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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 투쟁, 외로움 본문
하루종일 교실 한 칸 밖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교사의 삶이라지만, 교사로 살면서 출세하는 것도 의외로 가능하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중요한 것은 먼저 'ㅇㅇ쌤'이라는 닉네임을 정하는 것이다. 그 이름으로 인디스쿨,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굴리며 열심히 셀프 브랜딩을 한다. 그리고 그때그때 정부나 교육청이 좋아하는 주제를 하나 잡아서(요즘은 ai가 대세다) 연수를 열고 모임을 꾸리고 컨텐츠를 만들면 된다. 한 마디로 교육 컨텐츠를 판매하는 1인 기업이 되는 것이다. 물론 말이 쉽지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교사로 살면서 출세하지 '않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퇴근 후에는 가정에 충실하고. 좋은 선생님이자 선량한 국민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말만 쉬울 뿐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 살다 보면 도중에 큰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중산층에 진입하게 되고, 아주 높다고는 할 수 없어도 안정적인 지위와 인정을 얻게 되므로 이것도 나름대로 출세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의 동료교사들은 대개 이 두 부류 중 하나, 더 정확히 말하면 둘 사이의 스펙트럼에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둘 중 어느 쪽과 있어도 많이 외롭다. 가끔은 슬프기도 하고 더러는 몹시 화가 나기도 한다. 웃으면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다가 모임이 파하면 엉망이 된 기분으로 혼자 집에 돌아온 적이 많다. 애써 분을 삭이면서. 왜 분이 나는지도 모른채.
왜 외로울까? 사실 나의 동료교사들을 두고 이렇게 비아냥거린 것은 부당한 일이다. 이들은 모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고 존경받을 만하다. 적어도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성공적으로 구현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사실 내가 삶을 원하기는 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그냥 정신 차려 보니 태어나 있길래 일단 살고 있긴 한데... 이거 계속 해야 돼?;;
나도 동료들과 섞이려는 노력을 안한 것이 아니다. 먼저는 첫 번째 부류에 속하려고 해봤다. 운이 좋게도 나는 이런 방향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수업자료를 만들고, 모임에 들어가고, 각종 대외 행사에 참여하고... 쉽잖아? 점점 아는 얼굴들이 많이 생겼다. 소위 유명하다고 하는 선생님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청하기도 했다. 즐거웠다. 성취감도 들었고, 마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되면 안 되지, 라고 내면의 목소리가 말했다.
교사는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지만, 교실에서는 학생이 주인공이다. 학생이 나보다 대단하고 소중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교실이 (현실이야 어찌 되었든) 본질적으로 학생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위해 내가 일하는 것이지 나를 위해 학생들이 일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인생에 친절하고 유용한 npc 정도가 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그러나 교실에 있으면 이 사실을 잊기가 너무 쉽다. 나는 칠판 앞에 서 있고 아이들은 나란히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내가 운영하는 교육과정을 따라오고 내가 정하는 교실 루틴에 맞춰 살아가니까. 그리고 (이것이 특히 강력한데) 아이들은 나를 좋아하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믿을 준비가 되어 있고 가끔은 내 영혼마저 흡수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니까! 더 많이 아는 것도 나, 더 옳은 말을 하는 것도 나,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나, 나, 나.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나처럼 자의식이 비대한 사람이, 교실에서마저 스스로 주인공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끝장이라고. 교실이 내 자아실현의 공간이 되고, 수업이 내 컨텐츠 창출의 기회가 되고, 학생들은 내 성장을 위한 베타테스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소위 인플루언서 교사들의 자기PR 자료에 등장하는 "제 멋진 수업으로 인해 아이들이 이렇게 행복해요" 하는 사진이 나는 거북했다. 내가 그런 사진을 자주 찍기 때문에 더욱 거북했던 것인지 모른다.
"저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들러리를 서 줄 학생들이 필요했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잘못임을 알고 저와 학생의 위치를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것이 저를 개선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 하나에 교사로서 전 존재를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교육 불가능의 시대>, 오늘의교육 편집위원회 저)"라는 말을 되새기다 보니 나는 첫 번째 부류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좋아. 그럼 '출세'를 포기하면 되나? 무슨 일이 생기든 내 교실을 최우선으로 놓고 욕심 없이 평온하게 살아가면 되나? 이것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즉시 밝혀졌다. 행복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연애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높은 확률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그 어떤 바람도 흔들 수 없는 안정적인 미소를 지닌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못해 속까지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이성보다 앞선 본능적인 것을 내장gut이라고 부른다. 내 내장이 평온함을 거부하고 있었다. 평온하게 사는 것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를 떠나서, 그냥 그렇게 살 수가 없었다.
유년기는 강력하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이 그토록 두려운 것이다.) 유년기에 겪었던 불안과 결핍의 경험이 아직도 나를 지배하고 있다. 삶은 이미 한 번 나를 배신했고 언제든지, 기꺼이, 다시 그렇게 할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과 있으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자꾸 슬픔이 있는 곳을 향한다. 슬퍼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비로소 내 자신이 된 기분이다. 그런데 슬퍼하는 사람들은 자꾸 싸운다. 그래서 나도 싸운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투사로 본다. 집회 열심히 나가는 애. 맨날 뭔가 투쟁하는 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싸우는 쪽보다 슬퍼하는 쪽이다. 그 둘이 자주 같은 편이 되기 때문에 둘 다 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래, 세월호처럼.
작년 12월부터 바로 지난 주까지 이어진 윤석열 퇴진 운동은 내게 무척 이상한 경험이었다. 슬퍼하지 않으며 싸우는 사람들을 처음 보았다. 사람들은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농담을 만들고, 음악에 맞춰 깃발을 힘차게 흔들었다. 리베카 솔닛은 운동이 기쁨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나도 거기에 동의하지만,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무척 멋지고 존경스러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들과 영원히 섞일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운동하면서 내가 가장 안심했던(?) 순간은 3월 15일 상경투쟁에서 삼성 반도체 공장 희생자들의 영정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을 볼 때였다.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사실 가끔은 내가 윤석열 퇴진을 바라는 것도 아닌 것 같다. (...) 내가 바라는 건 세월호를 지키는 것. 그것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냥 기억의 자리를 영원히 지키고 있고 싶다."
어디에 있어도 외로워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자꾸 세월호 기억공간을, 5월의 망월동을,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를 찾아간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빛나는 주인공이 되기를 거부하고, 평온하고 소박한 조연의 일상도 거부하고, 그저 외롭게 싸우는 편을 택한다. 타협 없는 외로움. 반짝이는 외로움. 동료 교사들과 함께 있을 때 가끔 외롭고 속이 꼬이는 기분이 들더라도, 섞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폭력적인) 농담을 내뱉기보다는 침묵을 지키고 싶다. 어디선가 외로운 당신이 또 이 글을 보게 될까. 그렇다면 내 옆에 잠시 앉았다가 가시라. 아무 말하지 않아도 나는 분명 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