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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얘기

2025년 하반기 독서일기

slowglow01 2025. 11. 10. 17:48


시간과 물에 대하여(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이렇게 말하면 미안한데 요즘 서점가에서 비슷한 느낌의 책을 많이 봤다. 뭐냐면 자기-서사와 생태적 지식과 문학적 표현을 잘 버무려서 에세이인지 논픽션인지 불분명한... 어쨌든 감동적이긴 한 그런 책들. 다들 떠오르는 제목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아무튼 최근 몇 년간 베스트셀러 인문 분야에 그런 책이 많이 올랐다. 그래서 싫으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이 책도 저자 자신의 가족사와 아이슬란드의 고대 신화, 그리고 최근의 기후위기 상황을 엮어낸 에세이/논픽션인데 나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일단 저자가 아이슬란드인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가족의 생활 모습이나 기본적인 사고방식 같은 것들이 한국인과는 완전히 다르고, 익숙한 영미 문화권과도 많이 달라서 아! 이것이 북유럽이구나! 싶어 무척 새롭고 즐거웠다. 내가 외국 책들을 많이 읽는대봤자 기껏해야 일본, 미국, 서유럽이 거의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 민족지적 즐거움과 별개로 이 책이 경고하는 위기는 정말로 심각하고. 읽다 보면 우리가 진짜 무슨 일을 하는 건가 싶은 낭패감이 다가온다. 빙하가 녹고 있는데 ai가 다 뭐고 신공항이 다 뭐냐... 근데 당장 살아숨쉬는 우리는 어떻게든 또 먹고 살아야 하고. 어떻게 할까요. 읽으면서 고민해 봅시다. 기후위기는 80억 명의 조별과제이고, 미안하지만, 여러분과 나는 무임승차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나무 수업(피터 볼레벤)
가볍게 읽으려고 산 책이고, 정말 가볍게 읽었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진짜 쉽고 재미있는 대중교양서인데 왠지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강렬한 책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나무라는 생물은 기이하고 신비로운 종이었던 것이다.

사실 다들 나무가 생물이라는 것을 매 순간 의식하며 살지는 않잖아요. 사람이나 코끼리, 무당벌레 같은 게 생물이고 나무는 그냥... 거기 있는 존재잖아요.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고, 계절 따라 잎이나 떨어뜨리는. 나무를 생물로서 생각할 때는 보통 '지혜'나 '인내' 같은 가치와 연결지을 때가 많고.

그러나 숲 전문가인 저자가 보여주는 나무의 생활은 진짜;;; 살아 있는 것 같다. 나무도 소통하고 양육하고 경쟁하고 협력한다. 치열한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야말로 분투한다. 단지 그 시간의 스케일이 동물과는 비교도 안 되게 커서 느껴지지 않을 뿐. 나무는 별로 지혜롭지도 않다. 섣부른 선택을 했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나무도 오냐오냐 기르면 버릇이 나빠진다. 나무도 침입자를 경계하고 위협에 맞서 싸운다. (이 책에서 노루나 영양은 공포의 포식자로 등장한다. 관점의 차이ㅋㅋㅋ)

이 책을 읽고 나는 나무가 되는 상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무가 되어도 사람들의 편견처럼 그렇게 고고하고 평화롭지는 않겠지만. 햇빛과 벌레와 버섯의 세계에서 사는 것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지 않을까.


루시 게이하트(윌라 캐더)
나 원래 차가운 논픽션의 여자인데. 이 책을 읽고 문학의 세계에 다시 빠져버렸다. 한동안 도서관에서 800번대 서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십대 후반의 문학소녀로 돌아간 것 같아 스스로도 의아하다. 이 책 한 권이 그렇게 강력했다기보다는 내 정신상태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겠지만. 그치만 이 책도 분명 강력했다.

아니... 1935년 책이라고요. 저자는 윌라 캐더라고,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라고요. 기대도 없고 흥미도 없고, 그냥 심심하고 표지가 예뻐서 사봤을 뿐이다. 샬롯 브론테나 제인 오스틴 같은 느낌인데 훨씬 덜 훌륭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시대가 완전히 다른 건 아는데, 사실 내게 '드레스 입은 백인 여자' 시대는 다 똑같이 느껴진다) 

근데 그렇지가 않고... ㅠㅠㅠ 잠깐 똑똑한 척 멈추고 말할게요 ㅠㅠㅠ 소설이 마치 얼어붙은 강물처럼 ㅠㅠㅠ 반짝이고 아름답고 잔인하고 우아하고 슬픔에 가득 차 있다고요 ㅠㅠㅠ 삶의 눈부신 순간 그리고 상실 비탄 후회에 대한 이야기라고요 ㅠㅠㅠ 몇 달 전에 읽은 책이지만 아직도 루시만 생각하면 자꾸 하염없이 눈물이 나~~ ㅠㅠ 자꾸 하염없이 서글퍼져~~ㅠㅠ 흑흑 그렇게 나는 십 년만에 소설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여전히-영원히 슬픔의 사람이라서. ㅠㅠㅠ 


닫힌 방/악마와 선한 신(장 폴 사르트르)
사르트르의 희곡 두 편.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바로 이 희곡에서 나왔다. 나는 사르트르를 향한 순전히 철학적인 팬심으로, 그러니까 그의 희곡으로 그의 철학세계를 이해하겠다는 마음으로, 좀더 솔직히 말하면 <존재와 무>는 너무 두껍고 어려우니까 희곡으로 때워보자는 생각으로, 아무튼 아주 진지하게 이 책을 샀다. 그런데 세 페이지 정도 읽자 철학은 머릿속에서 싹 사라지고 대신 도파민이 터지기 시작했다...! 재밌다...! 그동안 철학자들한테 당한 게 하도 많아서 이제 철학자가 쓴 책이 재미있으면 오히려 좀 의아하다. 왜... 왜 재밌는 거지? 잊고 있었는데 사실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도 선정된 작가였던 것이다. 무시해서 죄송합니다. 철학 렌즈 빼고 봐도 너무 재밌어요. <존재와 무>도 그렇게 썼으면 참 좋았을텐데.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안드레아스 말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일란 파페)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오카 마리)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헬레나 코번)
농담도 아니고, 그냥 하는 말도 아니고요. 혹시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이 책들 중 한 권에 관심이 있다면. 댓글이든 쪽지든 저한테 연락주세요. 책을 보내드릴게요. 저랑 안 친해도, 저랑 아예 모르는 사이여도 상관없습니다. 널리 알리고 함께 고민하고 싶어요. 


피와 기름(단요)
아까도 말했듯이 내가 문학소녀였던 시절은 십 년 전이었기 때문에, 요즘(?) 젊은 작가들은 잘 모른다. 서점에 가서도 허허... 요즘 작가들은 이름들이 특이하네... 이러면서 지나간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좋아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요즘 작가! 단요의 종교 스릴러. 진짜 진짜 진짜 재미있고요 지적인 도파민이 팡팡 터지니까 심심할 때 꼭 읽으십시오. 후반부 전개가 좀 멀리 간다 싶기는 했는데(단요의 웹소설 작가 시절 작품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이 떠오름. 제가 유일하게 읽은 웹소설이어요) 그 나름의 재미가 있음. 저는 심심할 때마다 이 작품을 머릿속으로 영화화하면서 놀아요. 최우혁은 최우식 배우가, 조강현은 최민식 배우가 했으면 좋겠습니다.ㅋㅋㅋ


쿼런틴(그렉 이건)
이것만이 sf고 나머지는 다 가짜다!!!!
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요... 사람의 취향은 저마다 다른 법이고. 하드sf만 sf인 게 아니니까요. 요즘 유행하는 말랑말랑 sf도 좋은 작품들이 많겠지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합시다.
....그치만 역시 이것만이 sf고 나머지는 다 가짜다!!!!

내 사진은 아니고 출판사 SNS에서 가져옴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마리아 투마킨)
엄청 강렬하고 아름답고 슬픔. 내지 디자인도 엄청 멋짐. 이것도 약간 비슷한 책이 많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라고 느껴졌다. 진짜 좋아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김연수)
십 년 전 문학소녀로 돌아간 기념으로 십 년 전 최애 작가의 최애 작품집을 다시 읽음. 한참 감수성 풍부하던 시절에 김연수의 책을 읽어서 내 사고체계가 이렇게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ㅋㅋㅋ 여전히 좋은 작품도 있고, 다 까먹어서 완전히 초면인 작품도 있고.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십 년 전에는 좀 긴가민가 하면서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진짜 너무너무 좋았다. 2009년 작품인데 나에게는 올해의 단편이 됨.

영혼 없는 작가(다와다 요코)
세월(아니 에르노)
검은 사슴(한강)

이렇게 세 권. 내 마음대로 '미친여자 트릴로지'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 일본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미친여자 소설가들. 여러분이 있어 저도 미친여자 프라이드를 잃지 않고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요. 미친여자 만세!!!
(시 분야에서는 김혜순 님에게 빠짐)


리추얼의 종말(한병철)
전주 꽃심도서관에서 읽은 책. 과거의 리추얼이 '소통 없는 공동체'를 만들었다면 현재의 행사/축제 등등은 '공동체 없는 소통'을 만들고 있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소통과 공동체는 보통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로 여겨지지만 사실 서로에게 방해가 되기도 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의 삶을 돌아봐도. 단단하고 안정적인 공동체들은 관습과 억압으로 지탱되는 경우가 많고, 진정 소통하고자 한다면 공동체를 깨부술 각오를 해야 한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어쨌든 지금은 둘 다 박살이 났다는 것이다. 2020년대는 실제로도 비유적으로도 모든 것이 망가진 잔해와 같다. 공동체는 '이미' 파괴되었고 소통은 '이미' 불가능한데 사람들은 이제서야 그걸 발견하고 아이쿠! 세상이 왜 이렇게 됐지? 하는 중이다.

혐오가 너무 진부해진 나머지 이제는 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착하게 살자는 고리타분한 메시지가 힙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래, 혐오의 시대라고들 한다... 다들 공동체 같은 건 필요없다는 듯이 굴지만 사실 모두가 공동체가 없어 춥고 외롭다.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민관의 부단한 시도들. 지역축제와 노래교실부터 독서모임과 영화제까지. 의도는 알겠는데 왜 다 조금씩 공허하게 느껴지나 했더니 전부 '공동체 없는 소통'이기 때문이었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개인을 앞세우며 시작되는 일회성 소통은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다. 공동체가 이루어지려면 다들 좀 소통을 포기하고 좀 익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나도 도무지 개인이기를 포기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전근대의 백성들처럼 청포 물에 머리 감고 열한 살에 결혼하면서?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의 책 제목. 재밌으니 다들 읽으십시오)'. 의례 안에는 시간, 장소, 종교, 세속, 믿음, 폭력, 그야말로 인간의 공동체적 삶 전체가 들어 있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근대인은 이 끔찍하고 귀중한 옛 의례를 너무 쉽게 갖다 버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조악한 새 의례들뿐이다. 말은 많이 하는데 어쩐지 마음은 점점 허전해지는. 그렇게 무미건조해졌으면 정치적 올바름이라도 선취했어야 하는데 다들 알다시피 별로 그렇지도... 않은...

어떻게 할까? 한병철은 책의 후반부에 "나도 옛날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고 지금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새 의례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둘러대지만 본인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닌 듯하다. 나는 지금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데 가끔 이 아이들이야말로 리추얼의 화신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를테면 숨을 곳이 빤히 정해진 숨바꼭질을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방법으로 반복한다든지. 사실상 숨거나 찾는다는 행위의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매번 진지하게 숫자를 세고, 숨고, 찾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게 재밌니? 재밌다고 한다.

우리도 잔해 속에서 숨바꼭질을 할까? 재미는 조금 있고 의미는 별로 없는. 그런 놀이를 발명해서 그걸 계속 반복할 수는 없을까? 자기소개는 하지 말고, 친해지지도 말고 그냥 습관처럼 하고 또 할 수는 없을까? 그 안에서 다들 좀 뭉뚱그러진 서로를 발견하고. 껴안고. 다시 숫자를 세고... 그런 놀이를.
우리가 아이들에게 배울 것이 참 많다.


훨씬 많이 읽었는데 몇 권만 골라서 씀. 모아놓으니 재미있네요... 다들 즐거운 독서 괴로운 독서 마음 가는 대로 하시기를. 날씨 추우니까 감기 조심하시구요. 아프지 말고 울지 말고 죽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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