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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교단일기

뼈와 심장

slowglow01 2022. 12. 4. 16:25

요즘 활동량은 많아진 반면 밥은 잘 챙겨먹지 못하고 있어 혹시 살이 빠지진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집에 있는 체중계는 고장이고, 시간 날 때 보건실에 가서 몸무게를 좀 재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도무지 시간이 안 난다. 사실 마음속의 솔직한 반쪽은 몸무게가 좀 줄었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내가 고생하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는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숫자로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상도 벌도 언제나 남에게 받고 싶어한다는 것이 내 여러 괴로움의 근원이다.

내 좀더 이성적인 반쪽은 당연히 몸무게가 줄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다. 내 몸무게는 이미 몇 년째 저체중이고 특히 근육량이 몹시 부족하여 건강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 '예쁘게' 보이는 정도를 넘어선 마른 몸의 유일한 장점은 뼈를 만질 수 있다는 것뿐이다. 나는 내 뼈들을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잠들기 전, 불을 끄고 누워 어둠 속에서 뼈들을 하나씩 더듬어 보고 있으면 내 몸이 꼭 이상하게 생긴 물건처럼, 이누이트들이 손으로 읽기 위해 만든 나무 조각 지도처럼 느껴진다. 우둘투둘한 산맥 같은 척추를, 우묵한 호수를 닮은 골반뼈를 손끝으로 따라가다 보면 가늘고 단단한 갈비뼈 사이로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라고. 진정한 의미에서 내가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뼈와 심장뿐이라고.

뼈와 심장. 실재하는 것은 오로지 만질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뿐이고 말은 언제나 공허하다. 운동을 싫어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슬픈 일이다.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반 친구들과 함께 '손 머리' 자세로 혼나던 것이 기억난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머리 위에서 깍지를 끼고 있는 두 손이 얼마나 근질거렸는지는 어제 일처럼 선명하지만 대체 무슨 이유로 혼이 났는지, 내가 그래서 반성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이제 선생님 입장이 된 지금, 여덟 살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으면 내 지당하고 옳은 말씀들이 아이들의 통통한 귓바퀴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이들은 지금 그저 지루한 것이다.

달리기. 기어오르기. 매달리기. 흙장난하기. 춤추기. 아이들은 오로지 몸으로만 배우는 듯하고, 나는 그저 조금이라도 더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려고 한다. 하지만 내 손은 마르고 딱딱하고 무엇보다 겨울이 오면 끔찍하게 차가워지는데 어쩌면 좋은가?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책도 많이 읽어서 머릿속에 그럴듯한 말은 많지만 사실 진짜로 가진 건 뼈와 심장뿐이란다. 반면 우리 반 여덟 살 아이들은 볼록한 뺨과 미소와 허연 눈물자국과 땀에 젖은 앞머리와 튼튼한 팔다리와 우렁찬 목소리와 15~20개의 유치를 가지고 있다. 스물네 명의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이 엄청난 생명력에 기운이 쭉 빠지면서 너희에게 줄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매일 선생님 사랑한다고 한다.

다음 주에는 보건실에서 몸무게를 재어볼 시간이 날까? 밥을 열심히 챙겨먹고 운동을 하고, 눈이 오면 우리 아이들이랑 눈싸움도 신나게 한 판 하고 나면 살이 좀 붙어서 헌혈을 할 수 있는 몸무게가 될까? 그러면 누군가에게 피도 나눠줄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마땅한 사랑과 배움을 줄 수 있을까? 흩날리는 말들이 아닌 정말로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을. 삶을.

그러려면 먼저 이런저런 보고서와 성적처리와 업무 회의를 거쳐가야만 하겠지. 선생님과 아이들의 힘을 쪽 빼앗아 바짝 말리고 싶어하는 듯한 교육당국과 교육과정도. 어리석고 비정한 세상도. 추워질수록 꼼짝도 하기 싫은 내 자신도. 마지막 것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털신을 샀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남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자.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니까.

왜 여기서 이러고 있니 그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