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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교단일기

210313 오늘의 일기

slowglow01 2021. 3. 13. 17:38

수요일 오후에 울면서 못 하겠다고 처음 생각한 이후로
내 마음은 가파른 '못하겠음'의 비탈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씻고 출근해야 하는데 하염없이 휴대폰만 바라보면서 괴로워하며 앉아 있었다.
저 진짜 학교 가기 싫어요. 못 가겠어요. 그래도 어쩌겠니, 니가 담임인데...
결국 유래 없는 대지각을 했는데
그게 오전 7시 40분이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아시겠죠?

이렇게 고단한 데는 어쨌든 이유가 있을 터였는데
아이들 탓을 하는 것은 도저히 (아직까지는) 직업윤리가 허락하지 않았고
그럼 결국 내 탓이 되는 것이 괴로웠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른 3학년에 비해 더 산만하고 말도 안 듣고 수업 태도도 안 좋은 것인지,
아니면 지극히 평범한 3학년들인데 그냥 내가 역량이 부족한 것인지 고민했지만
사실 어느 쪽이든 변하는 건 없었다. 어느 쪽이든 아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공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나는 그 교육을 하러 이 학교에 왔다.
하지만 내 온 정신이 그저 수면부족이나 우울증으로(또는 둘 다로) 실려가지 않고 1년을 무사히 보내는 데만 쏠려 있다면
대체 어떻게 더 나은 교육을 추구하겠는가?
교실과 나를 함께 살릴(아니면 둘 중 하나라도 살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금요일 창체 시간에는
이러다가는 진심으로 화를 내게 될 것 같아서,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한참 동안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 보았다.
선생님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절반의 아이들이 (한 명 빼고 전부 여학생들이었고)
야! 조용히 해! 선생님 봐! 라고 소리쳤지만
나머지 절반의 아이들은 (전부 남학생들이었다)
전혀 개의치 않고,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떠들고 장난치기 바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내게는 영원 같았지만 아마 5분보다는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을 떠올렸다. 화가 나면 펜을 바닥에 내팽개쳤지
나도 마이크를 집어던지면 두 번째 절반의 아이들도 나를 쳐다봐줄까?
그 생각을 하자 눈물이 차올랐고 하마터면 아이들 앞에서 울어버릴 뻔했다.
나는 마이크를 던지는 대신 첫 번째 절반의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늘 두 번째 절반 때문에 함께 혼나고 자기 말도 제대로 못 했던 첫 번째 아이들이 이 기회를 잡고
그동안 쌓였던 불만과 설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안했다. 사실 나보다 스트레스 받았을 사람은 같은 반인 이 아이들이었을 텐데
나는 이 아이들의 불만을 짐작하면서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변명하자면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두 번째 아이들은 그 소리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나는 두 번째 아이들을 하나하나 지목하면서 방금 들은 말을 똑같이 되풀이해 보라고 했다.
대답하지 못하면 다시. 또 다시. 똑같이 따라할 때까지 다시.
그러느라 수업 시간이 다 지났다. 결국 우리 반은 전교에서 꼴찌로 점심을 먹었다.
모두가 행복한 우리 반을 위해 어떤 규칙이 필요할지 생각해서 알림장에 적어 오세요, 라고 하고 아이들을 보냈다.

하루가 지난 지금은 그 행동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좀 폭력적인 것 같고, 또 다르게 생각하면 아무런 효과도 없는 쇼였던 것 같기도 하다.
월요일은 또 어떻게 보낼까
그래도 굳이 굳이 한 가지 나를 칭찬하자면
그렇게 마음이 엉망진창이 된 채로 점심을 먹으러 갔지만
식판을 건네주면서는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맛있게 먹어요"라고 인사해 주었다는 것이다.
너희를 절대로 미워하지 않을 거야
혼은 내더라도 화는 내지 않을 거야
실패하든 성공하든 계속 방법을 찾을 거야

다음 주부터는 더 이상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10시에 퇴근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활을 일주일만 더 했다가는 진짜로 고장나고 말 것이다.
수업 준비가 좀 부족하더라도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명료한 정신으로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더 열심히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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