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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교단일기

220303 학급 규칙 세우기

slowglow01 2022. 3. 6. 18:42

둘째 날에는 학급 규칙(우리 반 약속)을 만들었다. 약속이 무엇인지, 왜 지켜야 하는지를 이야기한 후 칠판을 넷으로 나누고 각각의 칸에 '선-우', '우-선', '우-우', '우-학'이라고 적었다. 아이들이 선우우선우우우... 하고 읽으며 재미있어한다. 각각의 칸에 서로가 지켜야 할 규칙을 적을 것이다.

첫 번째 칸에는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지켜야 할 규칙을 적는다. 선생님도 이 교실의 일부이고, 똑같이 규칙을 지키는 존재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지켜주었으면 하는 약속이 있나요? 라고 물었더니 쉽게 대답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럴 줄 알고 두 가지의 예시를 가져왔다.

1. 모르는 건 친절하게 알려주기
선생님은 여러분이 모르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 여기 있는 사람이에요. 여러분이 모르면 모를수록, 실수하면 실수할수록 선생님은 오히려 기뻐요. 공부하다가 어려운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주면 좋겠어요. 언제든지 친절하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할게요.

(여기서부터 심각한 척을 하며)
그런데 말이에요, 선생님이 알려줬는데 여러분이 이해가 안 돼서 또 물어봐요. 그래서 또 알려줬는데 또 어려워서 또 물어봐요. 세 번 네 번 똑같은 걸 계속 물어보면 선생님이 짜증이 날까요, 안 날까요?

나요, 라고 아이들은 아주 익숙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안 나요.

???

아이들의 눈동자가 똥그래진다. 큰일이다. 귀엽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몰라서 물어보는 것에는 절대 짜증이 나지 않아요. 백 번 모르겠으면 백 번 물어보세요. 그런데 만약에 선생님이 짜증을 낸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선생님한테 약속을 알려줘요.

맞아요. "선생님, 저번에 친절하게 알려준다고 했으면서 왜 약속 안 지켜요?" 라고 하세요. 그러면 선생님이 "아차 깜빡했다, 미안해요" 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줄 거예요. 그러려고 약속한 거니까요.

2.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존중하기

두 가지의 예시를 듣고 나서 아이들에게 의견을 묻자 한 명이 손을 들고 "한 달에 한 번 놀이하기"를 제안했다. 반쯤은 장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의견을 진지하게 고려하자 아이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루에 한 번! 아니 하루에 한 번은 심했다! 투표로 정하자! 열띤 토론 끝에 일주일에 한 번으로 의견이 모였다. 속으로 잠깐 고민했지만, 내 의견이 충분히 합리적이라면 선생님은 얼마든지 경청하고 반영해준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좀 놀고 싶었고... 그래서 약속에 추가해보았다.

3. 일 주일에 한 번은 놀이하기


두 번째 칸은 우리가 선생님에게 지켜야 할 규칙을 적는 곳이다. 1번 칸에서는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손을 번쩍번쩍 든다. 말 잘 듣기! 쉬는 시간에 복도로 나가지 않기! 공부 열심히 하기! 어린이로, 약자로 산다는 것은 권리보다는 의무에 익숙해지는 것이구나 싶어서 마음이 짠했다. 내가 먼저 제시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예의바르게 말하기
2. 선생님 말씀에 경청하기
2번 규칙을 적으며 '경청'이 뭔지 아느냐고 묻자 두세 명 빼고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경청은 잘 듣는 걸 말해요. 귀로만 들으면 잘 들을 수가 없어요. 눈, 입, 귀, 손, 배꼽을 모두 써서 듣는 게 경청이에요.

우리는 눈으로 듣기(말하는 사람을 쳐다보기), 입으로 듣기(입이랑 귀는 한 세트예요. 귀가 열리면 입은 닫히고, 입이 열리면 귀는 닫혀요.), 손으로 듣기(만지던 것 내려놓고 손은 무릎에), 배꼽으로 듣기(말하는 사람 쪽으로 배꼽을 향하게 하기)를 연습한다. 배꼽 듣기를 연습할 때는 내가 교실을 한 바퀴 크게 걷는다. 아이들의 배꼽이 나를 졸졸졸 따라온다. 큰일이다. 또 귀엽다.

아이들이 몇 가지 규칙을 더 떠올리지만 대부분 1번과 2번 규칙에 포함되는 것들이다. 욕하지 않기, 싸우지 않기는 선생님에게 지켜야 할 약속이 아니므로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러자 조용해지길래 내가 한 가지 규칙을 더 제안하면서 두 번째 칸을 마무리했다.

3. 아프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얘기해주기.


세 번째 칸은 제일 중요한 우리가 우리에게 지켜야 할 규칙이다.

1. 내가 싫은 행동은 친구에게도 하지 않기
장난과 괴롭힘의 차이가 뭘까요? 라고 물으니 제법 기대했던 것과 비슷한 대답이 되돌아온다.

맞아요, 장난은 친구도 같이 재미있어해야 해요. 나만 재미있고 친구는 싫어한다면 그건 장난이 아니라 괴롭힘이에요. "전 장난으로 한 건데요?"라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러니 장난치고 싶을 때는 먼저 친구의 표정과 말투를 잘 살펴야 해요.

(다시 심각한 척) 그런데, 처음에는 분명 친구도 막 웃고 재밌다고 했는데 갑자기 화내면서 싫다고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 적 있죠?

몇 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법 억울한 표정이다. 나도 그 억울함에 공감하는 표정을 짓는다.

근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그럴 수가 있어요. 같은 장난이라도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점점 재미없어지고 싫어지기도 해요. 그럴 때는 얼른 "미안해"라고 말하고 바로 멈추면 돼요. 처음에 장난이었다고 해도, 친구가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데도 계속하면 그때는 괴롭힘이 되는 거예요.

2. 서로 도와주고 양보하기
처음부터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 서로서로 도와주고 이해해주며 지내야 한다... 는 둥의 설명을 하다가,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서 내 경험을 꺼냈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큰 운동회를 했어요. 달리기 시합을 해서 1등한테는 손등에 도장을 찍어줬어요. 그런 운동회 본 적 있어요?

<안녕 자두야>에서 본 적 있어요!

맞아, 그런 운동회예요. 그런데 선생님은 달리기를 정말 못해서 맨날 꼴등만 했어요. 그러다가 딱 한 번! 1등 도장을 받은 적이 있어요. 어떻게 된 걸까요?

아이들이 떠올리는 대답은 모범적이고 (큰일이다. 또...) 사랑스럽다. 친구들이 도와줬어요! 친구가 넌 할 수 있다고 응원해줬어요! 나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맞아요, 친구들이 도와주기도 했고 응원도 해줬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또 꼴등을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너무너무 늦게 달리는 바람에, 선생님이 결승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음 팀이 출발을 해 버렸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다음 팀에서 1등이 되고 만 거예요...

아이들이 웃는다. 그런데 말해놓고 나니 별로 교훈적인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서둘러 선생님이 비록 달리기는 끝까지 못했지만 대신 그림을 잘 그렸다, 그래서 친구들과 서로 도와주며 지냈다... 이렇게 얼렁뚱땅 마무리를 했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납득한 모양이었다.

두 가지 예시를 든 다음에는 아이들이 직접 약속을 제안해보았다. 욕하지 않기, 따돌리지 않기 같은 부정어들이 많이 나온다. 긍정어로 바꾸었으면 좋았겠지만 일단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선생님이 절대 허락하지 않을 행동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친구를 때리거나 밀치기
-친구의 신체를 허락 없이 만지기
-친구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런 행동은 선생님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도 이런 말이나 행동을 듣거나 본다면 바로 선생님에게 말해달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는 표정을 굳히며 무서운 척을 좀 했는데 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지막 칸은 우리가 학교에게 지켜야 할 약속이다.

1. 학교 건물, 물건 소중히 하기
2. 시간 약속 지키기
3. 청소는 다같이!
4. 안전한 학교 만들기(복도에서는 사뿐사뿐 걷기, 급식실에서는 조용히 하기)

짜란~!

약속이 모두 완성되었다. 약속을 익히기 위해 몸으로 말하기 게임을 했다. 선생님이 칠판에 쓰인 약속 하나를 가리키면 한 명이 몸으로 설명하고 나머지가 그 약속을 맞춰야 한다. 처음에는 좀 헤매더니(그래서 첫번째 팀에게는 보너스 점수 1점을 주었다) 나중에는 척척 잘 알아맞춘다. 설명하는 친구가 동작을 어려워하면 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팀 친구들이 단체로 씰룩거리며 동작 힌트를 준다. 그 모습을 보며 네 번째로 생각했다. 큰일이다... 나 어떡해? 나 얘네들을 벌써 사랑하나 봐. 이렇게 예쁠 수가... 언젠가 사랑하게 될 줄은 알았지만 그게 이틀차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과도한 기대를 내려놓고 천천히 다가가려고 했는데 다 망했다. 어쩔 수 없다. 안 사랑하게 되는 길은 없으니 이제부터 열심히 사랑하며 지내는 수밖에.

예쁘다...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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