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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쓰는 연습

231011 의식의 흐름

slowglow01 2023. 10. 11. 23:00

지난 9월 16일에는 국회 앞에서 교사들의 9차 공교육정상화 촉구집회가 있었다. 나는 그 집회 스탭이었고, 동시에 자유발언자로 무대에 올라가서 발언도 했다. 모인 사람이 3만 명이었는지 4만 명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마이크를 들고 말하는 내 모습이 담긴 영상이 뉴스에 짧게 나오기도 했고 우리학교 교사 단톡방 같은 곳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들 참 잘했다고, 내 발언이 감동적이었다고 칭찬해 주었는데 나는 어쩐지 별로 기쁘지가 않고 그저 피곤하기만 했다. 동의하지 않는 집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진심으로 쓰지 않은 발언문을 읽고 응원받는다는 것이 몹시 이상했다.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집회가 끝나고는 완전히 지친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때마침 환절기라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입맛이 하나도 없었고 기운도 없어 하루에 9시간 넘게 잠만 잤다. 주말에는 하루종일 핸드폰만 쥐고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글이라고는 단 한 줄도 읽지도 쓰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것은 생각만 해도 피곤해져서 넷플릭스에서 시트콤 한 편도 못 봤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오가며 짧고 멍청한 정크 컨텐츠만 섭취하며 지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이제 기운이 조금 돌아와 마치 재활하는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이스라엘의 국방부장관...이랬나. 찾아보고 싶지도 않다. 아무튼 그 사람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두고 '짐승'이라고 표현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가자지구가 폐쇄되었고 물과 전기 등 공급이 끊겼으며 이스라엘의 폭격이 계속 이어지며 사상자가 총... 몇 명이랬나. 이것도 찾아보고 싶지 않다. 아무튼 기사 한 줄 한 줄이 모두 믿을 수 없이 끔찍하다. 따뜻한 방에 누워 휴대폰으로 기사를 읽으며 끔찍해하는 나 자신도 끔찍하다. 얼마 전 분신한 택시기사에 대한 뉴스는 차마 다 못 읽고 껐다. 여기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단 하나의 죽음도 막지 못하는 글이라면. 세상이 너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더 밑으로 밑으로. 내가 아직도 안전하다는 것이 가끔 믿기 힘들다.

한 사람이 죽는다는 건 하나의 세상이 완전히 끝장난다는 뜻인데도 세상에 이렇게 많은 죽음이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 어렵다. 10.29 참사가 벌써 일 년 전이다. 잘 자다가 새벽에 잠깐 깼는데 뉴스 속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멍한 정신으로 사망자가 20명이었다가 50명이었다가 159명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학교 다니고 알바하고 직장 다니다가 쉬는 날에는 예쁜 옷 입고 이태원에 놀러 나온 평범한 젊은애들, 내 친구들이 그냥 갑자기 우르르 깔려 죽었다고. 이게 말이나 되나. 이럴 수가 있나. 그런데 이런 사고가 너무나 순식간에 잊혀지고 또 다른 사고들이 일어나고 책임자들은 갈수록 더 뻔뻔해지고, 나는 그럴 때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진짜 진짜 안 되는데... 라고 중얼거리기만 하고 있다.

세상은 아프고 나는 지쳤다... 얼마 전에는 밤에 혼자 산책하면서 여러 가지 미래를 상상했다. 운동(not exercise but movement)을 열심히 하는 삶,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삶, 큰병에 걸려 요절하는 삶... 환자가 되면 병원에서 어린이 환자들이랑 종이접기나 할까... 인생에서 무엇을 덜고 무엇을 더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춘기 때보다 더 극심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사실 사춘기 때는 이런 고민 전혀 안 했음. 그땐... 우울했다... 인생이 괴로웠고 그저 살아남는 데 바빴다. 그래서 그때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도 않음. 지금은 그때보다는 살만하니까 이런 거겠지

중심을 잘 잡자. 간단하고 단순한 것들로부터 시작하자. 나는 햇빛을 좋아하고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묵언수행을 다짐해도 한 달을 못 가는 사람. 해가 짧아져서 가을은 싫지만 이맘때의 금목서 향기는 눈물겹게 사랑하는 사람.

그걸로 됐다. 일단은.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온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거야. 한번에 하나씩.

떠내려가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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