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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쓰는 연습

두근두근

slowglow01 2023. 4. 3. 22:54

어제는 조금 괴로웠다.
날씨가 좋아 자전거를 좀 탔는데 무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덥고 목말라서 얼음물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녁메뉴가 잘못되었거나...
이유가 어찌됐든 어제는 저녁 내내 심장이 바쁘게 뛰고 속이 더부룩하고 숨쉬는 것도 편치 않았다.
심장과 폐와 위장이 합심해서 내게 뭔가 항의를 하고 있었다.
알았어 미안해 미안하다고

자려고 누워서 유튜브를 켰다.
나쁜 습관인 건 아는데 요즘 안 그러는 사람도 있나...
고요한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잡생각들보다
유튜브 화면의 빛과 소리가 훨씬 덜 시끄럽기 때문에
영상을 틀어놓고 보다가 잠든 지 벌써 몇 년 되었다.
틀어놓는 영상은 매번 달라지는데
슬라임이나 폴리머클레이를 주물럭거리는 영상이나 철학 강의 같은 것을 자주 보다가
요즘은 불교에 관한 영상을 많이 보고 있다.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https://youtu.be/gn2w3lIbit0 쇼펜하우어와 불교를 소개한 이 영상이 시작이었나...
철학자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를 읽고 나서부터였나
분명 관심의 시작은 서양철학과의 연결고리였고 지금도 그 점이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냥 내 안에 번뇌가 너무 많기 때문인 것 같다.ㅋㅋㅋ
(붓다: 태어나는 것은 고통 죽는 것도 고통 모든 것이 고통이니라
나: 맞습니다!!!)
맑은 마음, 가벼운 마음, 그리고 오 제발, 꿈 없는 평안한 잠을 찾아다니는 몇 년의 여정 중에
별 관심도 없던 종교에마저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화엄사의 새벽예불 영상을 틀어놓고 눈을 감았다.
스님 한 분이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외며 절을 한 바퀴 돌고 있다.
염불이 정확히 뭔지는 사실 잘 모르지만
(원영스님이 설명해주는 영상을 보다가.. 잠들었었다)
저 새벽예불이라는 것에는 꼭 가보고 싶었다.
고요하고 캄캄한 사찰,
서늘하고 깨끗한 새벽 공기,
아직 잠이 다 깨지 않은 정신,
청아한 목탁과 염불 소리, 거대하고 인자한 불상의 얼굴, 사그락거리는 법복의 감촉까지(한번도 입어본 적 없음)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저기서라면 공기로 된 공처럼 투명하고 가벼운 마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불경 외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지만
곧 번뇌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아니 무슨 끔찍한 욕망을 품은 것도 아니고
'내일 1~2교시 전담이니까 그때 ~~ 관련 품의를 올려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을 뿐인데
갑자기 몸과 마음이 다시 몹시 괴로워지며 잠이 전부 물러갔다.
심장이 뛰고, 속이 불편하고, 숨쉬는 것이 어려워진다.
나는 번뇌가 왜 이렇게 많은가
이런 생각마저 번뇌가 된다.
한참을 뒤척이다
눈을 감고 가브리엘 포레의 음악을 귀로 따라가다가 겨우 잠들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잠에서 깨서 잠시 빈둥거리다가
'샤워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몸과 마음이 괴로워졌다.
진심이냐
이제 씻기도 싫은 거냐고...
아무튼 출근은 하였으나
아까 썼던 대로 1~2교시가 전담수업이었기 때문에 아침에 잠깐 인사하는 시간만 빼면 10시 20분까지 혼자 있어야 했다.
밀린 업무를 해치워야 하는 황금 같은 시간인데
몸인지 마음인지(이제 구별도 잘 안 된다)가 계속 괴로워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유튜브에 올라온 5분 명상을 따라해 보았다.
명상에서는 항상 숨을 쉬라고 한다.
요가 수업에서도 항상 숨을 쉬라고 한다.
숨을 쉬는 내 자신을 바라보라고...
근데 나는 숨을 잘 쉬는 것 같지가 않다.
호흡이 짧고
깊은 숨을 쉬려고 하면 자꾸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어려운 건 잘하는데
재수없고 싶지 않아서 평소에 말은 잘 안 하지만
공부도 잘하고 시험도 잘 보고, 사실 그런 건 별로 어려워해본 적도 없는데
숨쉬기
는 왜 이렇게나 어려운 걸까...
(붓다: 숨쉬기조차 잘하려고 하는 게 너의 집착이니라
나: 그치만!!! 그치만!!!)
숨을 좀더 편하게 쉬려고 마스크를 벗었다.
전담수업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나를 보고 조금 놀란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오늘은 숨쉬는 게 좀 힘들어서 마스크 벗고 있을게.
편하고 좋았다. 내일도 벗어야지

3, 4, 5, 6교시를 아이들과 부대끼며 보내자
괴롭고 답답한 마음은 전부 사라졌다.
행복해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걸 느낄 여유가 없다.ㅋㅋㅋ
아무튼 결론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지?
맞다
나 불교가 좀 좋은 것 같다.
아직 책 몇 권 읽고 있는 수준이고, 신자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나중에는 신자가 될지도 모른다.
올봄이 가기 전에 템플스테이도 가 보고 싶다.
반지르르한 염주도 하나 갖고 싶다.(귀의하기도 전에 물욕부터 들끓는 중)

탁한 마음
언제나 심란한 꿈자리
잘 시간이 되어 '이제 자야지' 이런 생각만 해도 뛰기 시작하는 심장
다 놓아주며 잠들어야지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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