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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말하기

slowglow01 2022. 8. 11. 14:07

얼마 전 친구가 싸이 '흠뻑쇼'에 다녀온다고 말했을 때 나는 곧바로 이 기사를 떠올렸다.
https://www.hani.co.kr/arti/area/gangwon/1053044.html

싸이 ‘흠뻑쇼’ 철거노동자 추락사…“급하지 않은 작업, 비 오는데 강행했나”

강릉시민행동 “노동자 부주의로 결론짓지 말아야…“시·싸이 소속사 진상규명·재발방지 대책 마련해야”경찰 “관련자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입건 예정”피네이션 “애도…대책 마련에

www.hani.co.kr


지난 7월 30일 강릉에서의 공연이 끝난 후, 조명탑을 철거하던 몽골 이주노동자 ㄱ씨가 작업 도중 미끄러져 15m 아래로 떨어졌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공연이 열린 종합운동장은 이듬해 4월까지 출입을 제한할 예정이었으므로 철거는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었다. 숨진 ㄱ씨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었다.

어쨌거나 이미 표를 산 친구가 기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을 보고 오기를 바랐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청년들과 그 공연장에서 추락해 죽은 다른 청년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사람이 죽은 곳에서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냐고.

그러나 내게는 이런 말을 할 권리가 없다.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고'는 비단 '흠뻑쇼'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경기도 포천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 씨(31)가 전력 공급이 끊긴 비닐하우스에서 동사했다. 2013년 4월에는 방글라데시의 대형 의류 공장 라나 플라자가 붕괴하여 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했다. 지난 1월 HDC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 공사현장에서 외벽이 붕괴하면서 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말 그대로 우리가 먹는 밥, 입는 옷, 사는 집 모두 노동자의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이나 다름없다. 트위터의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계정은 2022년에 벌써 358명의 죽음을 기록했다. https://twitter.com/laborhell_korea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laborhell_korea) / 트위터

하루 7명, 일년 2천여명이 일하다 죽는 지옥같은 나라 대한민국. 시작된 반동의 시대, 함께 이겨 냅시다. 2021년 이 계정에 기록된 일하다 죽은 노동자: 529명/ 2022년 이 계정에 기록된 일하다 죽은

twitter.com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하던 소설가 한강은 자기 주위의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믿을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1980년의 광주가 여전히 시급한 현재인 것처럼, 한강의 이 문제제기 역시 다른 맥락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싸이의 공연장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당신과 모든 사람들을 나는 가끔 믿을 수 없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노동자의 죽음,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죽음, 미처 수를 셀 수 없는 비인간 동물들의 죽음 위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얼마 전 광주에 다녀왔다는 선생님 한 분이 내게 "광주는 아직도 죽음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실은 우리 모두가 그렇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모든 곳이 학살의 현장이다.

우리가 이 많은 죽음에 '믿을 수 없게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죽음이 눈에 띄지 않도록 재빠르게 숨기고 치우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성장·개발·소비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다. 소비자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괜히 찝찝해하기보다는 기분 좋게 돈이나 많이 쓰는 편이 좋다. 더군다나 죽음을 예방하고 책임을 무는 일은 기업이 돈을 버는 데 방해가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며 완화할 것을 예고하였다) 그리하여 ㄱ씨의 죽음은 신속하게 잊혀지고 '흠뻑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돈을 벌어들인다. 대중매체와 인스타그램은 영원한 삶과 젊음을 노래한다. 아름답고, 비정치적이고, 무한한 소비를 찬양하는 이미지의 스펙타클, 그리고 중간 광고가 나가는 동안 시체가 치워진다. 영원한 삶과 젊음. 한국에서 1~30대의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하는 중이고 특히 20대 여성의 자살률 증가 추세가 가파르지만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그때 친구에게 '흠뻑쇼' 노동자의 추락사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가 공연에 가지 않기를 바랐거나 그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물일곱 살 청년이 비 오는 날 위험한 작업을 하다가 떨어져 죽었다. 이것은 결코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곧 죽음을 지우고 무화시키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더 큰 소리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그리하여 세계는 결코 전과 같을 수 없다고, 우리는 그를 애도하고 죽음의 연쇄를 막아야 한다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곧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름방학 전날, 아이들과 인사하면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뭐지?"라고 물었더니 곧바로 "안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주 익숙하고 조금은 지겹다는 목소리였다. 세상이 그렇지 않은데 아이들에게 이렇게나 거짓말을 쳐 놓았으니 조금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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