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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이름뭘로하지
종업식은 월요일이었다.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하교시킨 뒤, 남은 서류를 처리하고 관사를 청소하고 드디어 본가로 가는 저녁 버스를 탔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기쁨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해냈다! 진짜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첫 해 치고 훌륭하게 잘한 것 같다! 이제는 3월까지 자유다!!!...... 라고 생각하는데, 놀랄 만큼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후련하거나 아쉽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지쳐 있어서, 너무 오랫동안 외로워해서 마음이 몽땅 닳아 없어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분노가, 다음에는 슬픔이, 마지막으로 행복이. 남은 것은 내가 뼈와 심장이라고 부르는 것들, 고독과 불안뿐이었다. 문득 이것이 나의 전부라는 생각, 남은 평생 동안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무엇도 기..
해가 바뀌고 한 살을 더 먹을 무렵이 되면 늘 하게 되는 계산이 있다. 내년의 나는, 2008년에 죽은 엄마보다 몇 살 더 어린가? 며칠 뒤 나는 스물다섯 살이 되므로 엄마보다는 열네 살 어리게 된다. 이 숫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작아지다가, 계속 작아지기만 하다가 (내가 충분히 운이 좋다면) 언젠가 0이 될 것이다. 그것이 음수가 되는 미래는 아직 상상해본 적이 없다. 엄마보다 오래 살게 될까? 나는 열한 살 때 연속성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인생은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좆되기도 하고 아예 끝나 버리기도 한다. 열한 살 이후 내 인생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모든 시도는 그러나 전부 실패했고 나는 오만 곳을 돌아다녀도, 백만 편의 글을 읽..
나는 요즘 자꾸 두들겨 맞는 것 같은 기분이다. 들려오는 모든 소식들이 암담한데,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과거의 내가 쓴 글이다. 1년 전, 학보사에서 마지막으로 쓴 칼럼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오늘 망하지 않을 것이고, 어린이가 미래의 사회를 책임지고 계승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에서 교육의 필요성이 태어나고, 교육자를 향한 사회의 기대 역시 생겨난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자꾸 세상이 오늘 망할 것만 같다. 아니 이미 망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모래성처럼 빠르게 무너져 내리는데, 손쓸 도리 없이 그 붕괴를 바라만 보고 있는 기분이다. 살면서 큰 위기를 겪어본 적 없는 젊은애의 엄살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사..
미술교육학자 빅터 로웬펠드가 주장한 개념 중 '도식적 표현'이라는 것이 있다. 주로 7~9세의 아동들이 그림을 그릴 때 반복해서 나타내는 표현 방법으로, 산은 세모 모양, 나무는 갈색 기둥 위에 초록색 구름이 앉은 모양으로 그리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실제 산과 나무가 어떻게 생겼든 상관없이 모든 산과 나무를 이렇게 그리다가, 10~11세가 되면 점차 대상과 닮은 사실적 표현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몇 달 전 방을 청소하다가 어릴 때 쓴 동시 한 편을 발견했다. 아마 학교 숙제로 썼던 것 같은 그 시에서 나는 우리 집을 엄마에 비유하고 있었다. 집은 따뜻하고, 포근하고, 언제나 날 반겨주고... 그래서 엄마 같다는 얘기. 아래쪽에는 엄마가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모..
아주 오래 전부터 내 꿈은 오로지 고요와 평화뿐이었다. 고요와 평화. 내가 즐겨 꾸는 백일몽이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아주 길고 가느다란 바늘을 귓속에 넣어 내 손으로 고막을 펑 터뜨리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아오마메가 쓰던 것 같은 아주 섬세하고 예리한 바늘로... 그 소설을 읽은 건 고등학교 때였고 이제는 줄거리도 결말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왠지 그 바늘만은 뇌리에 아주 깊숙히 남아 내 공상 드라마의 일등 소품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좀 덜 폭력적이고 더 비현실적인 버전으로, 어느 날 갑자기 일확천금이 생겨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변호사인지 해결사인지를 고용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입힌, 그리고 이제 사라지면서 입힐 모든 유무형의 피..
학보사를 그만둔 지 대충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동안 내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글 쓰는 방법을 홀라당 까먹었고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좀 바보가 되었고... 학보사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언어의 가능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면 요즘은 언어의 불가능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말할 수 없는 것들, 말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이를테면 고통이라든지. 삶이라든지. 내가 사랑하는 책,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주인공 니나는 자신의 소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인생에는 한 가지 계산서도 없고 아무런 결말도 없는데 말이야. 결혼도 결말이 아니고, 죽음도 겉보기만 그렇지 결말이 아니고. 생은 계속 흘러가는 거야. 모든 것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고 아무 논리도 없으며, 모든 것은 즉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