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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0 요즘 생각들

slowglow01 2022. 6. 12. 18:23

마지막으로 내적 완결성을 갖춘 글 한 편을 쓴 지 꽤 오래되었다. 금요일에 조퇴도 안 쓰고 모니터 앞에 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완결된 글을 당연히 못 쓰지, 아무것도 완결되지 않았으니까... 요즘은(최근 몇 년간은) 어떤 생각이든 도통 5분 이상 지속되는 법이 없이 곧바로 뒤섞이고 방해받고 사라진다. 이유는 많다. 우선은 와글와글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분 단위로 적응해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됐고, 당연하지만 인터넷과 sns가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 생각을 잘 붙잡고 이어나가봤자 괜찮은 결론을 얻으리라는 기대가 이제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든 임박한 재앙(기후변화와 식량위기), 참담한 현실(아무 뉴스나 켜봐라...), 불확실한 미래(자, 교사가 됐어, 이제 뭘 하지?), 그리고 벌써 두 번째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할머니 중 한 곳에 도착하게 되므로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피로로 혼탁한 생각의 풍경 속에서 남자친구 혼자 분홍색 풍선을 들고 웃으며 서 있다.(정말 다행이다)

당장 내일이든 먼 훗날이든 많은 것들과 이별하게 될 텐데 그 뒤에 찾아올 무언가가 불투명하여 두렵다. 잘 웃고 재밌게 놀고 일도 열심히 하며 대체로 즐겁게 지내고 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언제나 그렇다.

장수향교 대성전 단청
롤랑 바르트 <현대의 신화>(1957)
전주 드림랜드


요즘은 문학이론, 구조주의, 현대철학 뭐 그런 책이나 영상을 찾아보고 있다.(귀찮아서 많이는 못 보지만) 내가 예전에 즐겁게 쓰고 자주 칭찬도 받던 완결성 있는 글들이 사실은 허구에 더 가까웠다고, 대부분 프랑스인이고 전원이 백인 남성인 철학자들이 말한다. 우리는 '진짜 마음이 닿을 수가 있게 꼭 맞는 만큼만 말'하는 것에 영영 실패할 것이고, 그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조차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고. 완결된 글을 당연히 못 쓰지, 아무 것도 완결되지 않았으니까... 언어의 예정된 실패, 그리고 그것을 결국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이론이 좋다.

https://youtu.be/0JcF6i9tNF0

좀 말 같은 말을 해보고 싶어~


여전히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중인데 요즘은 내가 학생들을 너무 관성적으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중이다. 잘 웃어주고 대체로 친절하다고 자부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진심을 주고 싶다. 그래서 아침마다 오늘은 아이들과 일대일로 소통하자!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자! 다짐하지만, 별사탕처럼 빼곡하고 들쭉날쭉한 아이들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자판기처럼 기계적인 반응만 출력하게 되는 것이다. 응 그랬구나~ 재밌었겠네~ ㅇㅇ아 지금은 선생님이 다른 이야기 중이잖아.

또 다른 고민은 우리 반이 학력격차가 심한 편이라는 것이다. 칠판 앞에서 아무리 원맨쇼를 해도 인지능력 또는 주의력 부족으로 수업을 전혀 못 따라오는 학생이 5명이다.(특수학생을 합치면 6명이다) 겨우겨우 반쯤 따라오는 학생들을 더하면 8명인데 우리반이 18명이니 절반이나 다름없다. 얼마 전 새 대통령이 교육의 목적은 산업인재 육성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보수 교육감이 당선된 어떤 지역은 초등 3학년부터 학력평가를 보고 가정에 등수를 통보한다고 한다. 이 아이들의 학력을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 이것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고민이므로 불평할 마음이 없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의 마음을, 국가권력으로부터 그리고 이를 아주 충실히 이행할 학교로부터 등급 매겨지고 모욕당할 아이들의 존엄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것은 정말로 모르겠다. 그렇지만 교사는 정치적인 불평 같은 건 하면 안 된다지.

금계국 핀 동네 산책
친환경 물병.. 이라고 한다
머리숱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신규교사들이 모인 연수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요즘 너무너무 피곤하고 딱 일주일만 쉬고 싶은데, 정말로 휴일이 주어진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과 죄책감 때문에 온전하게 마음 편히 쉬지 못할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바라는 것은 일로부터의 휴식이 아니라(물론 그것도 몹시 필요하지만) 집요하고 단발적인 생각으로부터, 유구한 불안과 조급함으로부터, 선택과 책임으로부터의 휴식인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존재로부터... 잠깐이라도 좋으니 온 세상을 껐다 켤 수 있을까. 외롭고 슬픈 사람들 전쟁터의 아이들 아픈 우리 할머니 모두 꿈도 없이 달게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날 수 있게.

불안하기 싫어서 교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인생은 그리고 사회구조는 그렇게 간단하게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깨닫는 데 24년 걸린 놀라운 사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수업자료
이겼다
ㅇㅇ이는 눈이 아주 크고, 그 눈으로 작은 것들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곤 한다.(그러느라 선생님 말은 잘 못 듣는다) 그리고 이렇게 섬세한 그림을 그린다.
오늘 주문한 셀프선물. 마음을 챙기며 살아가 보자


뭐 인생이 내 사정 봐주면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할 일을 찾아서 꾸역꾸역 하고 있으면 의지와 상관없이 언젠가 어디로든 도착해 있을 것이다. 적당히 쉬면서 여력 되는 만큼만 좋은 교사 시민 가족 연인 친구가 되도록 노력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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