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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쓰는 연습

겨울 유령 계엄

slowglow01 2025. 12. 4. 16:52

해가 짧아지고
방학 동안 충전한 에너지는 똑 떨어지는
11월은 말하자면
깔딱고개......

작년 11월에 쓴 글을 본다. 무기력해서 죽어가고 있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고 죽겠다 죽겠다 죽겠다... 만 반복하다가 11월이 다 갔다.
그러나 2024년 11월과 2025년 11월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모두가 기억하니까...
계엄령이 왔다가
갔고(???)
우리 모두는 결코 전과 같을 순 없어졌다.

어떤 겨울이었나? 디킨스가 바르게 썼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계엄과 탄핵의 국면에서 나타난 모든 것들이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었지만, 동시에 모두가 과거의 모습을 다시 현재에 불러오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내란을 일으키려는 쪽도 막으려는 쪽도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겠다'고 다짐한 것 같았다는 뜻이다. '이번에야말로!' 그러니까 오월의 유령은 그 겨울에 분명 그곳에 있었다. 양쪽 다 그것을 무척 의식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우리가 오월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오월은 점점 멀어져가는 것만 같았다.

몇 번은 서울로, 몇 번은 광주 5.18민주광장으로 나갔다. 지금껏 집회에서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의 젊은이들이 재미있는 깃발을 들고 나왔는데, 이들은 전에 없이 비장해 보이는 동시에 좀 즐거워보이기도 해서 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그러나 누가 즐거우려고 한겨울 집회에 나오겠는가?) 나도 따라서 깃발을 들었는데, 농담에는 소질이 없고 농담할 기분도 아니었기에 그냥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지구 반대편 중동국가가 문제냐? 문제였다, 나한테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문제로 만들고 싶었다.

그때 광장에는 분명 불편함이 있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노년층의 시민들과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젊은 시민들 사이에. 단체 깃발과 진보정당 깃발과 아무말 깃발 사이에. '응원봉 청년들'을 조명하는 방송국 카메라와 유튜브 ㅇㅇTV 를 촬영하는 어떤 할아버지 사이에. 그때 우리는 서로 신기하거나, 대견하거나, 답답하거나, 궁금하거나, 든든하거나, 고맙거나, 그러다가도 저게 대체 무슨 짓이냐 싶거나... 아무튼 불편했다. 불편한 채로 핫팩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전광판에 QR코드가 나타나면 모두 같은 계좌에 후원금을 보냈다.

나 자신도 내내 불편했던 것 같다. 주변인들이 보기에 난 사회운동 되게 열심히 하는 애였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정말 내 싸움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쩐지 남의 잔치에 구경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회를 몇 번 나가면서 광장의 기수들과도 안면을 좀 트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있을 때 나는 마치 닳고 닳은 기성세대(?) 운동권 같았다. 반면 진짜 운동 선배들 사이에서 나는 미친 페미니스트 MZ 여자애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양쪽 다 마음에 안 들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바로 나였다. 내가 사는 동안 아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역사의 어떤 순간을 통과하는 중인데(물론 계엄령이 다시 내려질 수도 있겠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제는 무엇도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너무 무지한 채로 어영부영 보내는 것 같았다.

그때 광장에는 사이가 있었고, 차이가 있었고, 갈등이 있었다. 금남로를 반으로 가른 탄핵 찬반(???)의 집회들, 한강진 육교를 경계로 뚜렷하게 구별되던 남자들과 여자들의 집회. 동화되지 않은 채로, 화해하지 않은 채로,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회의와 복잡성을 간직한 채로 어쨌든 우리는 물리적으로 함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꽤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 그 모든 사이와 차이들이 말끔하게 봉합되는 모습을 보았다. 기억투쟁, 또는 기억의 전쟁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 내 눈앞에서 그것이 아주 격렬하게 일어나는 중이다. 누가 싸웠지? 누가 이겼지? 어떻게 이겼지? 단어 하나하나가 전선이다. 12.3. 계엄 1주년을 앞두고 민주당과 진보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났다. 기수들(?)도 서로 싸우고 민주노총도 자기들끼리 싸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싸움은 아무 것도 아니다. 진짜 중대한 싸움은 지난겨울을 잊어버린 사람들과 잊지 못한 사람들 사이, 이제 계엄 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과 원래도 일상이 계엄 같았던 사람들 사이, 그리고 오월의 유령들과 살아있는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선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사회대개혁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 좋은 일 하시는구나 화이팅... 하고 뒷걸음질치고 싶어진다. 사회를 뭘 개혁해... 지금 해 짧아져서 내 컨디션부터 개혁해야 된다... 1)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난 옛날부터 무언가가 너무 간절하면 (그런데 가질 수 없을 것 같으면) 부러 관심 없는 척하곤 했다. 2)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건강하게 살아서 우리 반 아이들과 웃고 지내는 게 사회대개혁이다. 여러분이 감기 안 걸리고 따뜻한 유자차 마시는 게 사회대개혁이다... 왜냐면 어떤 의미에서 사회란 존재하지 않고 우리 하나하나가 다 사회대개혁의 최전선이니까. 우리의 일상이 기억투쟁의 최전방이니까.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치고 나는 가방에 뱃지가 지나치게 많이 달려있다.

'그때가 좋았다'. 국가 수장이 계엄령을 내리고 서울지방법원이 테러를 당하던 것이 좋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때는 무언가 큰 것과 싸울 수 있어서 좋았다. 한강진에서 철야를 하면서, 80년대 민주화투쟁을 하던 선배들이 이렇게 좋았을까(?) 짐작했다. 이제 우리는 작은 싸움으로 돌아왔다. 작은 싸움은 재미도 없고 집회뽕(?) 같은 것도 없다. (교무부장이랑 싸우면서 깃발 들고 갈 순 없잖아) 그리고 우리는 큰 싸움에서는 가끔 이겨도 작은 싸움에서는 번번이, 어김없이, 확실하게 진다. 말끔하게 봉합되고 있는 광장의 상처들 앞에서. 우리가 들고 있는 것은 칼도 창도 아니고 고작해야 손톱깎이 하나일지니.

없으면서 있는 것을 우리는 유령이라고 한다. 오월의 유령들은 부정어 속에 존재한다. "죽은 자가 산자를 어쩌구저쩌구..." 빛의 혁명, 민주주의의 승리, 국민주권의 날, 이런 승리의 서사에 오월은 없다. 오월은 축제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차마 삼켜진 말 속에 있다. 오월은 외면받는 거리 선전 속에 있다. 오월은 남들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두 정당 지지자들(다들 뱃지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사이의 키보드 배틀 속에 있다. 오월은 내 구겨진 팔레스타인 깃발 속에 여전히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상처가 한 번 벌어졌다가 닫히는 사이
우리는 분명히 유령 같은 아픔을 느꼈고
그렇기에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날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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