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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6 출근 D-4 본문
광주광역시가 고향이면서 왜 전라북도로 임용시험을 쳤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얼버무리지만, 실은 불안과 허영 때문이었다. 내 자의식을 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 광주는 뽑는 인원이 너무 적어서 떨어질까 불안했고, 전라남도는... 너무 낮은 합격 커트라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그것보다는 공부를 잘 하잖아? 그래서 뽑는 인원도 합격 커트라인도 중간 정도인 전라북도를 선택했는데, 뜻밖에 임용시험을 너무 잘 쳐버리는(?) 바람에 '그러게 광주를 지원하지 그랬냐'는 아쉬운 소리를 잔뜩 들어야 했다. 그래도 나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시험을 잘 봤으니 아마 발령지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1지망으로 쓴 전주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다. 광주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으니 문제 없다... 그러다 오늘 오전 10시 38분, "3월 1일자로 00으로 발령이 나셨어요"라는 전화를 받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불안과 허영 중 어느 쪽에 대한 벌일까.
그 전화를 받았을 때 공교롭게도 나는 버스를 타고 전주로 향하는 중이었다. 졸업증명서와 교원자격증을 도교육청에 제출하기 위해서. 하지만 교육청에서 나를 기다리던 건 도교육감 대신 교원인사과 과장님이 진행하는 간이 임명식이었다. 함께 (갑자기) 발령받은 다른 선생님과 둘이서 선서를 하고, 박수 없이 뻘쭘하게 임명장을 받고, 곧바로 장학사님의 차를 얻어 타고 00으로 향했다. 전주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 00교육지원청에 도착해서 발령통지서를 받고, 이번에는 00교육지원청 장학사님의 차를 타고 00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나라도, 고작 신규교사가 장학사 두 명의 차를 택시처럼 얻어 타고 발령교로 행차(?)하는 사례가 결코 흔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친절함 반 안쓰러움 반(쟤는 집이 광주인데 개학 직전에 00으로 발령이 났네...)의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전주에서 00초등학교로 이동하는 한 시간 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황망한 시간이었다. 실제로든 비유적으로든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굽이굽이 도도하게 흐르는 소백산맥과, 잿빛 논밭과, 내 옆에서 시속 130킬로미터로 운전하는 장학사님과, 내 가방 안의 임명장. 이게 정말로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내가 정말로 생전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시골 마을에 선생님이 되러 가고 있는가? 개학이 4일 남았는데?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어제 도로주행 시험에 떨어져서 면허도 없는데? 웃으려고 애썼지만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스물네 살 내 인생이 지금... 소백산맥을 넘어가고 있구나.
00초등학교가 위치한 00면은 내가 대학을 다녔던 다락리보다는 더 작고, 어릴 적에 명절마다 찾아갔던 시골 할머니네 동네보다는 더 컸다. 편의점이 두 개 있는 사거리가 가장 번화가. 여기서 살게 되는구나.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00초등학교는 내 생각보다 별로 작지 않은, 아주 오래되고 귀여운 학교였다. 예쁜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고 반겨주신 교감선생님도, 학교를 이곳저곳을 소개해주신 연구부장 선생님도 무척 상냥하셨다. 교장선생님은 비록 얼굴은 못 뵈었지만, 집 구하는 일로 걱정이 태산인 나에게 '내가 관사를 잘 쓰지 않으니 대신 들어가 사시라'고 제안해 주신 것으로 보아 천사임에 틀림없다. 반 아이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자료를 받아 들고, 빈 교실에 놓인 책상과 의자를 바라보면서, 조금씩 두려움이 가시고 그 자리에 기대가 싹트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선생님이 된다. 3학년 2반 담임 선생님이 된다. 지금은 이름과 사진뿐인 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놀고 밥 먹고 노래 부를 것이다. 준비는 전혀 안 되었지만 사실 언제라도 준비되었을 리는 없다. 어쨌거나 시작해야 한다. 불안과 허영, 두려움과 기대를 양 손에 쥐고.
광주로 돌아오는 길은 길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여전히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이 얼떨떨하기도 했고, 실무사님께서 타 주신 믹스커피를 원샷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잠은 오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자야 한다. 이번 주말은 아주 길 테니까. 3일 안에 이사와 발령 준비를 다 해야 하니까. 이렇게 쓰니까 새삼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정이네. 오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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