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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수업일기

자투리 수업일기들

slowglow01 2021. 6. 19. 17:35

1. 과학
4단원 '자석의 이용'을 배우는 중이다. 이제야 조금 실험다운 실험을 하게 돼서 즐겁다. 작은 규모의 실험이라서 늘 도구들을 교실로 가져와서 실험하는데, 아이들이 자꾸 과학실 언제 가냐고 물어본다. 사실 되도록 안 가고 싶어... 선생님은 교실이 좋아...

교과서에 있는 실험은 안 빼놓고 거의 다 하지만, 실험 관찰은 이제 잘 쓰지 않는다. 실험을 하면서 동시에 결과를 기록하는 것은 열 살에게는 무리라는 사실을 눈물로 배웠다. 그냥 실험을 하고, 결과를 열심히 관찰만 한 다음에 정리는 내가 칠판에 한다. 기록하는 방법은 4학년 선생님한테 배우렴 얘들아!! (이런 식으로 너무 많은 것을 내년으로 넘기고 있기는 하지만)

머리핀으로 나침반 만들기. 우리 학교 과학실에는 대부분 준비물이 잘 구비돼 있는데, 왠지 머리핀만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의 사비 500원으로 내.돈.내.산.한 실험 도구
이건 나도 조금 신기했다
교과서에 있는 자석 클립통을 야매로 만들어 보여주었다.

이 단원에서는 유튜브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수업 말미에 짧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주먹만 한 쇳덩이가 네오디뮴 자석을 향해 돌진하면서, 그 사이에 놓인 주스 팩, 시리얼 상자, 스마트폰 등을 박살내 버린다. 아이들은 그 영상에 몹시 열광하며 자석의 막강한 '끌어당김'을 뇌리에 깊이 새겼다. 비록 그 과정에서 방금 전까지 열심히 실험한 빵끈 쪼가리와 플라스틱 컵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좀 덜 재미있는 영상을 쓸 걸...

자석이 움직일 때마다 따라서 휙휙 돌아가는 나침반 바늘을 보며 아이들이 "우와아!!!" 외치던 소리가 기억난다. 고리 자석을 같은 극끼리 쌓으면서는 "콩콩이 같아요!" "회오리감자 같아요!" 하고 신기해했다. 비록 과학 시간마다 정색하고 버럭버럭 소리만 지르지만(모둠끼리 앉음 + 책상 위에 재미있는 실험도구 있음 = 집중 안 됨)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면 다시 사르르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마지막 차시 자석으로 장난감 만들기만 남았는데 이건 솔직히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고... 절대 선생님이 하기 싫어서가 아니야. 과학실에 동전 자석이 그만큼 있을지 모르겠어...

2. 수학
3단원 나눗셈과 4단원 곱셈 단원을 가르치면서 나는 인간 컨베이어벨트가 되었다. 매일 일일수학 사이트에서 단순 연산 문제를 조금, 아이스크림에서 간단한 문장제 문제를 조금 가져와 아침활동지를 만들어 책상에 올려둔다. 문제가 어려운 아이들이 줄을 선다. 같은 설명을 기계처럼 반복한다.

제일 먼저 뭐 하지?
자리에 줄 그어요.
왜?
자릿값을 헷갈리면 안 되니까요.
어디부터 계산할까?
일의 자리부터요.
4×8=32네. 32를 어떻게 쓸까?
2는 일의 자리에 쓰고 30은 숨겨둬요.
어디에?
십의 자리에요.
이제 뭐 하지?
십의 자리 계산해요.
10×8=80이네. 그럼 십의 자리에 8 쓸까?
안 돼요.
왜?
아까 30을 숨겨 뒀으니까요.
그래. 30을 챙겨 가야지 안 그러면 바지도 안 입고 학교 가는 거랑 똑같아. 그러면 어떻게 쓸까?
80+30=110이에요.
그럼 몫은 얼마가 되지?
112요.

이 짓을 16명에게 반복하다가 1교시 시작 시간을 놓친 적이 많다. 그리고 다음날 또 다른 아침활동지. 또 같은 설명. 다시. 또 다시. 지루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일단 내가 놀기보다는 공부시키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고ㅋㅋㅋㅋㅋ 처음엔 헤매던 학생이 점점 방법을 익히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뿌듯했기 때문이다.

곱셈 단원을 위해 만든 칠판용 수모형.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이러고 놀았다.

지금은 5단원 길이와 시간 진도를 거의 다 나갔다. 요즘 날씨가 덥고 습해서 아이들의 에너지가 폭발 직전인데 양감 형성을 핑계로 운동장 데려가서 1km 달리기ㅋㅋㅋ라도 시킬까 고민 중이다.

아이들이 곱셈 나눗셈을 까먹은 것 같아 복습하려고 문제를 인쇄했는데 이런 대참사가 일어났다. 저 고래 종이접기가 뒷면에 갔어야 하는데... 나무야 미안해!!!!!!!

3. 음악
리코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공기로 전파되는 감염병의 시대에 관악기 공부를... 그렇지만 이 시국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리코더를 시작조차 안 할 수는 없었다.

우리 반 음악 시간은 조용하다. 마스크를 쓰고 손가락을 움직이면 교사가 큰 소리로 솔~미~미~ 파~레~레~ 하고 노래를 불러 준다. 그리고 집에서 연습해 오라고 숙제를 내 준다. 얘네들이 내가 알려준 대로 호흡을 고르게 하는지, 텅잉을 잘하고 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아마 아니겠지) 다음 주 화요일에는 다같이 운동장에 나가서 거리두기를 하고 정말로 리코더를 불어볼 생각이다.

내가 한 실수 하나. 소리가 쉽게 나는 중음역(솔라시도레)를 먼저 가르치고 그다음에 저음역(도레미파솔)을 가르쳤어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도레미파솔~ 솔라시도레~ 이 순서로 나가 버렸다. 수업하기 전에 인터넷 검색이라도 한 번 해봤어야 하는데... 얘들아 미안~ 그치만 운지법은 솔라시도레가 더 어렵다구!

4. 사회
사회 수업은 언제나 어렵고 괴롭다. 우리 반의 탐구 능력이 부족하거나 나의 교수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마도 둘 다가 아닐까. 사진 한 장 화면에 띄워 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업이 제일 재미있다. 에밀레종 이야기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5. 체육
평생 단 한 순간도 체육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언젠가 의사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운동하지 않으면 당신은 죽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아마 스스로 운동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말을 듣고도 운동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담임체육 시간에 자유시간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피구? 절대 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 나는 훌륭한 체육수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체육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은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나도 모르고 싶다 부럽다.

수박팀이 응원점수를 1점 깎인 것은 다른 팀 친구가 가장 늦게 들어왔을 때 웃었기 때문이다. 이 감점 이후 우리 반은 올림픽 정신으로 가득해졌다. 괜찮아! 괜찮아!

6. 도덕
가족 단원은 언제나 어렵다. 그림책 「사랑의 우산 아래」를 활용한 수업을 시도해 봤고 망한 것 같다(그림책은 죄가 없다). 다음 주 도덕 시간에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좀 무겁고 솔직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얘들아, 우리 모두 가족을 사랑하잖아. 그런데 솔직히 말해 보자. 가족 때문에 눈물 나고 슬플 때도 있잖아? 서럽고 화가 날 때도 있잖아? 선생님은 이백 살이나 먹었지만 아직도 가끔 그래. 그리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7. 국어
조만간 아주 특별한 시 수업을 하게 될 것 같다. 으하하 얘들아 기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