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완

요가와 편견
새해부터 동네 요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중간에 설 연휴가 있어서 수업을 나간 것은 아직 여섯 번뿐이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지는 벌써 몇 년이 되었는데 하필 요가를 선택한 것은, 요가가 1) 숨 차고 땀 흘리는 다른 운동들보다 좀 수월해 보였고(그것은 편견이었다) 2) 신체에 더해 정신의 건강까지 증진해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년 동안 애타게 찾아헤맨 두 가지, 반듯한 자세와 평온한 마음을 어쩌면 요가를 통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https://youtu.be/jCcdJg2uvxg

평~정~심~ 찾아헤맨 그이는 오늘도 못 봤어

다시는 숨쉬기운동을 무시하지 마라
요가 선생님들은 자꾸 숨을 쉬라고 한다. 어떤 동작을 하든 "호흡 쓰세요"라고 하시는데, 팔을 쓰라든지 다리를 쓰라는 말이면 몰라도 호흡을 대체 어떻게 쓰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실 호흡을 쓰는 건 둘째치고 그냥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숨쉬는 것도 쉽지 않다. 자꾸 내쉬라고 할 때 마시고 마시라고 할 때 내쉰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숨을 진공청소기처럼 천천히 쉰다.

선생님: 자 이대로 세 호흡만 머무를게요. 하나~ 후~
나: 헉... 헉... 헉... 헉... 헉...
선생님: 둘~ 후~
나: 헉... 헉....... 허억.......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할 때는 자연스럽게 숨쉬기가 힘들다. 가끔 혼자 하아 하고 크게 숨을 내쉬어서 왜 한숨을 쉬고 그래?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한숨이 아니라 그냥 내게 필요한 공기의 양에 비해 갈비뼈가 너무 작은 기분이라 그래... 아니 그런 게 한숨인 걸까.

수업 중에 숨쉬는 게 가장 편하고 쉬울 때는 가장 숨차고 괴로울 때다. 오늘 수업에서는 이런 자세를 하고 열 호흡을 버티라고 했다. 사진 속의 요가마스터는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나는 잠시만 저러고 있어도 허벅지가 파들파들 떨린다. 저것 말고도 온갖 기상천외한 자세들이 있는데 따라하고 있자면 익숙한 엎드려뻗쳐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이거 그냥 음악 들으면서 기합 받는 거 아냐?'하는 생각이 든다. 한참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허리를 접었다 폈다 팔을 꼬았다 풀었다 하고 있으면 어느새 요가 선생님의 박자에 딱 맞춰 후욱 후욱 후욱 하고 요란하게 숨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말 그대로 평생 잠시도 쉬지 않고 숨을 쉬어 왔지만, 지금도 쉬고 있지만, 그럴 때 나는 '숨을 잘 쉬는' 것 같다.
걷기 말하기 국어 영어 수학 피아노 수채화 프랑스어 2015 초등교육과정 총론 등등을 다 배우고 나서, 스물여섯 살이 되어, 숨쉬는 것을 처음으로 배우고 있다.
재미있다.

어쩜 그리 평안한 표정이세요...

초심자의 요가사전
여섯 번 수업을 듣고 나니 아는 용어들이 몇 개 생겼다.

다운독: 제일 자주 시킴. 나는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원장님이 자꾸 내 날개뼈를 지그시 누름. 아야...
업독: 어릴 때 윗몸일으키기보다 엎드려 윗몸 말아올리기를 더 좋아했는데 그거랑 비슷함.
로우런지: 이걸 하고 있으면 나 혼자 균형 못 잡고 기우뚱거리고 있어서 너무 창피하다.
차투랑가: 한 번도 성공해본 적 없음...
후굴: 남자친구가 맨날 어깨 펴라고 뒤로 잡아당기는데 그거랑 비슷한 듯
차일드: 힘들어 죽겠을 때 3초 정도 쉬라고 시켜줌. 매트에 이마 박고 숨 헐떡거리고 있으면 그 잠깐이 너무 천국 같다..
힐링요가: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지
빈야사요가: 너무 힘들어요
파워요가: 차라리 날 죽여라

내일은 토요일이라 요가가 없다. 아쉬운데 집에 있는 요가매트로 유튜브라도 보면서 혼자 해볼까 싶다. 폼롤러도 하나 사고, 혼자 츄리닝 입고 있어서 민망하니까 요가복도 좀 사고 싶다. 며칠 전에 주문한 스포츠브라가 오늘 도착했는데 사이즈를 잘못 시켜서 엄청나게 꽉 낀다. 그치만 반품하기는 귀찮으니 그냥 입고 요가를 하면서 늘리기로 했다. 과연 나는 브라의 무자비한 명치압박 속에서 요가를 잘할 수 있을 것인지... 다음주에 공개됩니다...

요가학원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서 대신 얼마 전에 배구 직관 가서 찍은 거 올림. AI페퍼스의 역사적인 2승의 순간에 내가 있었다.(현재 전적 22패 2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