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94)
블로그이름뭘로하지
광주광역시가 고향이면서 왜 전라북도로 임용시험을 쳤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얼버무리지만, 실은 불안과 허영 때문이었다. 내 자의식을 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 광주는 뽑는 인원이 너무 적어서 떨어질까 불안했고, 전라남도는... 너무 낮은 합격 커트라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그것보다는 공부를 잘 하잖아? 그래서 뽑는 인원도 합격 커트라인도 중간 정도인 전라북도를 선택했는데, 뜻밖에 임용시험을 너무 잘 쳐버리는(?) 바람에 '그러게 광주를 지원하지 그랬냐'는 아쉬운 소리를 잔뜩 들어야 했다. 그래도 나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시험을 잘 봤으니 아마 발령지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1지망으로 쓴 전주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다...
나는 요즘 자꾸 두들겨 맞는 것 같은 기분이다. 들려오는 모든 소식들이 암담한데,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과거의 내가 쓴 글이다. 1년 전, 학보사에서 마지막으로 쓴 칼럼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오늘 망하지 않을 것이고, 어린이가 미래의 사회를 책임지고 계승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에서 교육의 필요성이 태어나고, 교육자를 향한 사회의 기대 역시 생겨난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자꾸 세상이 오늘 망할 것만 같다. 아니 이미 망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모래성처럼 빠르게 무너져 내리는데, 손쓸 도리 없이 그 붕괴를 바라만 보고 있는 기분이다. 살면서 큰 위기를 겪어본 적 없는 젊은애의 엄살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사..
미술교육학자 빅터 로웬펠드가 주장한 개념 중 '도식적 표현'이라는 것이 있다. 주로 7~9세의 아동들이 그림을 그릴 때 반복해서 나타내는 표현 방법으로, 산은 세모 모양, 나무는 갈색 기둥 위에 초록색 구름이 앉은 모양으로 그리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실제 산과 나무가 어떻게 생겼든 상관없이 모든 산과 나무를 이렇게 그리다가, 10~11세가 되면 점차 대상과 닮은 사실적 표현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몇 달 전 방을 청소하다가 어릴 때 쓴 동시 한 편을 발견했다. 아마 학교 숙제로 썼던 것 같은 그 시에서 나는 우리 집을 엄마에 비유하고 있었다. 집은 따뜻하고, 포근하고, 언제나 날 반겨주고... 그래서 엄마 같다는 얘기. 아래쪽에는 엄마가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모..
아주 오래 전부터 내 꿈은 오로지 고요와 평화뿐이었다. 고요와 평화. 내가 즐겨 꾸는 백일몽이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아주 길고 가느다란 바늘을 귓속에 넣어 내 손으로 고막을 펑 터뜨리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아오마메가 쓰던 것 같은 아주 섬세하고 예리한 바늘로... 그 소설을 읽은 건 고등학교 때였고 이제는 줄거리도 결말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왠지 그 바늘만은 뇌리에 아주 깊숙히 남아 내 공상 드라마의 일등 소품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좀 덜 폭력적이고 더 비현실적인 버전으로, 어느 날 갑자기 일확천금이 생겨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변호사인지 해결사인지를 고용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입힌, 그리고 이제 사라지면서 입힐 모든 유무형의 피..
학보사를 그만둔 지 대충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동안 내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글 쓰는 방법을 홀라당 까먹었고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좀 바보가 되었고... 학보사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언어의 가능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면 요즘은 언어의 불가능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말할 수 없는 것들, 말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이를테면 고통이라든지. 삶이라든지. 내가 사랑하는 책,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주인공 니나는 자신의 소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인생에는 한 가지 계산서도 없고 아무런 결말도 없는데 말이야. 결혼도 결말이 아니고, 죽음도 겉보기만 그렇지 결말이 아니고. 생은 계속 흘러가는 거야. 모든 것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고 아무 논리도 없으며, 모든 것은 즉흥..
성취기준: [6음01-01] 악곡의 특징을 이해하며 노래 부르거나 악기로 연주한다. 학습목표: 노래에 어울리는 셈여림을 표현하며 ‘노래로 세상을 아름답게’를 부분 2부 합창으로 불러 봅시다. 내 음악수업이 어떻게 망했는지 설명하기 전에 미리 변명을 좀 하자면, 나는 분명 반주 연습을 했다. 한밤중에, 춥고 어두운 피아노 연습실에서 혼자. 이번 수업의 제재 곡인 '노래로 세상을 아름답게'는 사장조 곡이고, 나는 검은건반을 눌러야 하는 곡을 칠 때면 늘 손가락에 고장이 난다.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따로 움직이라니 그거 천재들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몇 시간 연습하자 대충 그럴듯한 반주를 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자꾸 틀린 건반을 누르곤 했지만 그건 영원히 고칠 ..