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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이름뭘로하지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긴 일기를 썼다. 한글파일로 4쪽이 넘는 긴 글을 3시간 동안 살풀이하듯 줄줄 적어내려갔다. 학생들을 원망하고 흉보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이어지다가 힘없는 징징거림으로 마무리되는 글이었다. 세 가지 모두 거짓말이 아니다. 아이들은(정확히 말하면 특정 몇 명은) 나를 너무너무 힘들게 하고, 동시에 나는 점점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말하기를 하고 있고, 그리고 나는 지쳤다. 오늘 3교시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울었다. 그리고 눈물을 닦고 4교시 5교시 수업을 했다. 점심 시간에 내 안의 불빛 같은 것이 꺼졌다. 말 그대로 번-아웃의 순간. 암전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6교시 수업을 했다. 나는 해낸다. 어떻게든 한다. 중학교 때 오래달리기를 하던 날의 기..
세상이 초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중학교 때의 일이다. 무슨 일론지 친구에게 조금 토라져서, 괜히 길가의 나무들만 쳐다보면서 걷다가 문득 백만 가지 빛깔의 찬란한 초록이 눈에 들어왔다. 잔뜩 흥분해서 집에 돌아와 이 세상이 얼마나 푸른지 일기장에 구구절절 적어 내려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야 감수성 풍부했던 열네 살 소녀에게는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었는데, 십여 년 뒤 토요일 오전, 버스 창밖을 바라보다가 나는 그때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버스가 다리를 건너가는데, 차창 밖 너른 강변이 온통 연두빛이었다. 그리고 불을 켠 듯 환하게 핀 노란 유채. 순간 열네 살 소녀의 영혼이 내게 내려왔다. 세상에세상에세상에!!! 봄이야!!! 봄이 왔어!!! 4월이 온 지도 벌써..
우리 반의 집중구호는 "사랑하는!" "우리 반!"이다. 임용시험 2차 수업 시연을 준비할 때부터 이 구호를 사용했다. 억지로라도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사랑에 소질이 없다. 사랑해야 마땅한 이들도 잘 사랑하지 못했다. 그런데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을, 단지 내 학생들이란 이유만으로 어떻게 당장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이들을 마음으로 사랑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입으로라도 사랑하기로 했다. 매일매일 외치면서. 사랑하는! 우리 반! 사랑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3월 중순까지는 아이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랑하기에는 책임감과 고민이 너무 무거웠다. 그저 아이들을 원망하지 않는 데 마음의 힘을 다 쏟았다. 너희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내일이 두려워지지만, 절대 너희를 탓하지는 않..
2주 동안 일기를 쓰지 못한 것은, 회고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이런 말이 있는데, 나는 그동안 내 생활에서 한 발자국도 멀리 떨어지지 못하고 이번 시간에서 다음 시간으로, 하루에서 또 다음 하루로, 그저 발끝만 보며 건너가기 급급하며 지냈다. 어떤 순간은 행복했다. 어떤 순간은 괴로웠다. 어떤 하루는 괜찮았고 다른 하루는 피로했다. 한두 줄의 짧은 상념은 기록할 수 있었지만, 한 편의 글이 될 만큼 긴 호흡의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 내 최대 관심사는 바로 다음 주 수업이다. 출퇴근을 편하게 하시려면 운전면허를 따셔야죠? 이 지역에서 계속 일할 건지, 아니면 공부를 다시 해서 내년에 고향으로 시험을 볼지 생각하셔야죠? 월급을 받기 시작했으니 돈 관리를..
고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그때 우리 반은 일 주일에 한 번씩 쪽지 시험을 봤는데(그리고 모든 학생들의 점수와 반 등수를 교실에 떡하니 붙여 놨다. 야만의 시대...) 한 번은 억울하게 국어 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린 적이 있다. 어떤 시를 읽고 화자의 감정을 유추하는 문제였는데, 나는 '자조'를 골랐고 답은 '원망'이었나 그랬을 것이다. 나는 분개해서 교무실에 찾아갔으나 선생님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게 왜 자조냐면....! 화자가 지금 자조하고 있잖아요! 이 구절을 보세요, 누가 봐도 자조잖아요. 이 분명한 자조가 보이지 않으시나요?? 너무 답답하고 억울한데 이유를 콕 집어 설명할 수가 없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지금은 그 시의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맞았고 선생님이 틀..
이번 주는 빠르게 지나갔다. 퇴근 시간이 조금 당겨졌다. 6~7시쯤. 여전히 학교에서는 꼴찌 아니면 뒤에서 두 번째지만 적어도 관사에서 잠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서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를 읽고 있다. 미지로 가득 찬, 거대하고 적막한 외계의 원통을 탐험하며 시끌벅적한 교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있다.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은 아직 나를 걱정하시지만(하루는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매일 야근하신다면서요. 걱정되니까 일찍 들어가세요..) 이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괜찮다고 대답할 수 있다. 괜찮아요. 잘 적응하고 있어요. 이제 몰래 울음을 참지 않고, 매일 불안에 쫓기지도 않는다. 힘이 들어간 건지 빠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신 그 자리에는 고민이 ..
수요일 오후에 울면서 못 하겠다고 처음 생각한 이후로 내 마음은 가파른 '못하겠음'의 비탈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씻고 출근해야 하는데 하염없이 휴대폰만 바라보면서 괴로워하며 앉아 있었다. 저 진짜 학교 가기 싫어요. 못 가겠어요. 그래도 어쩌겠니, 니가 담임인데... 결국 유래 없는 대지각을 했는데 그게 오전 7시 40분이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아시겠죠? 이렇게 고단한 데는 어쨌든 이유가 있을 터였는데 아이들 탓을 하는 것은 도저히 (아직까지는) 직업윤리가 허락하지 않았고 그럼 결국 내 탓이 되는 것이 괴로웠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른 3학년에 비해 더 산만하고 말도 안 듣고 수업 태도도 안 좋은 것인지, 아니면 지극히 평범한 3학년들인데 그냥 내가 역량이 부족한 것인지 고민했지..
늘 그렇지만 고된 하루였다 아이들을 보내고 선생님들과 잠깐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간식을 얻어먹고 교실로 돌아와 퇴근 시간이 지날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 있다가 창문에서 안 보이게 의자를 돌려 놓고 조용히 울었다. 이것보다 더 열심히는 할 수 없어. 이미 최대치를 넘었단 말이야. 발령 받고 단 1분도 학교 생각 안 하고 마음 편히 있었던 적이 없어. 더 열심히는 못해. 더는 못하겠어. 내가 뭘 더 해야 하겠니! 라고도 생각했다가 그 생각은 지웠다. 아이들을 원망하게 되면 안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눈물을 그치고 다시 수업 준비를 하고 오늘도 밤 10시에 퇴근했다. 아주 늦은 저녁을 먹고 누웠다. 내일 아침에는 일단 엉망인 교탁을 치우고 아침 글쓰기 예시를 써 주고 어제 경고했는데도 또 친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