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이름뭘로하지
230713 의식의 흐름 본문
비... 비... 비...
비가 내 활력과 에너지를 전부 가져가고
나는 껍데기만 남았다.
어쩌자고 일년 강수량의 절반이 여름에 쏟아지는 나라에 태어나서
매년 장마철마다 이 괴로움을 겪고 있을까
힘이 안 난다
괴롭다...
파란 하늘이 너무 보고싶다.
언제나 엉망진창인 ㅇㅇ이의 책상을 보고 짜증이 치솟을 때마다
4학년? 5학년? 담임선생님이 종업식 날 내게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이
"책상 좀 정리해라"였던 것을 떠올린다.
붓다가 옳았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담임선생님이 나이고 내가 그 담임선생님이고
나는 지금 그저 업보를 청산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내 책상에 비하면 ㅇㅇ이의 책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계속 생각해보니, 그렇다. 지금까지 (비록 길지 않은 경력이지만) 별의별 어린이들을 만나봤지만
그중 가장 다루기 힘든 어린이는 바로 나였다.
3월에 공부하기 싫다고 한시간 내내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던 ㅁㅁ이는
오늘 아주 착하고 공손한 태도로 숙제를 받아갔다.
"선생님! 제가 이거 안 풀어오면 내일 세시 오십분까지 남아서 할게요."
"그런 약속 안 해도 돼. 선생님은 우리 ㅁㅁ이 믿는데?"
"만약에요~ 만약에~"
4개월 만에 ㅁㅁ이에게 숙제를 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만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에게 뭔가를 시키는 데는 매번 실패하고 있다.
나에게 뭔가를 시키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내가 그것을 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리기.
정말 그것밖에 없다. (나도 정말 열심히 다른 방법을 찾아봤다. 진짜다)
ㅁㅁ이는 나에 비하면 의젓한 선배님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해야 하는 걱정들은 하나도 안 하고
하고 싶은 생각들만 한다.
해야 하는 생각: 1학기가 끝나가는군. 출결을 마무리하고 생기부를 쓰자. 운동을 하고 돈을 모으자. 기타등등...
하고 있는 생각: 정근수당 들어오네!!! 우리 꼬맹이들한테 책 사줄까???
...교사가 적성에 맞아서 정말 다행이다. 사무직이 되었다면 그만두거나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직업은 철없는 게 용인될 뿐 아니라 어느 정도는 권장되기까지 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하지만 행정업무는 여전히 못한다.
영원히 못할 것 같아 정말 걱정이다...
풀배터리 검사를 받은 게 벌써 두 달 전이었더라
그때 "님 정말 우울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군요. 좀 릴랙스하고 편하게 사세요." 이런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 진짜 하나도 안 릴랙스하고 여전히 하루하루 일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고 있다.
그게 즐거운데 어떡해!
그치만 그게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인 것이다...
내가... 내가 워커홀릭이라니...
오늘 퇴근길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비록 이제 겨우 3년차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을 많이 벌이고
솔직히 수업을 아주 잘했는데
그런 기록들을 뭐 유튜브든 인스타든 블로그(여기말고..)든 좀 폼나게 아카이빙하고
교사동아리? 모임? 같은 데 들어가서 자랑도 좀 하고 생색도 내고 그랬다면
지금쯤 뭔가 커리어적으로... 더 인정을 받거나 그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자 아까워졌다.
그러다가.. 이런 인정욕구가 내 정신건강을 망치고 있다는 걸 다시 깨닫고
응 그래 하던대로 트위터나 하고 살자 하는 편안한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 멋지고 재미있는 수업을 잔뜩 하고 바깥에 생색은 안 내면서 살아야지
내 열정은 오직 우리 아이들에게만 줄 것이다.
아무튼 인생의 모든 문제는 결국
에너지에 대한 것이다.
지금 내 내면의 고유 에너지는 10 정도 되고
매일 아이들에게서 90 정도의 에너지를 받아서
150 정도를 돌려주면서 살고 있다.
엄청난 적자
언젠간 파산할 것이다.
하지만 아껴쓰는 법을 모른다.
책상 정리하는 법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방법을 모르듯이
풀배터리 검사를 받고 내 지능지수를 확인한 뒤
나는 좀 겸허해졌다.
그래, 이런 선물을 받고 태어났으면
양심상 다른 것들은 좀 부족한 게 맞다.
나는 모든 스탯을 지능에 몰빵하고
대신 현실감각, 균형감각, 눈치, 사회성, 계획성, 절제, 하기 싫어도 참고 하기 등은 전부 0으로 설정된 것이다.
내가 선택한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은 몸도 마음도 너무너무 피곤해서
저녁은 대충 즉석카레 돌려 먹고
카레를 먹으니 힘이 좀 나서 방에서 요가를 하고
그러고 나니 바닥이 더럽다는 걸 깨닫고 바닥을 닦고
다시 에너지가 떨어져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뇌를 안 거치고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중...
결론... 결론은 없다.
제발 내일 비가 안 오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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