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이름뭘로하지

가볍게 둥글게 상쾌하게 본문

가볍게 쓰는 연습

가볍게 둥글게 상쾌하게

slowglow01 2023. 1. 26. 00:03

오늘은 처음으로 모닝페이지라는 것을 써 보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공책을 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써내려가서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것인데
검색해보면 창조성 회복, 글쓰기 명상... 뭐 이런 설명이 나온다.
좀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복잡한 마음을 좀 비워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눈 뜨자마자 핸드폰을 쳐다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한번 해보기로 했다.
글을 쓰고 나면 다시 읽어보거나 고치지 말라는 규칙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첫날의 모닝페이지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이렇게 적었다.

"요즘은 그냥 쓰기 쉽게 쓰기 가볍게 쓰기를 잘 못한다. 잘쓰고 싶어서 그런 것 같고 동시에 너무 매끈하게 잘 쓴 글이 스스로 싫다. 가볍고 둥글고 상쾌한 글을 쓰고 싶은데 번민과 미움이 너무 많다."

그냥 쓰기, 쉽게 쓰기, 가볍게 쓰기
옛날에는 잘했던 것 같다. 스마트폰도 없이 방에서 뒹굴거리다 심심해지면 일기를 썼던 중학생 때. 그때는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만큼 썼다. 으아아아 심심하다 잠이 안 온다 라고 한 페이지 가득 써 놓기도 했다. 그게 벌써 십 년 전의 일이니 내가 너무 옛날의 일을 가지고 허튼소리를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은 모든 것이 더 어렵다. 할 말이 하나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할 말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했던 말을 자꾸만 또 하고 또 하는 것 같아 답답하고, 내가 쓴 말에 영양가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 어떤 문장을 쓰고, 아 잘 썼다, 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고 나면 곧바로 그 문장이 싫어졌다. 잘 쓰고 싶지 않았다. 잘 쓰기 싫었다. 다만 가볍고 싶었고 또 진실하고 싶었다.

유행하는 대중문화 중에 레터링 서비스라는 게 있다. 메일링이라고 부르나? 자기 글이나 컨텐츠를 주마다, 달마다 구독자들에게 편지처럼 보내주는 서비스인데 나는 뭘 꾸준히 챙겨보는 성격이 못 되기 때문에 하나도 구독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그런 것을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다. 무슨 컨텐츠를 만들고 서비스를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누군가에게 꾸준히 편지를 보낸다는 그 발상이 좋아 보였다. 글이 아니라 편지를 쓴다면 좀더 솔직하고 부담 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글로써 누군가와 연결되는 감각도 내가 무척 그리워하던 것이었다.

레터링.. 메일링.. 그런 것은 아마 안 하게 되겠지만, 2023년에 세운 목표가 있다면 뭐가 됐든 고민할 시간에 일단 시도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요가학원 6개월 수강권을 끊었고 안 좋은 뉴스를 보면 화를 내는 대신 관련 정부 부처에 민원을 넣고 있다. 이것도 그런 시도의 일환일지 모른다. 편지처럼, 일기처럼, 잡담처럼, 아무 말이나 쓰다 보면 가볍고 둥글고 상쾌한 글도 쓰게 될지 모른다. 그게 내가 전에 쓰던 글보다 완성도는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말이다.

글을 여기까지 쓰면서 수정을 거의 하지 않았고 당연히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래도 그냥 올리려고 한다. 쓸모 없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다음 글은 내일 쓸 수도 있고 두 달 뒤에 쓸 수도 있고, 아주 짧을수도 지루할수도 형편없을수도 있다. 아무도 안 읽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재미없을 수도 있다. 마음에 든다.

오늘 본 영화 <중경삼림(1994)> 왕페이 짱 짱짱짱

 

'가볍게 쓰는 연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0311 봄 오는 소리  (0) 2023.03.11
운전, 도끼, 얼굴  (0) 2023.02.17
배고픈 돼지의 행성  (2) 2023.02.10
슬기로운 시민생활을 위한 국민신문고 활용 매뉴얼 A-Z  (2) 2023.02.04
오요완  (2) 2023.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