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이름뭘로하지

희망 없이 걷기 본문

가볍게 쓰는 연습

희망 없이 걷기

slowglow01 2024. 2. 27. 01:06

팔레스타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이상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살아 있나.
거기서는 아기들이 죽고, 엄마들과 아빠들이 죽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함께 춤을 추고 놀이를 하던 선생님들이 죽고, 의료진들이 죽고 기자들이 죽고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죽고 있는데
나는 왜 아무런 불편함도 없이 살아 있나.
그들과 나를 구별할 만한 차이점을 찾아보았다. 무엇이 그들과 나를 갈라놓는지. 어떤 이유로 그들은 죽어야 하고 나는 살아도 되는지. 그러나 그런 건 없었다. 그들도 나도 특별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죽는 이가 하딜 아부 사다(Hadeel Abu Sa'da, 25세)가 아니라 나라고 해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하딜이 죽었다. 나는 이것이 몹시 이상했고, 이토록 끔찍한 학살의 순간에 나는 무사하다는 것이 마치 윤리적 의무를 저버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금 팔레스타인으로 향해 그들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그것이 온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디디의 우산(2019, 황정은)에서 d의 연인인 dd는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내동댕이쳐져 죽는다.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 있었고 내동댕이쳐지는 사람이 하필 dd여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닌 dd가 죽었다. 오로지 dd만, '정교하고도 무자비한 핀셋이 집어 내던진 것처럼.'
우리는 영화에서 누군가 종이에 손을 베는 장면을 보면 얼굴을 찌푸린다. 심지어 나는 이 문장을 쓰면서도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dd가 도로에 팽개쳐지며 거대한 고통을 느꼈을 그 순간에 왜 버스는 폭발하지 않았는가? 왜 다른 승객들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가? 적어도 3도 화상은 입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방금까지 같은 버스에 탄 같은 승객이었는데. 왜 하딜은. 왜 나는. 이상한 일이었다.

하딜 아부 사다와 약혼자 무하마드 아부 아시 박사. 결혼식 날 이스라엘 점령군에게 살해당했다.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어젯밤에 여기까지 쓴 뒤 노트북을 닫아 버렸다. 이상한 일, 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결론을 낼 수가 없다. 이런 일, 이상한 일, 나와 같은 사람들 수만 명이 죽어나가고 전세계가 그걸 그냥 지켜보는 일은 도저히 타협할 수도 극복할 수도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사실 타협하는 글은 내가 가장 잘 쓰는 글이었다. 슬프고 답답한 현실에서 시작해서, 결국 잠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한 조각 희망을 찾아내고,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거라도 열심히 하자, 라며 희망을 잘 닦아서 글로 내놓았다. 그런 글을 쓰면 읽는 사람들이 좋아해주었고 나도 스스로 뿌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어떤 희망도 하딜을 살려주지 못했고, 알 아흘리 병원에서 놀이를 하며 웃던 아이들을 살려주지 못했고,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라고 중얼거리며 글을 미완성으로 놓아두는 것밖에 없었다. 1980년 5월의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이 문장을 쓴 기자들은 용감한 이들이기도 하지만 부러운 이들이기도 하다. 세월호를 생각할 때마다 그런 기분이 된다. 사실 세월호 계기교육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고. 할 말이 없다고. 10년이 지났는데 아무 데도 도착하지 못했다고. 애도, 정의, 화해, 아무 데로도. 사법부는 참사 보고 시간을 조작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초동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구조에 실패한 해경 지휘부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kbs가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영을 취소했고, 무엇보다 2022년 10월 29일에, 이번에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같은 죽음이 반복되었다고. 그러니 가장 정직하게 세월호를 가르치려면, 수업을 끝마치지 않는 것이 옳다. 아무런 결론도 내지 않고 이상하다, 이상하다... 되뇌며 교실 한복판에 주저앉아 우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기자라면 몰라도 교사는 그럴 수가 없다. 2014년생(하필!) 4학년 아이들 앞에서 그런 추한 꼴을 보일 순 없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어서 수업이 끝나기를, 선생님이 어떤 교훈으로든 자기들을 데려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붓을 놓을 수 없다. 아이들 손을 잡고 일단 계속 가야만 한다. 어디를 향해 갈지는 모르는 채로.

그리하여 많은 상황에서 투쟁은 순례의 형태를 입는다. 2월 25일, '세월호 10주기 전국시민행진단'이 20박 21일 전국 행진을 시작했다. 제주도 성산일출봉에서 출발해 안산을 거쳐 서울까지 간다고 한다. 왜 걷지? 서울에 도착하면 대법원이나 kbs가 입장을 바꿔주나? 세월호를 향한 조롱과 혐오가 멈추나? 그런 희망은 없다. 하지만 개학만 아니었다면 나도 함께 걷고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21일 동안 걸으면 확실히 다리는 엄청 아플 것 같아서. 종이에 손을 벤 누군가를 보고 우리가 따라 얼굴을 찌푸리듯이. dd가 없는 버스, dd를 따라 내릴 순 없다면 적어도 다리 아프기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대법원 판결을 바꿀 수도, 희생자들을 다시 이승으로 불러올 수도, 스물다섯 살 하딜과 알 아흘리 병원의 아이들을 지켜줄 수도.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 있다면)께는 미안하지만 여러분에게 잘 닦아서 내어줄 희망이 이젠 진짜로 없다. 한 달 뒤 세월호 계기교육 때 무슨 수업을 해야 할지 진짜로 모르겠다. 슬프고 분하니까 울자. 울면서 걷자. 20박 21일 동안 걸어도 아무 데도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리는 확실히 아플 것이고, 그 고통은 우리에게 아직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시민'들은 늘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주로 피켓을 들고. 때로는 낫이나 곡괭이를, 경찰서에서 탈취한 기관총을, 빵과 장미를, 누군가의 영정을 들고. 국회를 향해, 바스티유 감옥을 향해, 민주주의와 이상을 향해. 그러나 나는 이 시대의 윤리란 아무 것도 들지 않고, 아무 데도 향하지 않은 채 그저 하염없이 걷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별로 멋진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걸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죽어가는 마당에 멋지지 않다고 불평할 수는 없다. 그저 그렇게 걷다가 당신 얼굴 한 번 보고 인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가볍게 쓰는 연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섯 번째 약봉투  (0) 2023.12.17
231011 의식의 흐름  (0) 2023.10.11
투명하고 가벼운  (0) 2023.08.18
Deal with it  (0) 2023.08.04
230713 의식의 흐름  (0) 2023.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