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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이름뭘로하지
2020년 (아마) 여름에 기숙사 내 방 책상에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기"라고 써서 붙여놓았던 적이 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웬만한 일에서는 나를 그냥 봐주면서 살고 있다. 마음의 힘에도 용량(?) 같은 것이 있고 나는 그 용량이 남들보다 몹시 부족한 편인데 자책은 용량을 꽤 많이 차지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 공부를 손에서 아예 놓은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나는 나를 전혀 탓하지도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은 마음의 힘이 부족할 뿐이고 채근하지 않아도 언젠가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때 하면 된다. 이대로 영영 공부를 멈춰서 그동안 익혔던 걸 다 잊어버리게 되더라도 괜찮다. 공부하는 순간에는 즐거웠으니까. 2020년 이래 내 최대의 관심사는 언제나 나 자신의 정신..
운전을 할 때마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낼 때마다 조금 위험한 상상을 한다. 내가 지금 핸들을 확 꺾는다면 이 차는 아마 저 트럭을 들이받고 가드레일 쪽으로 밀려날 것이다. 트럭을 뒤따라오던 차들도 급브레이크를 밟다가 자기들끼리 몇 중으로 추돌할 것이다. 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찢어지겠지. 죽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어느새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죽기도 죽이기도 싫으니까. 그리고 뉴턴에 대해 생각한다. 고전물리학의 이런저런 방정식들... 중학교 때 열심히 배웠는데 다 잊어버렸다. 아무튼 질량과 힘과 속도 같은 것을 방정식에 넣어 계산하면 물체의 궤적이나 에너지 같은 걸 구할 수 있다고, 비탈길을 굴러가는 1kg짜리 추 같은 게 나오는 문제를 풀며 배웠던 것 같다. 내가 핸들을 확 꺾는 데 ..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한 광고 만화를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된 적이 있다. 아이를 기르는 여성 작가가 그린 만화였는데 "아기를 낳으면 나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걸 전에는 몰랐다. 내 이름을 잊고, 내 시간을 포기하고, 건강을 잃고..." 같은 이야기를 하더니 별안간 "그런 나의 고민을 해결해준 ㅇㅇ영양제!"라며 영양제 광고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광고 만화가 광고를 열심히 하는 건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지만, 아니 누가 봐도 앞뒤가 안 맞잖아요. 엄마가 된 여성이 자기 이름/커리어/건강을 포기하는 이유가 좋은 영양제가 없어서...겠냐? 겠냐고... 작가님 그래서 영양제 드시고 본인 이름 되찾으셨나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분은 그런 만화를 그리면서 작가로서 자..
지금 나라꼴을 보고 혈압 오르지 않는 사람 유죄... 하루에 네 번 화가 치밀었다가 여덟 번 암담해하고 여섯 번의 쌍욕을 하는... 요즘 그러나 경기도 나빠지고 환경도 나빠지는 시국에 내 정신건강까지 나빠지게 둘 수는 없기에 국민신문고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아동. 장애인. 노동자. 저소득층. 오늘의 뉴스는 또 누구를 짓밟을까 '이럼 안 되는 거 아냐'라고 속으로 생각하면 내 속만 곪지만 "이럼 안 되는 거 아냐"라고 말한다면. 딱히 아무도 듣지 않더라도 내 입밖으로 공기가 한 번 울릴테고 내 귀에 내 목소리가 들릴테고 그 정도의 효능감이라도 나에게는 필요했다. 그리하여 괴로울 때마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올렸다. 한 달 동안 16개. 명문을 쓴다고 민원이 더 잘 수리되는 것이 아니기에 글은 대충 쓴다...
요가와 편견 새해부터 동네 요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중간에 설 연휴가 있어서 수업을 나간 것은 아직 여섯 번뿐이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지는 벌써 몇 년이 되었는데 하필 요가를 선택한 것은, 요가가 1) 숨 차고 땀 흘리는 다른 운동들보다 좀 수월해 보였고(그것은 편견이었다) 2) 신체에 더해 정신의 건강까지 증진해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년 동안 애타게 찾아헤맨 두 가지, 반듯한 자세와 평온한 마음을 어쩌면 요가를 통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https://youtu.be/jCcdJg2uvxg 평~정~심~ 찾아헤맨 그이는 오늘도 못 봤어 다시는 숨쉬기운동을 무시하지 마라 요가 선생님들은 자꾸 숨을 쉬라고 한다. 어떤 동작을 하든 "호흡 쓰세요"라고 하시는데, 팔을 쓰라든지 다리를..
오늘은 처음으로 모닝페이지라는 것을 써 보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공책을 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써내려가서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것인데 검색해보면 창조성 회복, 글쓰기 명상... 뭐 이런 설명이 나온다. 좀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복잡한 마음을 좀 비워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눈 뜨자마자 핸드폰을 쳐다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한번 해보기로 했다. 글을 쓰고 나면 다시 읽어보거나 고치지 말라는 규칙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첫날의 모닝페이지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이렇게 적었다. "요즘은 그냥 쓰기 쉽게 쓰기 가볍게 쓰기를 잘 못한다. 잘쓰고 싶어서 그런 것 같고 동시에 너무 매끈하게 잘 쓴 글이 스스로 싫다. 가볍고 둥글고 상쾌한 글을 쓰고 싶은데 번민과 미움이 너무 많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