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2 교단일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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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되었기 때문에 일기를 쓰긴 써야겠는데, 쓸 말이 많지 않다. 요즘 살만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예쁘다. 너무 천사같이 순해서 아직도 가끔 당황하곤 한다. 다만 내가 이 아이들의 순함을 자꾸 부각하고 감탄하는 것이 '얌전하고 말 잘 듣는', '교사를 편하게 하는' 어린이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지 않을지 경계하게 된다. 순한 것도 활발한 것도 둥근 것도 모난 것도 모두 학생의 개성이다.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이 자신의 개성과 공동체의 질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그 개성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에너지 준위가 높지 않고 교사에게 협조적이며 자기들끼리도 (아직까지는) 원만하게 잘 지낸다. 나는 이러한 특성을 객관적인 눈..
1교시는 수학 첫 시간. 진도를 나가기 전에 먼저 학생들의 기초연산 능력을 점검해 보기로 했다. 엑시트 프로젝트 http://exitbasic.com 에서 덧셈과 뺄셈 진단 자료를 내려받아 활용했는데, 학생이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막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어 있어 좋았다. 한 자리 수의 가르기와 모으기부터 두 자리 수의 덧셈과 뺄셈까지 총 8단계로 되어 있는 문제들을 주었는데 80%의 학생들은 전혀 어렵지 않게 모든 문제를 금방 풀었고(채점을 아직 안 해서 점수는 모르겠으나) 4~6단계쯤부터 헤매면서 내 도움을 받아 끝까지 푼 학생이 두 명 3단계쯤부터 어려워하다가 5단계쯤까지 푼 학생이 한 명 1단계부터 아예 감을 못 잡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가족이 확진이 되어 등교중지 중인 학생도 한 명 있는데,..
둘째 날에는 학급 규칙(우리 반 약속)을 만들었다. 약속이 무엇인지, 왜 지켜야 하는지를 이야기한 후 칠판을 넷으로 나누고 각각의 칸에 '선-우', '우-선', '우-우', '우-학'이라고 적었다. 아이들이 선우우선우우우... 하고 읽으며 재미있어한다. 각각의 칸에 서로가 지켜야 할 규칙을 적을 것이다. 첫 번째 칸에는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지켜야 할 규칙을 적는다. 선생님도 이 교실의 일부이고, 똑같이 규칙을 지키는 존재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지켜주었으면 하는 약속이 있나요? 라고 물었더니 쉽게 대답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럴 줄 알고 두 가지의 예시를 가져왔다. 1. 모르는 건 친절하게 알려주기 선생님은 여러분이 모르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 여기 있는 사람이에요. 여러분이 모르면 모를수..
3월 2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3학년 2반. 칠판에 감정카드를 잔뜩 붙여놓고 멋진 첫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아침시간 내내 교실을 비우다시피 했다. 이따금 급하게 교실에 들르면 울망울망 수줍은 얼굴의 꼬마들이 어색하게 나를 흘끔거렸다. 키도 작고 손도 작고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목소리도 작다. 얼마 전까지 열한 살에 가까운 열 살과 지내다가, 오랜만에 아홉 살에 가까운 열 살을 보니 너무나 아기 같아서 새삼 놀라웠다. 아이들은 일 년 동안 정말 부지런히 자라는구나. 이제는 듬직한 4학년이 된 작년 학생들도 3월에는 이렇게 아기였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시업식을 마치고 선생님 소개로 1교시를 시작했다. 화면 가득 수수께끼 같은 낱말들을 띄워 놓고, 이것들이 무슨 뜻인지 맞춰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