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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교단일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 수업하기 (4학년 1학기 국어 생각과 느낌을 나눠요)

slowglow01 2024. 3. 8. 16:54

거의 일기장으로 사용하는 블로그이지만
가끔 방문객이 폭등하는 게시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3학년 1학기 시 수업을 기록한 이 일기가 있는데 https://slowglow01.tistory.com/81

 

3학년 1학기 국어 1단원 시에 나타난 감각적 표현 알기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정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신이 아니라 몸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가 정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많은 일이 실은 몸의 일이다. 사랑

slowglow01.tistory.com

다들 시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던 방문자 수였다.

시 수업일기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사실 시와 나는 좀 데면데면한 사이인데
뭔가... 너무 밀도가 높고 아름답고 내밀한 글이라서
더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아무튼 우리 학생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해(4학년)도 열심히 시를 가르쳐 보고자 한다.

이 글은 꿀팁모음 또는 모범수업사례 같은 것이 절대 아니라
4년차 교사가 지금 이쯤에서 헤매는 중이다 라는 기록에 가깝다.
혼자 헤매면 길을 잃은 것이지만
함께 헤매면 모험이니까
이 글이 다른 신규선생님의 모험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암튼
시작~!

1. 형제자매 대전
보통 시 수업은 3월에 하게 되는데
3월에는 아이들 긴장이 다 풀리지 않아 조금 경직된 분위기인 경우가 많다.
(물론 첫날부터 찧고 까부는 학급도 많다...)
게다가 시를 읽고 감상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평소에 말을 잘하던 어린이들도 입을 딱 다물게 된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튼 이럴 때 입을 열게 하는 필살기가 있으니 바로 '형제자매'다.

출처... 기억안남... 죄송....

이 두 편을 나란히 읽어본 뒤 공감하는 바를 물어보면
갑자기 아이들 눈에 불이 일면서 형제자매 성토대회가 열린다.
중학생 형/누나/언니/오빠를 둔 동생들은 짜증받이가 된 억울함을 호소하고
맏이들도 할 말이 만만치 않게 많다.
신명나는 디스배틀(?)이 끝나고 나면
다들 입이 좀 풀리고 분위기가 가벼워져 있다.

2. 옷걸이의 마음
여러 가지 재미난 시를 몇 개 더 읽고 나서
(신민규 시인의 시를 추천한다)
임미성 시인의 '옷걸이'를 읽었다.
임미성 시인은 나와 안면이 있는(?) 사이이므로 순전히 사심에 의한 선정이다.

옷걸이 (임미성)

매일 옷 갈아입지만  
한 번도
외출한 적은 없어

빨랫줄에 걸려
바람을 기다려
손도 발도 없이
매일 기다려

탱글탱글 바람 부는 날
마음을 부풀려, 있는 힘껏
없는 팔을 만들어,
긴 다리도 나오게

바람과 춤추는
그날을 기다려


천천히 읽고 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한 줄 한 줄의 뜻을 함께 생각해본다. 4학년 정도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다음 칠판에 감정낱말사전을 턱 하고 붙인다. 내가 만든 것인데, 매일 마음일기 쓸 때도 좋고 이렇게 시나 이야기 감상 수업을 할 때도 좋다. 그리고 질문. 이 시에서 옷걸이는 어떤 마음일까요?

설렐 것 같아요. 바람이 찾아오면 같이 춤을 출 수 있으니까요.
즐거울 것 같아요. 춤을 추면 팔다리가 생기잖아요.

조금 다른 의견도 있다.
불만스러울 것 같아요. 매일 옷을 갈아입는데 나가지는 못하니까요.

아까부터 전혀 발표하지 않고 멀뚱멀뚱 앉아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ㅇㅇ이는 어떻게 생각해?

외로울 것 같아요.

순간 아이와 마음이 찌릿 하고 통하는 기분이었다. 나에게도 이 시는 외로운 시였다. 시에서 나와 같은 외로움을 읽어낸 아이가 아무 말 없이 교실에 숨어 있었구나. 환하게 웃으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4학년 1학기 국어 1단원 이름은 '생각과 느낌을 나눠요'인데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것은 어른에게도 참 즐겁고 놀라운 일인 것 같다.

3. 어이 없는 놈

어이없는 놈 (김개미)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오늘 아침 귀엽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귀엽지 않다는 거야
자기는 아주 멋지다는 거야

키가 많이 컸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많이 크지 않았다는 거야
자기는 원래부터 컸다는 거야

말이 많이 늘었다고 말해 줬더니
지금은 별로라는 거야
옛날엔 더 잘했다는 거야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자전거 가르쳐 줄까 물어봤더니
자기는 필요 없다는 거야
자기는 세발자전거를 나보다 더 잘 탄다는 거야

그다음 시는 김개미의 <어이없는 놈>이다. 원래 목적은 이 시를 읽고 짧은 연극을 하는 거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직 좀 수줍어 보여서 못했다. 여러분이라도 하라고 기록으로 남겨 둔다. 그래도 아이들이 각자 만난 어이없는 사촌동생들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국어 첫 시간 끝.

4. 딱풀 바르는 방법

출처: 다음 카페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두 번째 시간에는 이 시를 읽었다. 어렵지 않은 시라서 내용 파악은 잘 되는데 아이들 표정이 그냥저냥이다. 이럴 땐 아이들을 일으켜세워야 한다.

우리 이 시를 몸으로 나타내보자.
첫 줄은 어떻게 할까?

아이들이 대번 흥 하고 토라진 동작을 한다.
오케이
이제 긴장은 끝이다.

우리는 이 시를 한줄 한줄 동작으로 만들었고
내가 시를 읽는 동안 아이들은 신나게 춤을 추었다.
귀엽다.

춤을 춘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느낌을 물었는데
꼭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저렇게 하고도 다시 친해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된다는 마음이 반반이었다.

5. 고양이 한 마리가

출처: 다음 카페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다음 시는 쉽지 않다. 저번 시처럼 밝은 내용도 아닐 뿐더러, 아이들은 고양이를 봤는데 '흔들리지 말아야지' 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고양이는 너무 귀여운데?? 당연히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싶은데??(ㅋㅋㅋ)

여러분도 뭘 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생각한 적이 있나요? 묻자, 편의점 앞을 지나갈 때 들어가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아하, 그렇다면 시의 주인공도 어떤 마음일까요? 맞아요. 주인공도 사실은 고양이를 너무 사랑하고 궁금해했나봐요.

그립다, 걱정된다, 슬프다, 미안하다(열흘 동안 고양이한테 더 잘해줄걸), 불안하다(고양이에게 사고가 났을까봐) 같은 마음들을 나누고 읽기를 마쳤다.

6. 선물

출처: 다음 카페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다음 시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이 시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묻자 별의별 의견들이 쏟아졌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당연히 기쁨의 느낌표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노의 느낌표(에잇! 책이잖아!)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다. 활동지의 빈칸에 문장을 적어넣어 나만의 시로 재탄생시켜 보자고 했다.

선물

뭐가 들어 있을까?
어디 보자...
와! 가방이다!
아니? 가방 안에 휴대폰이!!!

내가 만든 시가 가장 재미없다. 아이들의 각양각색 시들을 발표하고 두 번째 시간을 마쳤다.

다음 시간부터는 이야기를 읽고 생각과 느낌을 나눈다. 그런데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는 뭐... 인품 좋고 청렴한 양반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교훈적인... 이야기임... 장난하냐... 나는 이제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으러 떠난다. 누가 교육부 앞에서 국어교과서 다 태워버리자는 1인시위 하고 있으면 저인줄 아세요...

문학 수업은 항상 학기초(바로지금)에 힘줘서 하고, 그 다음에는 그냥 온작품읽기로 퉁치며 흐물흐물 넘어가는 감이 있는 것 같다. 올해는 더 많은 시를 읽고 느낄 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일단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