든 것을 삼키고 있다. 눈이 뜨거울 만큼 강한 빛을 내며. 모든 것이 불길에 휩싸여 무너지는 모습을 렌은 물끄러미 바라본다.

불이 꺼지자 렌은 숲으로 들어간다. 숲은 어둡고 적막하지만 어쩐지 위험하지는 않은 듯한, 마치 태곳적의 숲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어쩌면 이곳은 아직 렌이 태어나지 않은 곳일까. 새하얀 옷을 입은 렌은 사람이 아니라 숲의 요정이나 귀신처럼 보인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렌은 캄캄한 숲이 두렵지 않다. 지팡이를 꺾어 숲을 누비고, 강에서 무언가를 잡았다가 놓아주고, 늑대처럼 아우 하고 짖다가 벌레를 잡아먹기도 한다. 춥고 배가 고프지만 자유롭다. 이곳에서는 엄마도 아빠도 생각나지 않는다. 숲은 렌에게 묻는다. 태어나고 싶니?


숲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도착한 렌은 모닥불이 있었던 자리 곁에서 잠에 들었다가, 환상 속에서 눈을 뜬다. 멀리 물속에서 사람들이 아주 크고 멋진 배를 줄에 메고 다가오고 있다. 전통 방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배는, 일본 문화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영락없는 상여 같다. 상여를 멘 남자들 중에는 렌의 아빠도 있다. 예쁜 꽃무늬 원피스를 맞춰 입은 엄마와, 렌 본인도 있다. 물장구를 치며 깔깔 웃고 있는, 단란하고 행복한 지난여름의 우리 가족이다. 렌은 속내를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렌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소중한 추억이, 영원할 것만 같은 모습으로, 상여와 함께 다가오고 있다. 저 배에 타면 그때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렌은 결정을 한다. 웃으면서, 양손을 흔들면서 목청껏 외친다. 축하합니다!!! 오메데또 고자이마스!!! 목이 아플 때까지 몇 번이고 외친다. 그와 동시에 상여가 불길에 휩싸인다. 즐겁게 놀고 있던 환상 속의 엄마와 아빠도 배가 불타는 것을 보더니 렌을 두고 떠나 버린다. 환상 속의 렌은 엄마 아빠를 애타게 부르지만 소용 없다. 나를 혼자 두지 말라고 애원하는 환상 속의 렌을, 진짜 렌이 꼭 껴안는다. 그리고 다시 외친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난 태어나기로 했어요. 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합니다.

태어난 렌은 잠자리 곁의 모닥불을 다시 지핀다. 바다에서는 아직 배가 활활 불타고 있다. 희망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살풍경한 모습이지만, 이것이 탄생의 모습이다. 세상의 전부였던 가족을, 한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던 추억을, 다시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자기 손으로 불태우고 렌은 태어나기를 선택한다. 어떤 고민을 거쳐 그런 선택을 했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렌은 그 선택을, 자신의 탄생을 스스로 있는 힘껏 축하한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렌은 숨겨두었던 이혼 서류를 엄마에게 돌려준다. 엄마가 동요 한 소절을 부르자 함께 불러주는 모습은 마치 렌이 엄마의 엄마인 것처럼 보인다. 렌은 철든 걸까, 성장한 걸까, 그렇기도 하지만 그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을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힘차게 걸어가는 렌을 향해 누군가 묻는다. "어디 가니?" "미래로요!" 이제 렌에게 다른 길은 없다.

겉으로 보이는 줄거리만을 요약하면 <이사>는 렌이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난 그보다는 렌이 자신의 고통을 불태우고 태어나는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탄생은 성장보다 고통스럽고 불연속적인 과정이다. 태어나는 게 꼭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삶을 선택한 렌의 눈빛에는 이제 강인함과 확신이 있다.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사랑하는 니체의 초인 Übermensch 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은 고통인가? 대답은 당연히 '예스'다. 소중한 이들은 언젠가 반드시 곁을 떠나고, 아름다운 추억은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고 더럽혀진다. 그렇다면 생은 축하할 만한 일인가? 렌은 대답한다. 내가 축하하기로 했으면 축하할 일이라고. 글의 첫머리에 등장했던 커플도 결국엔 아기를 낳는다. 렌은 태어난 아기에게 말한다. "축하해."

나는 렌처럼 강하지 못해서, 내 안에는 아직 타다 만 짚더미들이 남아 종종 마음에 화상을 입히곤 한다. 만약 내게 누군가 "태어나고 싶니?"라고 묻는다면 난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렌이 고래고래 외치는 "오메데또 고자이마스!!!"가 내게 조금 힘이 됐다. 그러기로 마음먹기만 한다면 모든 삶은 축제고 매일이 생일이다. 영화를 보고 나도 말해주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난 걸 축하한다고. 당신이 태어난 것도 축하한다고. 마음속에 활활 불타는 고통도, 아직 화장실에 숨어있는 내면의 어린아이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모든 추억들도, 전부 축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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