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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교단일기

학기말 종합의견 쓰기 싫어서 쓰는 글

slowglow01 2021. 12. 12. 00:49

학기말 종합의견은 명사형 어미로 끝맺도록,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음슴체'로 쓰도록 되어있다. 정이 많고 쾌활한 성격으로 교우 관계가 두루 원만함. 책임감이 강해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학급의 일에 항상 협조적으로 참여함. 하지만 이런 공식적인 말투로는 도저히 적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ㅇㅇ이 아빠 엄마에게는 아마 들려주지 못할. 하지만 내게는 가장 중요한 그런 이야기들.



모모는 늘 숙제를 안 해온다. 왜 안 했냐고 물으면 늘 아! 깜빡했다! 라고 한다. 그 모습은 낯설지가 않다. 바로 내가 초중고 12년 동안 그런 어린이였던 것이다. 아빠는 진저리를 치면서 그놈의 '아 맞다' 좀 그만 하라고 말하곤 했다. 아니, 과거형으로 쓰면 안 된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서 11월 월세 내는 걸 깜빡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학기중에 연수 듣는 것도 깜빡해서 지금 (바빠 죽겠는데) 들어야 할 연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모모야, 너는 자라 내가 될 거야...
얼마 전에는 모모가 또 안내장을 내지 않아 결국 어머니께 문자를 드렸고, 곧바로 죄송하다는 전화가 왔다. 얘가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혼을 내도 그대로예요. 당연하죠 어머님. 저도 엄청 혼나면서 컸지만 여전히 '아 맞다' 인간이에요. 그러니까 음...... 어...... 모모한테 힘내라고 전해주세요. (아! 11월 출결 마무리 깜빡했다!)

미미는 학교에서 아주 잘 지낸다. 1학기 때는 가끔 울었는데 요즘은 제일 크게 까르르 웃는다. 최근에 무무랑 친해져서 더욱 밝아졌다. 지금 여학생들 사이에 휘몰아치는 '사랑과 전쟁' 폭풍에서도 미미와 무무는 한 발 빠져 있다(아마도). 하지만 나는 늘 걱정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있던 미미의 미술치료가 두 달 전 끝났다. 미술치료 선생님은 아직 미미의 마음 속에 슬픔과 분노가 가득하다고 했다. 열두어 번 치료를 가지고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담임이 풀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미미야,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미미가 보낸 편지


노노는 요즘 멍청이라는 말에 꽂혔다. 내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말을 하면 멍청하다고 한다. 노노야 여기는 선생님 자리야. 노노 자리로 가세요. 선생님 멍청이에요! 노노야 영어 시간이에요. 영어체험실 가자. 선생님 멍청해요! 오은영 선생님이라면 이런 말을 할 때 넘어가지 말고 바로 지적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루에 50번씩 한다면, 그리고 나한테 당장 책임져야 할 18명의 학생들이 더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그냥 멍청이가 된다. 아마 나는 1년 동안 노노를 전혀 가르친 것 같지가 않으니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노노에게는 더 나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미안한 마음.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나도 이것보다 괜찮은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다른 선생님들의 동정 어린 눈길...... 그래요, 제가 노노 담임입니다. 그래도 우리 노노가 착하기는 참 착해요.

라라는 모범생이다. 방금 라라의 종합의견을 쓰면서 더더욱 그것을 깨달았다. 수업 태도가 바르고 전 과목 성적이 우수하며 예의 바르고 성실하다. 내가 1년 동안 라라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아마 라라는 어딜 가서도 선생님께 예쁨받을 것이고 공부도 계속 잘할 것이다. 그리고 라라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짜증을 내고 상처를 준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면 라라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아니에요. 그런 적 없어요. 라고 할 것이다. 우리 반 여학생은 고작 일곱 명이라 쪼개지기는 너무 적다. 그래서 1년 동안 안 쪼개지고 잘 지냈지만, 4학년 때는 그게 힘들어질 거라는 예감이 든다. 라라가 좋은 학생인 만큼이나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도움이 되고 싶다. 나는 라라에게 신세를 많이 졌으니까.

요요는 혀가 짧고 읽기 유창성이 아주 떨어진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일 주일에 두 번씩 요요와 함께 아주 많은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나 한 줄, 요요 한 줄. 하지만 요요는 아직도 더듬거린다. 사실 요요가 느린 아이인 건 괜찮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크면 되지. 그걸 놀리는 보보 같은 아이들이 있어서 문제다.
요요는 특수학생인 노노를 제외하면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3월 기초학력 검사에서 미달을 받은 아이다. 다음 주에 재검사를 할 예정이다. 요요는 별 생각이 없겠지만 나는 떨고 있다. 요요야...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줘.

요요가 만든 찰흙 인형. 요요와 아주 똑같이 생겼다.

지지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다. 책을 많이 읽어서 만들어진 세계다. 지지는 재미있는 게임도 잘 만들고, 그래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다. 다만 '게임의 규칙을 만든 사람'이라는 권력을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어 걱정이다. 지지는 아주 재미있는 사람도 될 수 있고 아주 비열한 사람도 될 수 있다. 물론 종합의견에는 전자만 적을 것이다. 그것이 피그말리온의 기도가 되기를 바라면서.

초초는 마음씨가 곱고 말이 없고 눈물이 많다. 각각 떼어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성격들이지만, 이 셋의 조합은 가끔 담임을 아주... 피곤하게 한다. 바라는 것을 그냥 말해주면 좋을텐데 계속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눈물 흘리기... 초초는 어제도 울었다. 울면서 자기는 라라가 싫고 루루가 싫고 라라랑 루루가 노는 것도 싫다고 했다. 라라와 루루가 싫은 것은 아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가능하지만 라라와 루루가 노는 것은 왜 싫다는 말인가? 초초는 대답하지 않았다. 4학년이 되면 반드시 라라와 루루와 초초를 다 다른 반으로 떼어 놓겠노라고 다짐했는데 우리 학교는 한 학년에 두 반이다. 내년에 절대로 4학년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나는 초초를 사랑한다. 초초는 마음씨가 곱고 말이 없고 눈물이 많다. 이 세 가지는 사실 이 소란하고 비정한 세상에서 가장 귀한 덕목들이다. 초초는 귀한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티티는 그네처럼 좋음과 나쁨을 오가면서, 아주 조금씩 좋은 쪽으로 가고 있다. 일보 후퇴 이보 전진. 비록 지금은 일보 후퇴 시즌이지만... 가만히 앉아 집중하는 게 티티에게는 힘든 일일 거라고, 티티도 매일 많은 것을 견디고 노력하며 자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오늘이 토요일이고 내가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앉아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1학기 때는 솔직히 쟤를 묶어 놓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그런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거 봐. 많이 발전했다니까. 장하다 티티야. 그리고 나도... 참 장하다. 우리 둘 다 고생 많이 했다.

곤충을 관찰하는 어린이들

나는 도도가 경계선 지능이 아닐까 의심(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경계선 지능에 대한 책도 한 권 샀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다. 도도는 언제나 성실하고, 꾸준하고, 열심히 한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과목을 너무 너무 어려워한다. 나는 도도가 너무나 대견하고 또 안쓰럽다. 도도는 나와 함께하는 방과후 공부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사실 여기는 내 잘못도 있다. 내가 초반에 도도의 수준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너무 어려운 과제를 준 것이다(사실 2학년 교재였지만, 어쨌든). 도도는 아직까지도 나와 공부하는 날이면 죽상이 된다. 나는 실수를 보상하기 위해 쉬운 과제를 주면서 칭찬을 퍼붓지만, 선생님에게 칭찬 받으며 쉬운 문제 풀기보다 그냥 빨리 집에 가서 놀기를 더 좋아하는 어린이이므로 별 효과는 없다. 아무튼, 무능한 선생이지만, 도도야, 너를 언제나 온 힘으로 온 힘으로 응원한단다. 방금 이 문장에만 특별히 두 배의 진심을 실었단다.

나는 프로페셔널이고 학생들을 항상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누구를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 것 따위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만 아주 조금 솔직해진다면... 우리 반에서 나의 최애는 아마 누누일 것이다. 누누는 따뜻하고 창의적이고 이따금 어이 없는 말실수로 나를 웃긴다. 그리고 다정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매사에 열심이다. 그래서 오히려 누누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나는 프로페셔널이므로 누누에게 절대 네가 내 최애라는 티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치만 먼 미래의 언젠가 학교가 아닌 곳에서 누누를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

수수는 늘 웃는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웃음이 해사하다. 생각해 보니 웃지 않는 수수를 본 일이 드물다. 일 년이나 함께했는데! 그래서 나도 수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웃음이 난다. 수수는 재주가 많다. 축구도 잘 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공부도 그쯤이면 곧잘 하는 편이다. 성격도 좋다. 여자애들을 괜히 놀리고 괴롭히지도 않고 가끔은 같이 놀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예감이 들었어. 너는 아마 앞으로... 적지 않은 아이들의 첫사랑이 될 거라고... 우리 반에도 있을지 몰라. 넌 관심도 없겠지만.

수수의 꿈은 축구선수다. 그리고 수수는 진짜로 저렇게 생겼다.


요즘 루루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학창시절 나는 여자아이들의 호모소셜에 잘 적응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루루를 보면 그때 내가 지긋지긋해하던 어떤 얼굴들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아직 완전히 선생님이 되지 못했나 보다... 루루가 째려보고, 한숨을 쉬고, 짜증을 내면 아이들은 루루에게 항의하는 대신 나에게 찾아온다. 그러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네 마음을 들여다보고 네가 정말로 느끼는 걸 말하렴. 절교하자, 가 아니라 나한테 더 잘해줬으면 좋겠어, 라고. 어쩌라고, 가 아니라 나도 사정이 있었는데 몰라줘서 서운해, 라고. 하지만 사실 자신이 없다. 얘들아, 선생님도 친구는 참 어려웠어. 사실 지금도 잘 못해. 하지만 어쩌랴 내가 담임인데 계속하는 수밖에. 힘내자. 학기말이 한 달도 안 남았으니까...

나나는 일찍 등교해서, 내가 출근할 때까지 계단에 앉아서 나를 기다린다. 현관까지 나와서 기웃거릴 때도 있다. 교실에서 기다리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계단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내려다보다가, 나를 발견하면 재빨리 교실로 달려가며 "쌤이다!"라고 외치는 나나. 그 모습을 보면 '아이구...' 싶으면서도 내심 좋은 것이 사실이라 정색하고 그만두라고 하지는 않았다. 나나는 잘 웃고, 동생을 예뻐하고, 내게 종알거리는 것을 좋아하고, 맞춤법 공부도 아주 열심히 한다. 다만 최근 수학익힘책 숙제를 답지를 보고 베끼는 것 같다는 심증이 있어 (1학기 때는 받아쓰기를 베낀 적이 있다) 월요일에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자 한다. 나나야, 선생님은 네가 열 문제 중에서 열 문제를 다 틀려도 똑같이 사랑할 거야. 한 문제를 맞추면 이 세상의 모든 칭찬을 다 따다 줄게.

나나가 쓴 하루일기. 맞춤법이 놀랄 만큼 정확해졌다. 물론 갈 길이 멀다.

보보는,
하......
내가 이번 학기 동안 잘한 일이 있다면 보보에게 "야."라고 하지 않은 것이다. 매일, 매 시간, 매 순간마다. 큰 소리로 끝도 없이 이야기하면서 수업을 방해할 때. 다른 학생이 발표하면 대놓고 핀잔을 주고 빈정거릴 때. 여학생들을 때리고 놀리고 괴롭힐 때. 내가 열심히 활동을 소개하는데 지루해요, 재미 없어요, 싫어요, 큰 소리로 말할 때. 게임 규칙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때. 모둠활동에 하나도 참여하지 않고 훼방을 놓을 때.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을 하고 나서 더없이 뻔뻔하고 당당할 때... 부르고 싶었다. 야, 라고. 그리고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다 맞는 말이지만 교사가 학생에게 하기에는 부적절한 말들을. 보보를 울릴 수 있는, 그리고 어쩌면 고칠 수도 있는 말들을. 하지만 안 했다. 혼도 내고 달래도 보고 공감도 해고 목소리도 높여 봤지만, 그리고 교사가 학생에게 하기에 적절한 버전으로 아주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해봤지만, 결코 야, 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2학기 인내심의 대부분을 썼다. 장하다. 물론 내가 장하다는 말이다. 너는... 너는 장하지 않아.

코코는 이번 학기에 나를 많이 고민하게 했던 학생 중 한 명이다. 나는 아직도 코코를 잘 모르겠다. 코코는 자의식이 과도하게 부양되어 있고, 동시에 늘 주눅이 들어 있고, 누군가를 못되게 괴롭히고, 동시에 괴롭힘 당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고, 그래서 아무 것도 안 하려고 하기도 한다. 한쪽을 찌르면 다른 한쪽이 튀어나오는 풍선처럼 코코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데 아마 둘 다 진심일 것이다. 나는 코코와 어머니의 애착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고, 그것이 코코의 성격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남의 가정사를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앗 이미 해버렸나.

무무는 아주 야무지다.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훨씬 야무지다. 목소리도 아주 쩌렁쩌렁 옹골차다. 그 똘똘한 목소리로 내가 깜빡한 것, 또는 깜빡한 척 어물쩡 넘기려고 했던 것, 또는 정신없어서 도저히 신경쓸 겨를이 없는 것들을 사정없이(물론 아무런 악의도 없이) 지적한다. 선생님!! 저번 주에 ~한다고 했는데 언제 해요?? 피곤해서 죽을 것 같을 때는, 솔직히 조금 짜증도 난다. 무무야... 알아서 할게... 선생님은 나잖니... 하지만 학생이 선생님보다 꼼꼼한 게 어떻게 잘못이겠는가?
무무는 내가 깜빡한 것들을 알려주고, 어수선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잔소리도 하고, 소심한 아이들을 챙기고, 내가 지칠 때면 사랑을 듬뿍 담은 손편지로 일으켜 세우기까지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반 담임은 무무인 것 같다. 나? 나는 담임의 총애를 받는 좀 늙은 반장 같은 거지... 이 역할도 나쁘지 않다...

무무는 이런 아이다. 내가 뭘 했다고 이런 사랑을 받나...

2학기의 빅 이벤트 중 하나는 디디의 엄마가 극대노하여 학교를 찾아온 일이다. 말하자면 긴 이야기이고, 여기서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내게 스트레스 종합선물세트를 안겨 주었던 그 이야기는 이제 거의 마무리되었고, 요즘 디디는 아주 활발하고 씩씩하다. 내 덕분은 아니고, 작은 고무 딱지 하나가 불러온 나비효과라 하겠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다. 나는 아마 디디에게는 별로 좋은 선생이 아닌 모양이다. 1년 동안 노력은 많이 했지만 잘 안 됐다. 그래도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 나는 디디를 사랑하고 디디가 밝아진 것이 진심으로 기쁘다. 그리고 디디의 4학년 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또 염려하고 있다.

포포는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우리 반에 온 전학생이다. 또는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다. 전학오기 전 학교의 담임선생님이 포포를 애타게 붙잡았다는 후문을 들었는데 충분히 납득이 간다.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전학생이 온다면 어떤 아이였으면 좋겠나요?"라는 설문조사를 돌리고, 그 결과를 사람으로 만든다면 아마 포포일 것이다. 상냥하고 얌전하고 발표도 잘하는 어린이. 선생님을 너무 많이 좋아한다는,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 눈에 '일름보'로 비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만 빼면 친구로서도 나쁘지 않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우리 반 남자아이들은 포포와 전혀 비슷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포포는 한동안 조금 겉돌다가, 요즘은 무무와 어울려 지내고 있다. 4학년이 되어서는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아무 데로도 전학 가지 않고 언제까지나 이 기피학년의 한 줄기 빛으로 남아주기를...

리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리리는 일주일 전에 전학 왔고, 오자마자 우리 반에서 가장 키 큰 아이 타이틀을 차지했다. 목소리도 굵고 글씨도 또박또박 써서 꼭 고학년 같다. 수업 태도도 좋고 발표도 의젓하게 잘한다. 물론 고학년 같다는 게 늘 좋은 뜻만은 아니라서, 벌써 몇 건의 불만 사례를 접수했다. 내가 리리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다. 3주. 딱 3주만 조용히 넘겨주겠니...? 말썽은 4학년이 되어서 치자. 고마워 미안해...


사실 남은 3주를 생각하면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진도는 밀렸고 처리해야 할 일은 많고 나는 더 이상 한 걸음도 못 뗄 만큼 지쳐 있다. 학생들은 마치 그동안 내 속을 충분히 썩이지 못했다는 듯이(아냐 충분했어...) 문제를 일으키는 중이다. 어제는 실로 오랜만에 텅 빈 교실에서 울었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고 숨을 곳은 없다. 다 울었니? 그럼 이제 할 일을 하자. 학기말종합의견 쓰러 가자...^^

선생님!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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