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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학급세우기 둘째날 (규칙정하기,1인1역할, 공동체활동) 본문

2023 교단일기

5학년 학급세우기 둘째날 (규칙정하기,1인1역할, 공동체활동)

slowglow01 2023. 3. 5. 22:58

새학년 새학기
감동적인 첫날을 보내고
5학년 1반과 보내는 두 번째 날


1 제출해야 할 안내장이 많아 이렇게 세팅을 해두고
2 스스로 제출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명렬표를 칠판에 붙여두고
3 아침활동으로 4학년 1학기 곱셈 일일수학 학습지를 뽑아 책상에 한 장씩 올려두고
4 스스로 채점하라고 정답지를 접어서 칠판에 붙여두고

학생들이 알아서 안내장을 내고 명렬표에 체크를 하고 수학문제를 푸는 동안... 나는 유튜브에서 '모닝 재즈' 영상을 틀어놓고 여유롭게 아침인사와 내 할 일을 했다.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게 되는구나!!!!
이거 하세요 저거 내세요 자리에 앉으세요 를 학생 수만큼 일일이 설명해도 되지 않는 아침이라니
재즈를 듣는 아침이라니......
고학년짱 고학년최고

1학년 교실에서는 이런 음악을 틀었었다 (그러나 꼬마들 목소리 때문에 안들림ㅋㅋㅋ)


1~2교시는 교실놀이 및 대화서클(공동체활동)
어제와 마찬가지로 의자를 동그랗게 놓자
아이들이 와~ 재밌는 서클~ 이런 말을 한다.ㅋㅋㅋ
우선 학기초 놀이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놀이를 했는데
아이들이 아직 긴장이 덜 풀렸다고 해야 하나.. 놀 줄 모른다고 해야 하나.. 어쩐지 재미가 없길래 '손님 모셔오기' 놀이로 바꿨다.
다행히 이건 엄청 신나게 해주었다.
성별 가리지 않고 손을 잡아야 하는 놀이라서 잘 안되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선택한 놀이이기도 하다)
남자든 여자든 그냥 팔 덥석 잡고 우하하 뛰어다닌다.
어제 전학 온 학생 두 명도 잘 섞여서 노는 걸 보고 안심을 했다.
4학년 선생님 말이 맞았어
정말 착한 아이들이구나...

1교시 내내 놀고 나서 분위기가 좀 풀리자 센터피스를 설치하고 서클을 시작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규칙카드를 함께 읽고 토킹피스 '평화'를 소개한다. 평화를 반기는 아이들ㅋㅋㅋ
여는 질문은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나요?"였는데 평화가 한 바퀴 돌고 나서도 두 번 세 번 얘기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신의 능력 악마의 능력 속마음을 읽는 능력... 하고 싶다는 말은 다 들어준 뒤 공동체활동을 시작했다.


공동체활동: 내가 원하는 우리 반

대상: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소규모학교 고학년 학생들
목적: 현재 학생들 사이의 관계 파악, 관계 개선을 위한 마음 모으기
준비물: 학생 수만큼의 종이컵. 바닥에 학생들 이름을 적어두기(학생들한테 쓰라고 해도 됨)
출처: 책 <학교를 살리는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본 것 같은데 2년 전에 읽은 책이라 확실하지 않음...

첫 번째 질문: 지금 우리 반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ㅇㅇ초에서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올라오는 동안 아주 가까운 친구, 끈끈하게 연결된 친구도 있고 별로 가깝지 않은 친구도 있습니다. 옛날에 갈등을 겪어서 불편한 친구도 있고, 혼자 겉도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어요. 내가 생각할 때 지금 우리 반 친구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종이컵으로 한 번 나타내 봅시다.

한 손에 평화를 꼭 쥐고~


교사가 시범 한 번 보여주면 잘 따라한다.
사실 학기 시작 전에 이 활동을 계획할 때는 '고학년! 복잡하고 어려운 교우관계! 깊은 감정의 골!' 이런 생각으로, 아이들이 현재 자신들의 상태를 직면하고 해결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던 건데
막상 만나보니 이 녀석들.. 그저 해맑음.
작년 1학기에 가르친 3학년보다 더 자기들끼리 잘 지내는 것 같음.ㅋㅋㅋ

한 명씩 나와서 종이컵 배치를 하는데
배치하는 학생도 지켜보는 학생들도 그저 재미있어 보였다.
여학생들은 두 무리 정도로 나뉘어 있고, 남학생들은 서로 좀더 친한 친구들은 있어도 다같이 잘 어울려 노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 겉도나? 하고 신경쓰이는 여학생은 하나 있는데 아직까지는 소외된다고 할 만한 징후는 없다.
자기들은 남녀가 안 친하다면서 남학생 컵과 여학생 컵을 막 멀리멀리 떨어뜨려 놓는데
그런 장난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그리 나쁘지 않은 상황 같았다.
아예 상종을 싫어하는 경우도 보았기 때문에ㅋㅋㅋ


원하는 학생들은 다 한번씩 컵을 놓아보며
우리 반의 관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된다.
누가 누구랑 친하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무리가 있는지 등등..

두 번째 질문: 내가 원하는 우리 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시간이 지나 1월이 되어 5학년이 끝났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때 우리 반은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과 같을까요? 우리 반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나요? 이번에는 내가 바라는 우리 반의 모습을 종이컵으로 표현해 봅시다.

시간이 좀 부족해서 첫 번째 질문만큼 많은 학생이 참여하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대체적으로 내가 원하는(ㅋㅋㅋ) 대답들이 나왔다. 모든 컵이 한 덩어리로 뭉치거나, 컵으로 탑을 쌓거나, 여전히 따로따로 있는 모습이라도 좀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놓았다. 아 그렇군요! 이것이 여러분이 원하는 모습이군요! 하고 호들갑을 떤 뒤에 이런 모습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봤다.

서로 배려해요, 친구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서 친해지려고 노력해요... 대답은 원론적으로 나왔지만 아이들이 골고루 자발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점이 참 좋았다. 학급규칙 세우기와 연결하려고 일부러 2교시에 했던 활동.

시간이 좀 남아서 종이컵으로 탑을 쌓은 뒤(마침 15명이라 딱맞음) 탑을 무너뜨리지 않고 컵 하나를 빼내 보라고 했다. 다들 신나서 열심히 빼보려고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바닥이 돗자리라서 더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이다ㅋㅋㅋ) 우리 반도 마찬가지다. 한 명이라도 소외되면 우리반은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위아더원! 이런 얘기로 마무리를 했다.

*다만 아쉬웠던 점: 도구가 종이컵이다 보니까 아이들이 친한 친구끼리는 종이컵을 겹쳐 쌓아서 표현을 한다. 그러면 아래 쌓인 컵은 학생 이름이 안 보여서 불편했음... 종이컵 대신 겹쳐지지 않는 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좋을 듯함. 당장 떠오르는 건 없지만.


3교시는 교과서를 가져와서 이름 쓰고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5학년이 되어 처음 받는 교과서는 사회과부도(난 지금도 이게 있는줄 몰랐다..)와 실과라서 그 두 권을 집중적으로 보았다. 나는 새 교과서를 받을 때마다 <교과서 보물찾기>라는 걸 하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준비물: 공책
1. 교사가 교과서를 넘겨보며 특징적인 삽화나 소제목 같은 것을 세 가지 말한다.
예) 신채호 선생, 인구 피라미드, 광개토대왕릉비
2.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그 세 가지를 찾아 그것들이 각각 몇 페이지에 있는지 적는다.
3. 세 가지를 모두 찾아 교사에게 확인을 받으면 성공!

무지 재미있는 게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3학년이랑 할 때는 제법 즐거운 활동이었거든..
열 살 꼬마들은 이걸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물이 잘 안 보이면 "으아 어딨어~" 하고 괴로워하고
보물을 찾으면 기뻐하고
옆자리 친구가 못 찾고 있으면 힌트를 주고 싶어서 안달을 낸다.
그러다가 교과서에서 재밌어 보이는 게 있으면
어! 강아지다! 하며 좋아하기도 했다.
너무 즐거워 보여서 "여러분~ 이 게임은 우리가 한 학기 동안 공부할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한 거예요."라고 굳이 강조할 정도였는데..
그러나 고학년은 진지하다.
그리고 이게 놀이의 탈을 쓴 공부라는 것도 이미 알아버린 듯하다.
조용한 교실...
열심히는 하지만 별로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 학생들...
사실 교실은 조용한 게 당연하지만
지난 2년을 열살과 여덟살과 보낸 나는 이 침묵이 몹시 불편했다.
다음에 교과서 살펴볼 때는 더 재밌는 뭔갈 해야지...



4교시는 역할 정하기 시간이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날까지 고민하면서
전에 어떤 선생님 블로그에서 본 부서별 활동(환경부 문화부 등 부서를 정해두고 부서 안에서 역할을 나눠서 하기)을 해볼까? 고민했는데
막상 역할 정할 때가 딱 오자 자신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귀찮아졌다고 해야 하나... 해서 그냥 전에 하던 1인1역할을 하기로 했다.
학급운영의 팁은 정말 많고도 많고
멋진 선생님들의 특급 노하우도 사방에 가득하지만
그걸 다 하려다가는 다리 찢어지고 이도 저도 안 됨... 한두 개쯤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나머지는 본인이 잘 알고 있고 학년말까지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루틴으로 채워가야 한다.
갑자기 이런 말을 왜 하냐면 '학급세우기'로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신규 선생님들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재작년에 그랬듯이..ㅠㅠ
멋진 것들 안 따라해도 돼요. 여력 되는 만큼만 하세요. 무사하고 평범한 학급이 제일 어렵고 훌륭해요.
에휴 삼년차 주제에 누가 누구한테 조언질이냐~~ㅠㅠ

암튼 그래서 내가 생각한 역할+학생들이 말해준 역할들로 열다섯 개를 채우고
손들기와 가위바위보로 빠르고 건조하게 역할 선정을 마쳤다.
새삼 떠오른 3학년과의 기억... 우는 아이, 화가 난 아이, 자꾸 마음을 바꾸는 아이,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넘치던 흥분...
그리고 역할은 언감생심ㅎㅎㅎ 아무 것도 맡길 엄두도 못 내고 그 모든 것들을 내가 했던 1학년 교실
그에 비하면 오늘의 역할정하기는 가히 감격적이었다.
얘들아.. 나는 너희가 너무 좋다...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자리바꾸기도 하기로 했다.(어제는 아무데나 앉으라고 했음)
그냥 종이쪽지로 뽑은 다음에 칠판이 안 보이는 학생 몇 명만 앞자리로 옮겨 주었다.
아무래도 자리는 역할보다 중요하다 보니 이번에는 아이들이 조금 말이 많아졌지만
이번에도 나이스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모둠자리 만들기 연습까지 한방에 끝~!


점심을 먹고
(잔반검사 안 해도 된다는 데서 또 감동)
(아마 3월 한 달 내내 감동하고 있을 듯)
5교시는 학급 규칙세우기 시간이다.
규칙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규칙을 지켜야 할까요? 이런 이야기를 잠시 나눈 뒤
칠판을 네 구획으로 나누었다.
작년에는 이렇게 나누어서 규칙을 만들었는데
올해는 우리 반 가치를 활용하기로 했다.
우리 반의 가치는 전우서(안전 우정 질서)
이 가치가 지켜지는 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규칙이 필요할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안전을 위한 규칙, 우정을 위한 규칙, 질서를 위한 규칙을 각각 만들어나갔다.
우정 부분의 규칙이 좀 두루뭉술한 감이 있어서(친절 배려 감사 협동 등등 암튼 좋다는 말은 다 나옴ㅋㅋㅋ)
다음 주에 조금 보완해나가야겠지만
아무튼 규칙이 완성되었다.
나머지 한 구획에는 전우서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규칙을 적었다.
이 수업을 할 때는 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대화가 충분히 깊이 있게 진행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이 말하는 걸 다 받아적는 게 아니라
더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규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발문을 이어나갔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먼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보도록 했어도...
다음에 고학년을 맡을 때는 그렇게 해봐야지

아무튼 네 종류의 규칙을 만들었으니
이제 네 장의 규칙 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 모둠별로 한 장씩
도화지를 나눠주니 딴짓도 안 하고 싸우지도 않고 잘 만든다.
또... 또... 또... 감동...
솔직히 꾸미는 감각 같은 게 5학년치고 별로 좋아보이지 않지만
아무튼 너무나 대견하다.
4모둠 아이들은 포스터에 선생님 얼굴을 그리겠다고 자기들끼리 신나서 꼼지락대더니
내가 생각보다 어렵게 생겼는지 포기했다.ㅋㅋㅋ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기를
"근데 선생님은 눈썹에 문신한 걸까?"
"그린 거 아냐?"
헐... 고학년은 이런 것도 알아보는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겨울방학때 눈썹문신함)
조심해야지...



6교시쯤 되자 아이들이 피곤해한다.
얘들아~ 피곤하지? 적응해야 돼. 이제부터는 수요일 빼고는 다 6교시야. 라고 말했지만
사실 내가 제일 적응하기 힘들 듯하다.
그래도 우리 학교는 학년별 수업시수를 똑같이 조정하기 때문에
5~6학년은 교과전담 시간과 외부강사 시간이 상당히 많다.
다행ㅠㅠ

6교시는 마음일기 쓰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첫 해 때 만든 마음낱말 사전을 칠판 옆 게시판에 붙여놓았다.
3학년이랑은 이걸 활용해서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 나타내기 놀이를 진짜 재미있게 몇 시간이나 했는데
얘들 앞에서 혼자 생쇼하기는 어쩐지 민망해서 그냥 한번 쭉 읽어주었다.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두 줄에서 세 줄 정도 적는 거예요.
나쁜 마음, 틀린 마음은 없어요.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미우면 미운 대로 내 마음을 잘 돌봐주세요.
오늘은 첫날이라 수업 시간에 쓰지만 다음 주부터는 알림장과 함께 써서 검사 받으면 돼요.

아이들이 마음일기를 쓰는 동안 나는 교실을 돌며 아이들 공책을 살펴보는데,
이쯤 읽으셨으면 감동받았다는 얘기 지겨우시겠죠
그치만 또 감동을 받고 말았습니다
애들이..! 문장을 구사해! 해독 가능한 문장이야! 문장과 문장이 이어져! 얘들 지금 설마....「글」을 쓴 거냐고?!?!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칭찬하는 담임과
기분 좋긴 한데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의 학생들
아무튼 우리 학생들 대체로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 같아 기뻤다.

진. 심. 가. 득.

두 시 사십 분
인사를 한다.
전담시간 없이 혼자 6교시를 다 했는데 에너지가 남는다.
아니, 오히려 더 들뜬 기분이었다.
여러분 오늘 재미있었나요? 선생님은 정말 즐거웠어요. 여러분을 만난지 이틀 되었는데, 벌써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러자 여학생 한 명이 "맞아요. 우리 진짜 잘 맞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그 말이 참 좋아서 꼭 적어두고 싶었다.
귀찮아 죽겠는 마음을 참고(솔직히 글에서 귀찮은 거 티 났죠?) 끝까지 일기를 쓴 것도 이 한 마디를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요일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5학년이 시작된다.
올 테면 와라 얘들아!!
사랑만 주고 칭찬만 주면서 키워줄테다
우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