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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1학기 국어 2단원 문장의 짜임 - 중심 문장 찾기 놀이 본문

2021 수업일기

3학년 1학기 국어 2단원 문장의 짜임 - 중심 문장 찾기 놀이

slowglow01 2021. 4. 3. 10:48

고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그때 우리 반은 일 주일에 한 번씩 쪽지 시험을 봤는데(그리고 모든 학생들의 점수와 반 등수를 교실에 떡하니 붙여 놨다. 야만의 시대...) 한 번은 억울하게 국어 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린 적이 있다. 어떤 시를 읽고 화자의 감정을 유추하는 문제였는데, 나는 '자조'를 골랐고 답은 '원망'이었나 그랬을 것이다. 나는 분개해서 교무실에 찾아갔으나 선생님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게 왜 자조냐면....! 화자가 지금 자조하고 있잖아요! 이 구절을 보세요, 누가 봐도 자조잖아요. 이 분명한 자조가 보이지 않으시나요?? 너무 답답하고 억울한데 이유를 콕 집어 설명할 수가 없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지금은 그 시의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맞았고 선생님이 틀렸다고 굳게 믿고 있다. 선생님, 그건 자조였다고요...!

7년 뒤, 이번에는 내가 교사가 되어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에게 문단의 중심 문장을 찾는 법을 가르치면서 나는 그날의 당황을 떠올렸다. 얘들아, 이게 왜 중심 문장이냐면...... 당연하잖아? 이 문장이 제일 중요한 말을 하고 있잖아? 심지어 대놓고 문단 제일 앞에 있잖아??? 하지만 철없는 고딩이면 몰라도 교사가 되어서 이딴 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내가 횡설수설 열변을 토할수록 아이들의 눈빛은 멍해졌고 교실 분위기는 장례식장처럼 변해 갔다. 안 그래도 문단이며 중심 문장 따위가 열 살에게 재미있을 리가 없는데, 내가 눈곱만 한 흥미들도 다 죽이고 있구나.


중심 문장 찾기 놀이는 이런 절박함 속에서 나온 활동이다. 지금까지 두 번 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이 진짜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게임의 탈을 썼을 뿐 재미있을 만한 요소는 없는데, 그냥 교실을 돌아다니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암튼 내가 만든 무언가를 아이들이 "한 번만 더 하자"고 조르는 것은 초보 교사에게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학생 수에 맞게 문단을 준비한다. 우리 반은 16명(특수아동은 국어 수업을 특수반에서 듣는다)이므로, 5~6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을 3개 준비했다. 첫 번째로 게임을 할 때는 3개의 문단이 서로 아예 무관한 주제를 다루도록 했고, 두 번째로 할 때는 난이도를 조금 올려서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문단으로 했다. 문단을 쓸 때에는 이런 것들을 주의해야 한다.

하나. 문단과 문단을 구별하는 것이 아주 쉬울 것. 문장을 섞어 놔도 다른 문단인 것이 잘 드러나야 함. 한 문단 안에 있는 모든 문장에 동일한 주제어가 들어가게 쓴다. 예) '선생님은 우유를 가장 좋아합니다. 우유에는 칼슘이 풍부해 뼈를 튼튼하게 해 줍니다.' 이렇게 모든 문장에 '우유'라는 말을 반드시 넣어서 쓰기. 그래도 걱정된다면 우유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쳐둘 수도 있다. 

둘. 중심 문장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게 쓸 것. 문장이 섞여 있으면 중심 문장을 찾기 더 어려우므로 아주 쉽게!! 누가 봐도 이거지!! 싶게 써야 한다. 그래도 헷갈려 하더라고요.

2. 16개의 문장들을 인쇄해서 따로따로 자른 뒤 두 번 접고 잘 섞는다.

3. 아이들에게 문장을 한 개씩 뽑도록 하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나랑 같은 문단을 뽑은 친구와 뭉치도록 한다. 한 문단이 모두 완성되면 친구들과 의논해서 중심 문장을 하나 고른다. (꼭 자기 문단을 못 찾고 헤매는 아이가 한 명씩 있으니 도와준다)

4. 중심 문장을 갖고 있는 아이를 가장 앞으로 해서 기차놀이를 하면서 선생님에게 온다. 같은 문단끼리 잘 모였고, 중심 문장을 잘 찾았으면 성공! 아니면 "다시 생각해 보세요" 하고 돌려보낸다.

5. 모두 성공하면 교사와 함께 각 문단과 그 문단의 중심 문장을 다시 알아보며 정리한다.


첫 번째 게임에서 내가 쓴 문단은 다음과 같다.
1. 우리 학교에는 다양한 일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십니다. 경비원 선생님은 우리 학교를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보건 선생님은 학교에서 다치거나 아플 때 치료해 주십니다. 또 급식실의 조리원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맛있는 급식을 만들어 주십니다.

2. 봄에는 여러 가지 꽃이 피어납니다. 민들레는 키가 작고 이파리가 뾰족뾰족한 노란색 꽃입니다. 목련은 커다란 하얀색 손처럼 생겼습니다. 철쭉은 빨간색, 보라색, 분홍색 등 색깔이 화려합니다. 벚꽃은 연분홍색이고, 꽃잎이 비처럼 펄펄 내립니다. 팬지는 꽃잎 한 개에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습니다.

3. 우리 반에는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첫째,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는 온 마음으로 귀 기울여 경청해야 합니다. 둘째, 친구들과 서로 나쁜 말을 하지 않고 존중해야 합니다. 셋째, 학교에서는 항상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넷째, 교실이나 복도에서 위험한 장난을 치지 않고 안전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두 번째 게임에서는 '선생님과 편의점'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세 문단을 썼는데, 파일이 학교 컴퓨터에 있나 보다. 출근하면 추가해야지.


이 게임에는 경쟁적 요소도 없고(제일 빨리 찾는 팀이 1등~ 이런 말을 아예 하지 않았다) 성공했을 때의 보상도 전혀 없다. 어른 눈에는 이게 재밌나??? 싶지만 아이들은 좋아한다. 문단을 쓰고 인쇄해서 오리는 게 생각보다 번거롭지만, 재미 없는 국어수업에 한 줄기 즐거움이 되어 주므로 나는 2단원 끝나기 전에 한 번 정도 더 할 생각이다.

그리고 2단원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동요 '돌과 물'의 2절을 부르고 시작한다. 2절을 함께 부른 뒤, '도랑물, 개울물, 시냇물, 큰 강물, 바닷물'을 '글자, 단어, 문장, 문단, 글'로 바꿔서 다시 부른다. 글자가 모여서 다안어~ 단어가 모여서 무운장~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글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안 그래도 2단원 수업 재미없는데 노래라도 한 곡 크게 부르고 시작하자는 의미에서다. 이제 곧 2단원이 끝나는데 솔직히 너무 신난다. 얘들아, 너희만 2단원 싫어하는 거 아니야. 나도 싫어해... 하지만 3단원도 만만치 않을 예정이란다^^ 함께 높임 표현을 공부해 보자!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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